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1호 사건 삼표 회장 무죄…‘경영책임자’ 해석이 쟁점 [허란의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외고 2026. 2. 1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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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후 첫 사망사고인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붕괴 사건에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1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그룹 회장을 중처법상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중처법은 안전보건 조치 위반으로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법인을 처벌함으로써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기업의 안전 시스템 미비로 일어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며 "최상급 최종적 의사 결정권을 가진 경영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을 중처법을 무력화하고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와 기업 총수들에게 집단적인 면죄부를 부여한 판결로 규정하며 강력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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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총수는 제외…법원 “경영책임자=대표이사” 판단

[법알못 판례 읽기]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2024년 4월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후 첫 사망사고인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붕괴 사건에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1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그룹 회장을 중처법상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중처법상 의무 주체인 경영책임자는 기본적으로 대표이사가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022년 1월 29일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에서 석분토 야적장이 붕괴하며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했다.

중처법 시행 이틀 만에 발생한 이 사고로 ‘중처법 1호 사건’으로 기록됐다. 검찰은 정 회장은 중처법 위반으로, 이종신 당시 삼표산업 대표이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그룹 총수는 중처법상 경영책임자인가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이영은 판사는 2월 10일 선고 공판에서 정 회장과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처법의 내용과 입법 과정 논의에 비춰 볼 때 중처법상 의무 주체인 경영책임자는 기본적으로 대표이사가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중처법은 안전보건 조치 위반으로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법인을 처벌함으로써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기업의 안전 시스템 미비로 일어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며 “최상급 최종적 의사 결정권을 가진 경영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당초 경영책임자를 법인의 대표이사뿐 아니라 이사가 아닌 자로도 법인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자로 규정하려는 논의가 있었다”며 “이는 회장과 같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염두에 둔 것이었으나 상법상·민법상 비영리법인과의 형평 문제로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인의 경우 중처법상 사업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대표이사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대표이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외의 자에게 법인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표이사가 아닌 자를 경영책임자로 인정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첫째, 대표이사가 아닌 자에게 실질적·구체적으로 법인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점. 둘째, 이로 인해 대표이사가 중처법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그룹사 관련 회의를 진행하거나 보고를 받은 점은 인정되지만 이것만으로는 중처법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는 지위에 있다고 단언하기 부족하다”며 “삼표그룹의 규모나 조직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이 중처법상 의무를 구체적·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해당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삼표그룹 구성원들이 정 회장을 ‘TM’(Top Management)으로 칭하며 보고하고 지시받는 정황이 담긴 메시지와 문서를 제시했다. 삼표산업의 이메일, 카톡 메시지, 회장 보고 자료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반면 정 회장 측은 “그룹의 전반적인 방향만 설정했을 뿐 실질적인 최종 의사결정은 각 사업 부문 대표이사가 한다”고 반박했다.

 이종신 전 대표이사 무죄, 현장 책임자들은 유죄

이종신 전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으나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양주사업소 야적장에서 법령에 따른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했거나 그러한 조치 없이 작업이 진행되는 사실을 알았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전 대표가 2022년 골재 부문 대표로 취임해 양주사업소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사고 전날에도 현장을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경일 연휴 기간 생산을 지시했고 사고 1일 전 붕괴 사면을 목격했음에도 즉각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양주사업소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현장소장인 최현과 동일하게 업무상 주의의무를 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고 전날 양주사업소를 방문했을 때 붕괴를 봤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현장 관계자 4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현 양주사업소 소장(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신승식 안전담당자에게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문재엽 관리담당자에게는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김우진 화약관리책임자에게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각각 선고됐다.

재판부는 “석분토 야적장에서 법령에 따른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다”며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적극적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 소장에 대해서는 “양주사업소를 총괄하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서 석분토를 야적하고 그 하부에서 채석 작업을 하는 데 따른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며 “그 죄책이 무겁다”고 밝혔다.

삼표산업 법인에 대해서는 중처법 위반 혐의로는 무죄가 나왔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일부 혐의가 인정돼 벌금 1억원이 선고됐다.

[돋보기]

 양형기준 부재가 낳은 논란…노동계 “법 취지 무력화” 강력 반발

검찰의 항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항소심에서 1심 재판부가 제시한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라는 기준을 넘어서려면 새로운 법리나 근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검찰이 재판부 논리에 따라 이 전 대표를 중처법으로 기소하도록 공소장을 변경하면 정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본 기존 입장과 논리적으로 상충한다는 점에서 변경 가능성은 작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법원은 ‘중처법 1호 재판’에서조차 총수와 최고책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이는 단순한 판결을 넘어 법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을 중처법을 무력화하고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와 기업 총수들에게 집단적인 면죄부를 부여한 판결로 규정하며 강력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은 중대재해 사건에서 최고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이번 판결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산업재해 예방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자원 배분 체계 전반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최고 경영진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게 법의 핵심 취지”라며 “이번 판단은 중처법 제정 취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기업의 복잡한 지배구조 속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을 좁게 해석할 경우 기업이 조직 구조를 통해 의도적으로 책임을 분산하거나 회피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번 판결은 중처법 취지를 몰각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에는 중처법에 대한 양형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자리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하반기 중처법 양형기준을 설정하기로 했다. 2025년 12월 대법원에서 열린 양형위원회 양형연구회 심포지엄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에서는 중대재해법 시행 3년을 맞아 법조계와 학계, 입법부가 처벌의 초점을 경영자 개인이 아니라 기업 조직 전체로 옮겨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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