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도로 지루함 잊게 해줄 ‘설날 플레이리스트’

이정국 기자 2026. 2. 1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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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제로 한 7곡
이정국 기자가 인공지능(AI) 제미나이에게 “설날 고향에 가는 가족이 차 안에서 즐겁게 음악을 듣는 장면을 신문용 삽화에 맞게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설 귀향길엔 풍경보다 마음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 도로 표지판에 고향의 이름이 뜨는 순간, 우리는 이미 고향집 앞에 서 있다. 자동차나 기차 안,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라디오처럼 흘러나오는 노래 한곡이 침묵을 덜 어색하게 만들고, 창밖의 어둠을 덜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귀향길 플레이리스트의 핵심은 ‘흥을 돋우는 곡’이 아니라 ‘마음을 풀어주는 곡’이다. ‘집’을 주제로 한 가요·팝·재즈 7곡을 골랐다. 집은 누군가에겐 그리운 고향이고, 또 연휴 뒤 복귀하는 생활의 터전일 테다. 꽉 막히는 길에서 음악은 시간을 줄여주진 못해도 ‘견딜 만하게’ 바꿔준다.

‘고잉 홈’이 수록된 김윤아의 앨범 ‘315360’ 표지. 놀(NOL)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윤아 ‘고잉 홈’(2009)

‘집’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방향이라는 걸 또렷하게 말하는 노래다. 김윤아의 목소리는 울먹이기 직전의 선을 오래 지키며,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그리움’이 아니라 ‘살아내기’로 바꿔놓는다.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어떤 문장은 날카롭게, 어떤 문장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마음의 결을 고른다. 귀향길 내내 마음이 바빠질 때, 이 곡은 속도를 줄이고 숨을 고르게 한다.

가수 나훈아. 예아라·예소리 제공

■ 나훈아 ‘고향역’(1986)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구성진 나훈아의 목소리가 나오면 떠나온 시간, 남겨둔 사람, 다시 마주칠 얼굴이 한 장면으로 겹쳐진다. ‘귀향’이란 말에 담긴 약속과 부채감을 동시에 꺼내 보여주면서도, 끝내 따뜻한 쪽으로 기운다. 간결한 멜로디가 반복될수록 사연이 더 또렷해지고, 그래서 더 쉽게 따라 부르게 된다. 창밖 풍경이 낯익어질수록 더 잘 어울리는, 세대를 초월하는 노래다.

팻 메시니. 한겨레 자료사진

■ 팻 메시니 그룹 ‘라스트 트레인 홈’(1987)

제목 그대로 ‘마지막 열차’의 리듬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느낌을 주는 곡이다. 반복되는 기타 프레이즈와 드럼의 추진력이 레일 위 규칙적인 떨림을 닮았다. 퓨전 재즈이지만 감상 포인트는 복잡함이 아니라 ‘꾸준함’이다. 같은 패턴이 조금씩 표정을 바꾸며 이어지는데, 그 미세한 변화가 장거리 운전의 집중과도 닮았다. 막히는 도로에서도 마음이 덜 조급해지는, 일정한 호흡의 곡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 공식 누리집 갈무리

■ 사이먼 앤 가펑클 ‘홈워드 바운드’(1966)

“어딘가로 가는 중”이라는 문장 자체가 노래가 된다. 떠돌이의 고독을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인지 보여준다. 기타 한대의 단정한 리듬이 차 안 공기를 정리해주고, 코러스가 들어오는 순간엔 ‘다 왔다’는 착각까지 준다. 과장된 감정이 없어 오히려 오래 듣기 좋고, 동승자와 취향이 달라도 무난히 합의가 된다. 장거리 이동 중간, 집중이 흐트러질 때 틀어보자.

필 콜린스 ‘테이크 미 홈’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갈무리

■ 필 콜린스 ‘테이크 미 홈’(1985)

드럼 머신과 묵직한 보컬이 ‘집’의 이미지를 낭만보다 현실로 끌어당긴다. 지친 하루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의 감각, 그러니까 “그냥 데려다줘”라는 솔직함이 있다. 코러스가 반복될수록 간절함이 단단해지고, 리듬은 일정하게 달린다. 야간 운전처럼 어두운 시간대에 특히 잘 맞는다. 귀경길에 듣는 걸 추천한다. 일상으로 복귀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존 덴버. 한겨레 자료사진

■ 존 덴버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즈’(1971)

‘집’이 꼭 가족의 주소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려주는 노래. 풍경, 냄새, 공기 같은 감각의 총합이 집이 될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가 넓은 들판을 그려내고, 후렴은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한번에 묶어준다. 함께 따라 부르기 쉬워 동승자가 있다면 특히 좋다. 목적지 도착 30분 전쯤, 기분 전환용으로 딱이다.

도리스 데이. 소니뮤직코리아 제공

■ 도리스 데이 ‘센티멘털 저니’(1945)

빅밴드 스윙은 ‘돌아감’의 설렘을 가장 밝게 연주한다. 재즈 스탠더드로 사랑받은 이 곡은 낡은 역 플랫폼의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리듬이 가볍게 튀면서도 과하게 들뜨지 않아 긴장을 풀어준다. 장거리 이동이 부담이라면, 이 노래는 그 부담을 ‘여행’으로 바꾸는 작은 마법이다.

길 위의 음악은 내비게이션처럼 목적지를 알려주진 않는다. 대신 어떤 얼굴로 도착할지를 정해준다. 이번 설 귀성과 귀경이 ‘빠르게’가 아니라 ‘무사히’로 끝나길, 그리고 그 끝에서 서로의 손이 한번 더 맞닿길, 또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나, 집에 왔어.”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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