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판 트럼프표 관세 구상 나왔다… 美, 해양 지배 액션 플랜 공개 [분석]
초도 물량 동맹국서 건조 길 열어
외국 돈으로 재건 비용 마련 발상

조선업판 트럼프표 관세 구상이 나왔다. 동맹국 투자를 유치해 미국 조선소를 되살리고, 외국산 선박들을 상대로 입항료를 받아 자국 산업 재건 비용을 마련한다는 게 뼈대다. 한국과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명시하고, 두 동맹국으로부터 선박을 여러 척 구매할 때 초도 물량은 해당 국가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뒀다. 한국이 제안한 대미(對美) 투자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청사진이 처음 윤곽을 드러낸 셈이다.
역량 강화 방안 망라
미국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간) 총 42쪽 분량(앞뒤 표지 포함)의 ‘미국 해양 행동 계획(America’s Maritime Action Plan·MAP)’을 공개했다. 백악관 마코 루비오 국가안보보좌관(미국 국무부 장관 겸임)과 러셀 보트 관리예산국(OMB) 국장 명의로 발표된 이 문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9일 서명한 ‘미국의 해양 지배력 회복’ 제하 행정명령의 이행 계획 성격이다. 원래 같은 해 11월까지 수립돼야 했지만 늦어졌다. 전략 설계자인 마이크 왈츠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명령이 내려진 지 한 달도 안 돼 경질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산하 조선 사무국이 공동화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MAP에는 미국 조선·해운업 강화를 위한 방안이 망라됐다. △투자 유치 목적의 ‘해양 번영 구역(MPZ)’ 지정 △프로그램 자금 조달을 위한 ‘해양 안보 신탁 기금(MSTF)’ 조성 △외국산 선박 대상 입항료 부과 등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해당 제안이 언제 어떻게 시행될 수 있을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계획에 따르면 미국의 조선업 역량은 필요한 선박을 충분히 만들어 내기에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미국에서 건조되는 신규 상업용 선박의 수는 세계 전체의 1%에도 못 미친다. 조선소가 66곳뿐이다. 인건비가 비싸 건조 비용이 훨씬 많이 들고 숙련된 인력도 드물다. 바다를 통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자는 대부분 한국·일본·중국산 선박에 실려 운송된다. 백악관은 “이런 상황은 심각한 안보 및 공급망 의존 문제를 야기한다”며 “자립 가능한 국내 조선업은 국가와 경제 안보에 결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대신 동맹국

결국 관건은 돈이다. 미국에서 건조되는 선박이 저절로 늘어나기는 어렵다. 미국산 선박이 아시아산보다 5배 넘게 비싸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수요를 창출하려면 해운 회사들에 보조금을 줘야 할 수 있다. MAP에 특별 대출과 세금 감면을 비롯한 조선소 및 해운사 대상 금융 지원 방안이 다양하게 포함된 이유다.
이 돈이 나오는 주머니가 ‘해양 안보 신탁 기금(MSTF)’인데, 미국 언론들은 해당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에 가장 주목했다. MAP는 미국 항구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산 상선에 ‘보편적 수수료(입항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수입 화물 중량을 기준으로 1㎏당 1~25센트를 입항료로 받을 경우 10년간 최소 660억 달러(약 95조3,600억 원), 최대 1조5,000억 달러(약 2,167조2,000억 원) 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MSTF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권고했다.
애초 입항료는 징벌 차원 수수료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불공정한 정책·관행으로 해양·물류·조선 산업 지배력을 키웠다고 보고, 지난해 10월 14일 중국산 선박만을 대상으로 입항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 견제는 의회와도 교감하는 목표다. 중국산 선박에 물리는 수수료를 활용해 미국 조선업을 돕는다는 내용이 담긴 초당적 법안 ‘미국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이 현재 미 연방의회에 계류된 상태다.
그러나 같은 달 말 미중 정상 간 합의의 일환으로 같은 해 11월 10일부터 1년간 해당 조치 시행이 유예됐고, 이번 계획을 통해 입항료 부과 대상 범위가 외국산 선박 전체로 넓어졌다. 백악관은 “외국산 선박들이 미국 시장 접근을 통해 이익을 얻는 만큼, 이 정책은 그들이 미국 해양 역량의 장기적인 복원에 기여하도록 보장한다”고 배경을 소개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진화한 방향과도 유사하다. 당초 무역 적자 폭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핵심 관세 표적으로 삼았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동맹국까지 포함한 교역 대상국 전체를 겨냥하는 쪽으로 방침을 선회했고, 관세는 미국 내 제조업 투자를 견인하는 수단이라는 게 행정부의 주장이었다. 마찬가지로 입항료의 최우선 용도 역시 미국 내 선박 건조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 도구다.
‘마스가’ 청사진

‘마스가’를 추진 중인 한국의 경우 이번 계획에 유불리가 공존한다. 무엇보다 일본과 함께 핵심 협력국으로 명시됐다는 사실이 긍정적이다. MAP는 “미국은 중국과 조선 역량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미국 조선업 재활성화를 위해 한국 및 일본과의 역사적인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선박 건조 수요를 가장 먼저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도 다소나마 줄었다. 이번 계획에 담긴 ‘브리지 전략(Bridge Strategy)’은 처음 등장하는 구상으로, 여러 척의 선박을 구매하기로 계약했을 때 초기 선박들은 외국 조선 업체가 본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게 골자다. 필요한 선박 전부를 당장 국산화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미국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고육책이다. 다만 해외 수주 업체가 인수나 파트너십 체결 형태로 미국 조선소에 직접 투자하게 만들어 초기 이후 생산은 미국 내에서 이뤄지도록 유도한다는 게 전략의 목표다.
현재 ‘마스가’ 성공을 막는 최대 난관 중 하나로 꼽히는 게 미국 내 화물 운송에는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만 쓸 수 있도록 규정한 존스법과 해외 조선소에서는 미군 군함을 짓지 못하게 막은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인데, 둘 다 오래전 자국 조선업 보호 명분으로 제정된 법이다. 행정부가 현실을 인정하고 분명하게 절충 의지를 보인 만큼 한국 조선 업체로서는 제도 내 우회로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투자 혜택 관련 제도가 정비되리라는 점도 우호적인 측면이다. MAP는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최소 1,500억 달러(약 216조7,000억 원)의 미국 조선업 전용 투자를 확보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작년 도출된 한미 간 통상 합의를 통해 한국이 관세 인하 반대급부로 약속한 3,500억 달러(약 505조7,000억 원) 규모 대미 투자 중 조선업 전용 투자 패키지, 즉 ‘마스가’에 책정된 자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한 투자 경로로 MAP에서 제시된 아이디어가 ‘해양 번영 구역(MPZ)’이다. 계획은 “연방과 주(州), 지방 정부 전반에 걸친 세액 공제, 대출 보증, 인력 훈련 프로그램 등 기존 인센티브 메커니즘이 파편화돼 있고 주요 조선 업체를 유치하기에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며 MPZ 지정을 통해 이를 조율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전략보다 지역 정치

MAP에는 한국에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 사실상 외국 선박 대상 관세인 입항료는 화주(수입 업체)가 부담하는 게 상식적이고 결국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공산이 크지만, 당장 선주(해운사)도 상당액을 분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산 선박 수요 창출이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라는 회의론이 상당한 만큼 당분간 해운사나 수출 업체에 압박 요인이 될 전망이다. 교역 비용의 증가는 미국 시장 수요에도 영향을 미치기 십상이어서 한국 경제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미국행 컨테이너 화물의 일정 부분을 점진적으로 미국산 선박이 운송하도록 요구하는 ‘미국 해양 우선 요건(USMPR)’의 경우 이해가 엇갈릴 수 있다. 한국산 수출품을 운송하는 국적 선사와 주요 수출 업체들에는 운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미국 내 투자를 강행하는 한국 조선 업체의 경우 초기 수요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조선업의 고비용 구조와 보호주의적 규제 현실이 병존하는 이상 경쟁력 강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비관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켈리 그리코 선임연구원은 최근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선박의 일부 또는 전체를 한국 조선소에서 만들어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전략적으로는 이치에 딱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불합리한 모순적 상황이 존재한다”며 “조선업과 이해관계가 깊은 미 의회 의원들이 반대하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선거 운동도 '소통왕' 이 대통령 따라… '명픽' 노리는 與 예비 후보들-정치ㅣ한국일보
- "교복값이 60만 원?" 논란 뒤엔... '정복 대신 생활복' 변화 있었다-경제ㅣ한국일보
- 젠슨 황 '치맥 회동' 숨은 주인공은? 기도하며 소맥 탄 MZ 사원-경제ㅣ한국일보
- 김수영, '개콘' 폐지 후 마트 판매원 된 근황... "사업 실패로 큰 빚"-문화ㅣ한국일보
- [단독] 김어준 흔들리나, '뉴스공장' 구독자 2만명 감소..."필요 이상의 권력 행사해"
- ‘구독자 50만’ 유명 마술사, 가족과 싸우고 집에 불 지르려다 입건-사회ㅣ한국일보
- '최가온 금메달' 순간 놓친 JTBC… "시청자 선택권 고려한 결정"-문화ㅣ한국일보
- 지지율 바닥 친 날, 배현진 '징계' 한 장동혁... 한동훈 "공당으로서 자해 행위"-정치ㅣ한국일보
- 충주맨, 직접 밝힌 퇴사 결심 "이젠 자유의 몸… 정치는 절대 아냐" [직격인터뷰]-문화ㅣ한국일보
- 배우 최정윤, 재혼 깜짝 발표 "상대는 5세 연하"-문화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