‘팥이냐, 슈크림이냐’ 붕어빵이 문제로다

붕어빵 하면 떠오르는 최대 난제로 ‘팥’이냐 ‘슈크림’이냐가 있다. 예전에는 우스갯소리처럼 떠도는 이 논쟁을 그저 흥미롭게 관망했는데, 요새는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 많다. 퇴근길에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붕어빵 노점상 때문이다. 혼자 먹기 가장 적당한 단위인 3마리(왜 붕어빵은 ‘개’가 아니라 ‘마리’로 부르게 되는 걸까는 또 다른 난제다)를 고르려다 보니, 팥과 슈크림 중 뭘 하나 더 선택할지가 문제가 된다.
마치 영원한 스테디셀러와 신선함으로 무장한 신예 사이의 신경전이라고 할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석의 맛인 팥 붕어빵에 깊은 신뢰가 있지만, 입천장이 델 듯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슈크림의 단맛도 사랑한다. 난 조화롭게 번갈아가면서 먹는 걸 좋아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니. 군것질 하나를 골라도 용납 가능한 선이 있다며 굳은 심지로 토론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건 꽤 재밌는 일이다.
오래된 전통 옆에 새로운 문화가 끼어들어 공존하면서 논쟁을 낳는 일은 직장인으로서도 많이 발견하는 현상이다. 트렌드에 기민해야 하는 기자 집단은 특히 그렇다. 변화의 과도기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 입장에서 팥이냐 슈크림이냐를 생각나게 하는 상황들을 종종 접하곤 한다.

2016년께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기 전 대부분의 기자들은 수습 기간에 ‘하리꼬미’(잠복근무를 뜻하는 일본어로 퇴근하지 않고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취재하는 일) 기간을 거쳐야 했다. 처음 입사했던 언론사에서는 정리하고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2∼3시간 자고 석 달 가까이 보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노동 현장이었다. 흐리멍덩한 정신 상태로 취재하다 실수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인생을 통틀어 시간이 흐른다는 진리가 위안이던 유일한 시기였다.
마땅히 없어져야 했던 제도는 또 때가 되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껏 힘들게 버텨낸 제도가 얼마 안 돼 없어지는 모양새를 보자니 착잡하긴 했으나 (?) 축하할 일이라 받아들였다. 물론 변화가 모두에게 당연했던 건 아니다. 한동안은 신입의 업무 능력에 대한 못마땅함을 표출할 때 ‘하리꼬미의 부재’를 근거로 드는 선배들이 종종 있었다. 끈기와 책임감이 떨어지는 게 그 이유가 아니겠냐는 거였다.
이런 변화는 ‘젠지’(Gen Z·Z세대)로 불리는 젊은 신입 직장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 담론과 어우러져 오랫동안 반복해 얘기되어왔다. 요즘 신입들은 뭐든 끝까지 취재하려는 오기가 부족하더라,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일어나지 않아도 갈 시간이 됐다고 먼저 가더라, 등등의 평가와 비판 혹은 부러움의 경계 어드메에 있는 수근거림들을 듣는 일이 잦았다. 어떤 이야기에는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맞아, 그건 좀 특이하다, 실제로 그랬던 것 같아.’

특검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며 내가 속한 법조팀 업무가 무거워졌던 지난해 7월, 푹푹 찌는 더위에도 각 언론사 막내 기자들은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취재 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체력이 푹푹 깎이는 폭염, 다들 시간이 갈수록 지친 티가 역력했다.
하루는 밥이라도 사려고 팀의 막내를 불러다 마주앉아, 애로사항이 없는지 물어봤다. 물어보자마자 아차 싶긴 했다. 상사가 물어본다고 과연 솔직하게 대답하기가 쉬울까. 그래도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부분들은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 대답을 기다렸는데, 주저하던 막내 기자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조금 뜻밖이었다. “다른 것들은 괜찮은데…제가 우리 팀에 도움이 안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아이스팩이나 손 선풍기가 필요한 거냐고 물어볼까 하던 스스로가 조금 민망해졌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랬다. 그간 함께 일한 젠지 세대에 속하는 후배들 중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경험이 없으니 업무 처리야 어설픈 게 당연하고,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지 속내를 알기 힘들 때도 있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야기를 나눠보면,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다 같았다.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개인 중심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자라난 이들의 모습에는 당연히 그런 요소들이 녹아있다. 갑자기 공동체에 뛰어들어 적응하는 일은 서툴 수밖에 없고, 두려워서 벽을 치기도 할 테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유대감을 갖고자 하고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더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숱한 소문 속의 그것보다 현실에서 만난 젠지들은 늘 기대보다 훨씬 열정적이었다.
붕어빵의 난제를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어쩐지 이와 비슷하다. 팥이나 슈크림이나, 서로 아주 다른 무엇인 척하지만 그들은 모두 붕어빵이다. 봉투를 받아 안았을 때 품에 뜨끈하게 전해지는 온기와 첫입을 베어 물 때의 바삭함, 입에 넣자마자 차가운 공기 속에 후후 입김을 불게 되는 달달한 소의 매력으로 세대를 아울러 인기가 있는 군것질거리라는 핵심 요소를 공유한다.
한겨울에 붕어빵의 따스함을 찾아 모여드는 마음이 모두 같듯, 아무리 시대를 지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노력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도 다 같지 않을까. 슈크림 붕어빵이 이제는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메인 메뉴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개인의 시간과 공간을 귀중하게 여기며 일하는 방식 또한 차차 새로운 문화로 어우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배 직장인들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이득이 생기지 않을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닮아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마치 붕어빵처럼 말이다.
▶오늘 잉크는 초콜릿은?
술을 못 해서 디저트로 2차를 가는 것을 선호하는 김지은 기자가 늘어놓는 가벼운 수다 같은 에세이입니다. 팍팍한 일상에 지치셨나요? 김 기자가 풀어내는 달콤한 이야기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318?h=s)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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