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전 5승’ 보수의 아성 ‘부산’, 이번엔 무너질까? [지선리포트]

정윤경 기자 2026. 2. 1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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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 떠오른 부산…‘현역 프리미엄’ 박형준 vs ‘해수부 이전’ 전재수
부산 판세 흔드는 ‘경제’…“부산 인구, 30년간 60만 명 줄었다” 진단도
野 후보도 ‘변화’ 전면에…“행정통합 찬성” 조경태 vs “새 얼굴” 주진우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부산은 보수 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다. 선거 때마다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물보다는 당색이 앞섰다는 평가다. 역대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는 단 한 차례, 오거돈 전 시장 때였다. 그러나 그 판은 오래가지 못했다. 성비위 논란 끝 오 전 시장의 중도 사퇴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박형준 현 시장이 연거푸 승리하며 판은 다시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부산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런데 최근 부산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민주당에서는 심지어 '해 볼 만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 왜일까. 청년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노인만 남은 도시는 성장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어서다. 부산 곳곳에선 '도시의 체력이 떨어졌다'는 위기감이 번진다. 국민의힘 소속 한 부산 의원조차 "민심이 변화를 원한다"고 진단할 정도다. 이런 흐름을 타고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부상했다. '통일교 게이트'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부산시장 적합도 1위를 기록했다. 보수의 성벽이 여전히 견고할지, 아니면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는지, 이번 지방선거가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박형준 부산시장 ⓒ 연합뉴스

'오거돈 빼고' 역대 부산시장 모두 '보수'

역대 부산광역시장 6명 중 5명은 보수 정당 소속이었다. 첫 민선 시장은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문정수 전 시장이었다. 그는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꺾고 부산의 선택을 받았다. 이후 바통은 한나라당의 안상영 전 시장에게 넘어갔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전성기를 맞았지만 2004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돼 부산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격랑 속에서 시정을 수습한 인물이 당시 권한대행이던 오거돈 전 시장이다.

안 전 시장의 뇌물 혐의라는 악재에도 부산의 지형은 흔들리지 않았다. 같은 해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허남식 전 시장이 승리했다. 맞상대는 열린우리당 소속의 오거돈 전 시장이었다. 부산 시민이 다시 한번 보수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허 전 시장은 이후 3선에 성공하며 역대 최장수 부산시장 기록을 세웠다. 그 뒤를 이어 새누리당의 서병수 전 시장이 당선됐다. 굵직한 변수와 파고 속에서도 부산의 권력 축은 오랫동안 보수 진영에 고정돼 있었다.

이때만 해도 부산은 보수의 텃밭으로 평가받았으나 서서히 균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2018년 지방선거가 그 시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진 첫 전국 단위 선거였다. 전국적으로 '정권 심판론'이 거세게 불었고 보수 아성으로 불리던 부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당선된 인물이 오거돈 전 시장이다. 민주당이 사상 처음으로 부산시장을 배출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 전 시장은 2년 만에 직원 강제추행 혐의로 자진 사퇴했고 이어진 보궐선거에서 박형준 시장이 당선돼 부산의 정치 지형은 다시 보수 쪽으로 되돌아갔다.

개강 준비가 한창인 지난해 8월19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부산캠퍼스 정문 일대의 썰렁한 대학가 모습 ⓒ 시사저널 박정훈

부산 살릴 '인재', '요람' 탈출한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부산에 또 한 번의 균열이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배경에는 정치적 변수보다 경제적 침체가 먼저 거론된다. 지금 부산은 과거의 영광을 잊은 지 오래다. '제2의 수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남은 도시는 빠르게 고령화됐다. 부산의 대표 거점국립대인 부산대는 2023년 자퇴생 수가 무려 1000명을 넘어섰다. 자연스레 '젊음의 거리'로 불렸던 부산대 앞 등 대학가 상권들도 활기를 잃고 공실이 늘어나 '임대 찾는 거리'로 전락했다. 시사저널이 부산을 찾았을 때도 지역 산업과 경제를 살릴 '인재'들이 '요람'에서 벗어나려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시사저널 2025년 8월25일자 「"서울대 10개 만들면 '텅 빈' 지방 채워질까" 이유 있는 학생들의 지방대 대탈출 [시사저널 연중기획│지방소멸에 산소호흡기를⑤]」 기사 참조).

이 같은 인구 유출과 활력 저하는 곧바로 경제 지표로 이어졌다. 청년이 빠져나간 도시는 소비와 투자 모두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부산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전국 최하위권, 사실상 꼴찌에서 두 번째 수준이다.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은 2616만원으로 전국 평균(2782만원)을 밑돈다. 가계가 소비와 저축에 쓸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같은 광역시인 울산과 대전이 평균을 웃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산이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적 침체가 누적될수록 정치 지형의 균열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해양수산부 이전을 전면에 내건 전재수 의원이 주목받는 건 그래서다. 해수부 이전이 침체된 경제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카드로 읽히기 때문이다. 부산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의제기도 하다. 중앙부처 이전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인구 유입과 소비 확대, 연관 산업 활성화로 이어지길 바라는 지역민의 기대가 크다. 앞서 전 의원은 1월24일 SNS 계정에 "제가 해수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 북극항로 시대를 선점하는 데 부산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며 "해수부 부산 시대를 위해 일하고 또 일하겠다"고 적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행정통합 의제 역시 전 의원에게 유리한 판으로 작용한다. 수도권 집중에 맞서기 위한 변화 요구가 커질수록 현상 유지보다는 판을 바꾸겠다는 쪽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아서다. 반선호 부산시의원은 지난 11일 국제신문과 부울경포럼이 공동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 "부산 인구가 30년간 60만 명 줄었다. 이건 개별 도시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며 "우리끼리 경쟁하는 사이 수도권은 비대해졌다. 배고픈 부산 시민에게 28년까지 기다리라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진단했다.

부산 정가 일각에선 이미 출마 선언을 한 이재성 전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도 다크호스로 언급된다. AI(인공지능) 전문가이자 기업인 출신인 이 전 시당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영입 인재 2호다. 최근 '해양·조선·국방 AI 세계 1위 도시 부산'을 비전으로 제시한 뒤 표밭 다지기에 나섰다. 그는 지난 3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부산항 북항의 시계는 멈춰있다"며 "해수부 북항 신청사 시대를 열어 정책과 산업이 만나고 투자와 일자리가 이어지는 부산의 전략 공간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조직력' '안정론' 무기로 내세워

이런 위기감을 감지하듯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보수 진영 주자들조차도 '변화'를 말한다. 당내 최다선(6선)인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부산 사하을)도 이례적으로 행정통합에 공개적으로 힘을 싣고 나섰다. 조 의원은 지난 3일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행정통합을 통한 개편 작업은 당연하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는 그 어떤 도시들도 규모를 키워 나가지 않으면 경쟁력에서 밀린다"며 "국민의힘에서 뉴시티 프로젝트 위원장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런 경험을 잘 좀 살려서 행정통합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 초선·70년대생인 주진우 의원(부산 해운대갑)도 세대교체 이미지를 앞세운다. 주 의원은 부산시장 여론조사에 처음 이름을 올렸음에도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부산언론인연합회 의뢰 조사에서 11.4%의 적합도를 얻어 국민의힘 내 2위에 올랐다. 특히 민주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40대에서 11.6%를 기록하며 범야권 후보군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보수 진영 안에서도 세대 확장과 외연 확대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박형준 시장의 '현역 프리미엄'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변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내홍이 수습되고 보수 지지층이 결집한다면, 현직이 가진 조직력과 인지도는 강력한 무기로 작동할 수 있다. 시정 성과를 앞세운 안정론 역시 일정한 호응을 얻고 있다.

박 시장은 이른바 '4말 5초'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직을 유지한 채 5월 초 후보 등록에 나서는 구상이다. 과거 현역 부산시장들이 보여준 전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직을 내려놓는 순간 현직의 상징성과 행정 장악력이 희석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변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역의 벽 역시 만만치 않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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