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가자·우크라…‘국제 중재자’ 된 튀르키예

이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세 개의 분쟁이다. 이 분쟁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모두 튀르키예가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단 것이다.
반정부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한 이란 주변에 미국이 군사력을 증강하며 긴장을 고조시키던 지난 2일.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양국 대표단이 6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만나 고위급 회담을 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 회담에 튀르키예, 카타르, 이집트 등 7개 중재국 대표단도 참석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후 이란의 반대로 개최지는 오만 무스카트로 변경됐으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양국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로 언급됐다는 점에서 튀르키예의 존재감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가자전쟁 휴전서 결정적 역할
가자지구의 치안을 담당할 국제안정화군(ISF) 구성에도 튀르키예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제르바이잔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파병의향국들의 입장이다. 휴전을 중재하고 협상력이 있는 튀르키예가 국제안정화군에 포함되어야 향후 운영에 뒤탈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 경쟁자인 튀르키예 군대가 자신들이 점령한 가자지구에 주둔한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며, 국제안정화군 구성도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튀르키예는 유럽의 핵심 분쟁인 우크라이나 종전에도 관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배치될 평화유지군에 프랑스, 영국과 함께 튀르키예를 포함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서 튀르키예의 위상을 극적으로 끌어올린 주 요인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전 이전에는 독재와 인권 탄압 문제로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는 튀르키예를 백안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미국이 나토를 통한 유럽의 안보에서 손을 떼려 하면서, 유럽은 자체적으로 러시아를 막을 수 있는 무장력을 갖춰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강한 군사력을 갖춘 튀르키예의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3월 “튀르키예 없는 유럽의 안보는 생각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세계 9위 군사력과 양손 외교
튀르키예가 여러 분쟁에 중재자로 나설 수 있는 것은 유럽과 중동의 가운데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오래 추구해온 ‘중립 외교’ 자산이 쌓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에 최신 무인기 등 무기를 공급하면서도, 러시아 제재에는 참여하지 않고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는 ‘양손 전략’을 사용해왔다. 러시아도 세바스토폴에 있는 흑해 함대가 지중해로 나가기 위해선 튀르키예에 속한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 두 곳을 지나야 하는 등 튀르키예와 관계를 관리해야 할 유인이 적지 않다.
지네브 리보아 허드슨연구소 중동 평화안보센터 연구원은 “튀르키예는 생존을 위해 수 세기 동안 중동과 유라시아 두 전선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기술을 터득해왔다”며 “유럽이 튀르키예를 고립시킨다면 러시아에 기회를 줄 것이기에, 튀르키예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튀르키예를 가까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의 부상은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중동 3대 강국’ 중 하나인 이란의 약화에 따른 반사 이익인 면도 있다. 지난 2023년 가자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은 친이란 ‘저항의 축’을 형성하던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을 공격해 지도부 상당 부분을 궤멸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르키예의 지원을 입은 반군이 2024년 말 시리아의 친이란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친이란 ‘저항의 축’의 중요한 고리가 무너진 것도 이란에는 큰 타격이었다. 지난해 6월 ‘12일 분쟁’ 동안 이스라엘이 이란의 대공 방어망을 무너뜨리고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그동안 이란이 과대평가되어 온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왔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국내의 불만을 대외 관계 성과로 누그러뜨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랍 정치 평론가 아이만 압델 누르는 “에르도안은 영향력을 확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사안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이용하고, 그 공을 가로채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라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23년 독재 계속 이어질까
데니스 카라쿨루크추 튀르키예 국회 외교안보 자문관은 “야당 지도자인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 대한 탄압을 두고 유럽 국가 중에선 비난 성명을 낸 곳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대응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며 “튀르키예가 이민, 무역, 에너지,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성을 보여주고, 가치 기반 국제 질서 보다 강대국의 위협이 더 엄중하게 여겨지는 현 상황에선 더욱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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