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극장가 사로잡은 ‘왕과 사는 남자’, 역사로 읽다 (하)어디까지 상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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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면 가족과 함께 극장을 찾는 이가 적지 않다.
올해는 비운의 어린 왕 단종(박지훈 분)과 그의 시신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엄홍도(유해진 분)의 이야기를 상상력을 더해 풀어낸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가 관객의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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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촌장 엄흥도, 실제론 영월의 호장
유배지가 된 마을, 여러 이득을 보기도

‘왕과 사는 남자’의 장항준 감독은 “조선 후기 역사서 ‘연려실기술’에 ‘모시고 있던 통인이 (단종의) 목을 졸랐다’는 내용이 나온다”며 “단종을 유배지에서 최후까지 모신 사람과 장례를 치른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상상에서 엄흥도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단종의 왕위 피탈 후 전개된 상황을 기록한 역사서 ‘장릉지’(1711)에도 ‘공생(하급 관리)이 활 끈으로 노산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였다. 노산군의 옥체는 청령포의 강물에 던져 버린 것을 영월의 호장(향리의 우두머리) 엄흥도가 몰래 거두어 영월군 북쪽 5리쯤의 동을지에 매장했다'고 적혀 있다.
역사와 달리 영화에서 엄흥도는 강원 영월 산골마을 광천골의 촌장으로 등장한다. 먹고 살기 힘든 마을을 살리겠다며 광천골이 유배지로 지정받기 위해 애쓴다. 결국 단종을 자신의 마을로 오게하는 데 성공하고 단종을 감시하는 보수주인의 역할을 맡는다.


조선시대 유배지로 지정된 곳은 여러 이득을 봤다. 집 안에 가두는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중죄인에게만 해당했다. 유배를 간 관료는 대부분 마을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들은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예술 활동을 했다.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서 18년 간 유배 생활을 하며 수많은 제자를 키워내고 실학을 집대성했으며, 김정희는 제주 유배 시절 국보 ‘세한도’를 남겼다. 유배지로 문안을 오는 가족과 유림 덕에 마을로 서적, 약재가 들어왔고 주막이나 숙박 시설이 활기를 띠기도 했다.

그러나 단종이 유배간 청령포는 서쪽·남쪽·북쪽은 강으로, 동쪽은 절벽으로 가로막힌 곳이었다. 배가 없인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외부와의 접촉도 차단됐다.

고종 때 엄 흥도의 후손 엄주호는 단종과 엄흥도의 첫 만남을 상소문에 썼 다. 영월로 유배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은 사육신 을 만나는 꿈을 꾸고 울음을 터트렸다. 산에 있던 엄흥도가 그 소리를 따라가다가 단종과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단종이 꿈을 꾼 뒤 절벽에서 떨어져 자결하려는 것을 엄흥도가 발견해 구하는 것으로 각색했다.
단종이 죽은 뒤 시신을 동강에 던졌다는 이야기는 야사로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묻을 곳을 찾고 있을 때 눈이 많이 내려 맨땅을 찾을 수 없었단다. 그때 산에 앉아 있던 노루 한마리가 사람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는데, 노루가 앉았던 자리에는 눈이 녹아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이를 본 엄흥도는 그것을 천우신조로 여겨 그곳에 단종의 시신을 매장했다. 그 후 엄흥도와 그의 가족은 자취를 감추고 숨어 지냈다.

단종이 죽은 지 200여 년이 지난 현종 때 엄흥도의 후손이 조정에 등용됐고, 숙종 때 엄홍도는 공조참의 관직을 받았다. 순조 때는 공조판서로 증직됐다.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에 배향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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