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난치 질환 열쇠로 부상한 마이크로바이옴…국내 R&D '주춤'

미생물은 40억 년을 진화하며 지구 생물권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이들은 물질과 에너지 순환의 핵심을 담당해 동식물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생물은 프로테오로돕신을 지닌 ‘Candidatus Pelagibacter communis’로 무려 2×1028 개체가 바다 플랑크톤의 25%를 차지한다. 또 3×1027 개체의 남세균 Prochlorococcus는 광합성을 통해 지구 산소 생산의 13~48%를 책임진다.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 또한 미국 오레곤 숲에서 발견된 곰팡이인 '꿀버섯'으로 축구장 1600개보다 크고 대왕고래 200마리보다 무겁다.
우리 몸 역시 거대한 미생물 배양기다. 세균, 고균, 원생생물, 곰팡이 등 다양한 미생물이 우리의 입과 코, 피부, 장, 비뇨생식기 등 구석구석에 깃들어 살아간다. 여기에 박테리오파지와 같은 바이러스까지 포함하면 우리 몸은 그야말로 ‘미생물 소우주’다.
미생물 생태계와 그들이 만드는 생체물질의 복잡계를 우리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부른다. 특히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무게가 뇌와 맞먹어 ‘보이지 않는 장기’라 불린다. 위장관은 음식 소화뿐 아니라 면역세포의 70% 이상이 몰려 있는 면역의 중심지이며 호르몬을 생산하는 내분비기관이자 척수보다 많은 신경세포로 독립된 신경망을 이루어 “제2의 뇌”라 불린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미생물과 함께 살아간다. 엄마와 음식, 환경을 통해 만난 미생물은 평생을 반려하며 우리의 건강한 삶과 희노애락을 좌우한다. 히포크라테스가 “음식이 약이 되고 약이 음식이 되게 하라”고 말했고 허준이 '동의보감'에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질병은 장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장과 마이크로바이옴이 건강과 질병의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생물학자 메치니코프는 1907년 '생명연장'에서 “노화는 장의 미생물 때문이다”고 주장하며 오늘날 프로바이오틱스와 장-뇌 축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
우리 몸의 유전체는 2만여 개 유전자를 담고 있지만 이들 반려 미생물은 종마다 수천 개의 유전자를 지니며 총합은 수백만에 이른다. 이 ‘제2의 유전체’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단백질과 대사물질은 몸과 마음을 관장하여 면역질환, 대사질환, 심혈관질환, 뇌신경질환, 암과 노화까지 깊이 관여한다.
그래서 인체와 마이크로바이옴을 하나의 초유기체 또는 완전체, 홀로바이옴(holobiome)으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난치성 질환 제어와 노화 극복을 위한 새로운 생명과학적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개발은 최근 다소 주춤하고 있다. 일부 기업의 치료제 개발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면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는 자금 조달의 문제뿐 아니라 개인마다 다른 미생물 구성, 임상 및 기능 관련 기초 데이터 부족, 표준화된 분석 프로토콜의 부재, 작용기전 규명의 미비 등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국가 차원의 대규모 코호트와 고품질 빅데이터 구축, 기초·중개·임상 연구의 체계적 협업이 필수적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류 보건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모달리티(modality)로서 다른 첨단 과학기술과 만나 그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 합성생물학 등과 마이크로바이옴 빅데이터가 합체하면 생명과학과 생명공학 및 의약학 혁신의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
실제로 딥러닝 파운데이션 모델 Evo 개발 과정에서 메타유전체 연구로 축적된 수백만 개의 미생물 유전체 정보가 학습 데이터로 활용된 사례가 있다.
우리 몸의 반쪽인 마이크로바이옴을 이해하고 돌보는 일은 단순히 속을 편하게 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건강과 미래를 좌우하는 과제다. 최근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정부는 범국가적 AI 대전환을 설계하며 AI와 바이오를 결합한 국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나의 반쪽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 연구와 지원이 뒷받침될 때 우리는 비로소 ‘속 편한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세상은 나와 나의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미래다.
[김지현 연세대 교수·마이크로바이옴연구원장 jfk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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