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쇼미더머니〉, 시청률보다 더 큰 문제는··· [콘텐츠의 순간들]

2012년 첫선을 보인 엠넷의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는 한국 힙합 팬들에게 애증의 프로그램이다. 아직 비주류 장르였던 힙합을 대중음악계 전면으로 끌어올린 공로가 있는 한편, 힙합에 대한 대중의 왜곡된 인식과 편견 또한 굳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잖은 스타 래퍼를 배출하며 10여 년 세월 동안 대표적인 음악 서바이벌 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영향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대중의 관심도는 점점 떨어졌고, 랩스타가 탄생하는 비율도 현저히 줄었다. 반복되는 포맷, 화제성 있는 참가자의 부재, 지속되는 여러 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결국 2022년, 이영지라는 스타 우승자를 배출하고도 프로그램에 대한 평과 시청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한 아이러니를 안은 채, 시즌 11을 끝으로 〈쇼미더머니〉는 막을 내렸다.
한국 힙합 신에서 〈쇼미더머니〉의 공백은 컸다. 그동안 입지를 다진 래퍼가 많아진 데다가 힙합의 저변 역시 탄탄해졌으니 〈쇼미더머니〉 없이도 자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상황은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힙합은 다시금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쇼미더머니〉가 시즌 12로 돌아왔다. 3년여 만이다.
지원자 수만 명이 몰렸고, 티저 영상의 조회수도 높았다. 시장이 위축되자 움츠렸던 많은 래퍼들, 다시 힙합 신에 활기가 돌길 바라던 래퍼 지망생과 장르 팬들도 프로그램의 복귀를 환영했다. 비록 이전 시즌의 마무리는 초라했지만, 〈쇼미더머니〉는 여전히 강력한 관심을 증명했다. 그런데 막상 방송이 시작되니 반응이 좋지 않다. 0.6%라는 저조한 시청률은 큰 문제가 아니다. 본방송보다 재방송, 혹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시대니까.
정말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그동안 맹목적인 힙합 사랑을 바탕으로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쇼미더머니〉를 방어해주던 힙합 팬들마저 실망감을 표한다는 사실이다. 제일 큰 원인은 관성적이며 시대착오적인 편집이다. 단순히 ‘악마의 편집’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악마조차 신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쇼미더머니〉의 편집은 논쟁적인 동시에 흥미를 유발했다. 특정 참가자들을 ‘빌런’과 영웅으로 만드는 장치는 여느 오디션 예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도였지만, 〈쇼미더머니〉에서는 경쟁이라는 힙합의 문화적 특징과 맞물리며 확실한 재미 요소가 되었다. 때로는 빌런처럼 묘사되던 이가 주연 자리를 꿰차는 반전의 묘미도 있었다. 이러한 묘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했는지와는 별개로 최소한 의도는 분명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편집은 마치 자동화된 알고리즘처럼 작동했다. 시즌 12에 이르러서도 바뀐 점은 없다. 예컨대 갈등이 필요해 보이는 지점에 갈등을 배치하고, 감정이 식을 것 같으면 반응 컷을 삽입하는 식이다. 촌스러운 슬로모션 연출, 참가자의 퍼포먼스보다 다른 참가자와 심사위원의 리액션에 더 집중하는 편집도 여전하다. 이 과정은 너무 익숙해서 시청자가 다음 장면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편집의 공식화는 프로그램을 자기복제 상태로 내몬다. 시즌이 바뀌어도 편집의 리듬은 바뀌지 않고, 그 결과 새로운 래퍼가 등장해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인다.
애초의 편집이 독창적이거나 감각적이었다 해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매너리즘이다. 하물며 그렇지 못한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과연 제작진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했을까? 지난 시즌에서 ‘비존중적’ 연출이라는 이유로 반발을 샀던, 일명 ‘불구덩이 심사’를 다시 내세워 홍보하는 행태를 보면 답은 회의적이다. 때로는 요즘 유행하는 쇼츠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본방송을 기획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노후한 편집이 ‘진짜’를 가릴 수 있나
오늘날 대중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접한다. 해외 서바이벌 쇼, 다큐멘터리형 음악 프로그램, 감성 중심의 OTT 예능 등이 눈길을 끈다. 주목받는 프로그램 대부분은 점점 편집에서 자극보다 절제를 선택하고 있다(아니면 아예 자극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갈등을 과장하기보다 맥락을 제공하고, 리액션을 반복하기보다 인물의 내적 동기를 설명한다.
반면 〈쇼미더머니 12〉의 편집은 여전히 2010년대의 문법에 머물러 있다. 과거에는 이것이 강력한 무기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오히려 프로그램의 노후함을 드러내는 징후처럼 보인다. 보는 이들이 짜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이 이미 더 효과적인 예능 프로그램 편집을 맛본 순간, 익숙한 방식은 더 이상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번 〈쇼미더머니 12〉의 편집 논란은 단순히 연출 실패만의 문제가 아니다. 힙합이라는 문화가 지닌 고유한 성질과 예능이라는 포맷이 요구하는 규칙 사이의 오랜 충돌이 표면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힙합 문화에서는 본질적으로 자기 연출에 대한 통제권을 중시한다.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아티스트 스스로 결정한다. 가사와 패션, 그리고 태도까지 모두 자기 서사의 일부다.
반면 〈쇼미더머니〉에서 서사의 주도권은 편집에 있다. 출연자는 재료가 되고 이야기의 방향은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이 구조에서 힙합은 필연적으로 불편해진다. 힙합은 타인의 편집을 통해 이른바 ‘진짜’가 규정되는 상황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 12〉의 낡은 편집이 반복과 과장을 통해 감정을 증폭시키려 애쓰는 순간, 참가한 래퍼들은 자신의 언어를 잃는다. 랩은 더 이상 자기 진술이 아니라 리액션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가 되는 셈이다.
과거에는 이 충돌이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문제였다 해도 당시의 예능 문법이 지배적이었다. 대안도 많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유일한 힙합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쇼미더머니〉를 열렬히 지지하던 힙합 커뮤니티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는 방식’ ‘정체성을 존중하는 구조’ ‘힙합의 다양성을 담아내는 포맷’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쇼미더머니〉가 선택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편집이라는 권력을 내려놓고 덜 개입하는 용기다. 그러면 힙합이 다시 말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강일권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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