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는 시작일 뿐… 한국 핵추진잠수함, MDA의 벽 넘을까 [박수찬의 軍]
한·미 안보 현안 논의가 초기 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통상 분야에서의 미국 측 불만이 안보 분야 합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는 “미국 협상팀이 2월 말 또는 3월 초쯤 방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리스크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면 수십년에 걸친 핵추진잠수함 건조 시도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속도전으로 성과 노리나
정부는 조인트 팩트시트에 명시된 핵추진잠수함 건조나 우라늄 농축 등에 대해 미국 측의 합의 이행 의지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중간선거 전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미국과의 협상을 빠르게 진행할 모양새다.
국방부는 지난달 전력정책국 산하에 핵추진잠수함획득추진팀을 설치, 국내 환경 정비와 대미 협상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외교부도 관련 팀을 꾸렸다.
국내 환경 정비를 위해 국방부는 핵추진잠수함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내부적으로 초안 관련 검토 등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한 작업이 은밀하게 진행됐지만,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개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핵연료 공급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의 등은 미국과의 협상을 거치면서 특별법 제정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대미 협상 과정에서 미국측이 요구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정부가 예상치 못한 부분이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국방부는 내부 검토와 대미 협상 결과를 토대로 특별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 입법화 과정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美 협정 체결, 변수는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해선 정상간 합의, 미국과의 별도 협정 체결, 미 의회 동의를 모두 거쳐야 한다.

따라서 한·미가 별도로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급망·비확산·기술이전 등에서 훨씬 복잡한 절차와 높은 정치적 리스크에 직면할 위험이 높다. 이는 핵추진잠수함 프로젝트를 무력화할 수 있다.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등을 방문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미국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협력 사안과 관련한 양국의 별도 협정의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에선 협정 관련 작업도 진행중이다.
협정의 틀은 1958년 미국에 영국에 핵추진잠수함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체결된 미·영 상호방위협정(MDA)과 유사할 전망이다.

미국은 MDA에 근거해 온전한 형태의 원자로와 핵연료를 포함해서 핵추진 체계 설계, 안전 기준, 건조 노하우 등의 기술정보를 영국에 제공했다.
영국은 이를 통해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축적, 자체적인 건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미·영 MDA는 양국간의 특수 관계가 반영된 전례 없는 차원의 협력이었다. 인류 최초의 핵폭탄을 만든 맨해튼 계획에 영국이 침여하면서 미·영 관계가 특별한 수준으로 높아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협정을 맺는다면, 핵연료만 제공하는 것으로 그치기가 어렵다. 안전과 보안 등의 문제 때문이다.

핵연료 교체 인프라와 잠수함 유지보수 체계, 군사용 원자력 안전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경험과 기술이 부족하므로 미국의 참여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MDA에 맞먹는 수준의 협력 체계를 요구한다. 1950년대 이래로 단 한번만 실현됐던 특수 협정을 한국이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국 간 협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만큼 정부가 고도의 협상 전략을 구상해야 실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뢰 높일 패키지 전략 필수

실제로 1987년 11월 5일 멜빈 프라이스 당시 연방하원의원이 캐스퍼 웨인버거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는 “동맹국이 우리의 핵추진 기술을 원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러한 기술의 공개에 일관되게 강력한 반대 정책을 펼쳐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캐나다가 핵추진잠수함 10∼12척 도입을 추진하던 1988년 3월 제임스 엑손 당시 연방 상원의원은 “그들(캐나다)은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려 한다. 안전 문제와 더불어 핵추진잠수함 프로그램에 미칠 영향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캐나다는 핵추진잠수함 계획을 포기했다.
한국도 미 의회의 반발과 우려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가 한국과의 합의 내용을 담은 협정을 의회에 제출했을 때나 핵물질과 기술 수출 승인이 필요할 때, 대외군사판매(FMS) 승인 등에서 미 의회의 움직임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같은 과거 사례를 앞세워 미 의회에서 비확산 기조를 강조하는 초당적 목소리가 나오면,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는 더욱 어렵다.
실제로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상원의원 4명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에 대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지원 방침 등과 관련해 핵 확산 위험을 주장하며 우려를 표시했다.

또한 원자력 안전과 보안을 위한 인력 양성 및 인프라 구축 계획을 서둘러 마련해 핵추진잠수함을 안전하게 장기간 운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입증해야 한다.
한국은 군함과 상선 기반의 조선 역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핵추진잠수함과 군사용 핵연료 등은 미지의 영역이다. 미국과의 협의에 따른 지원이 필수다. 이를 위해선 면밀한 전략 수립과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 대미 협상을 앞두고 치밀하게 설정된 범정부적 전략이 요구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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