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오르면 행복해진다? 한국은 정반대였다 [왜 지금]
젊은 세대의 지갑 닫히는 이유, ‘영끌’이 만든 소비 절벽
주택가격 상승이 후생까지 악영향... 세대 격차 심화 위기
부동산 중심의 성장 한계... 소비 회복 위한 구조 개혁 필요
[지데일리] 혹자는 집값이 오르면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가계 전반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급등한 부동산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지갑은 여전히 닫혀 있다. 부동산이 부(富)를 키우기는커녕, 오히려 소비를 억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자산 효과(wealth effect)’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 통계 문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의 질과 국가 성장의 지속가능성까지 위협할 수 있는 구조적 경고로 읽힌다.

자산 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한국
한국은행이 지난 12일 발표한 '주택가격 상승이 연령별 소비 및 후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여 년 동안 국내 주택가격은 장기적으로 높은 상승세를 유지했으나 가계소비는 오히려 둔화됐다. 한은은 “주택가격 상승과 소비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자산 효과의 패턴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흐름이 엇갈린다”고 설명했다.
자산 효과는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검증된 개념이다. 사람들이 보유한 주식, 부동산 등의 가치가 상승하면 자신이 더 부유해졌다고 느껴 소비를 늘리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 현상이 경기 회복기에 소비를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반대다. 주택 가격이 오르면 가계는 오히려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흐름을 보인다.
젊은 세대의 소비 위축, ‘영끌의 후폭풍’
한은이 2013년 이후 연령대별 평균소비성향(가처분소득 대비 소비 비중)을 분석한 결과, 모든 연령층에서 소비성향이 하락했다. 특히 집이 없는 25~39세 젊은층의 하락폭이 컸다. 이는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세대가 집값 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 동시에 내 집 마련을 위해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에 집중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택가격 상승이 실제 소비에 미친 영향을 추정한 결과에서도 흐름은 뚜렷했다. 50세 미만 가계의 소비는 주택가격이 오를수록 유의미하게 감소한 반면, 5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주택을 보유한 고령층의 경우 이미 거주 안정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소비 여력이 유지되지만, 젊은층은 대출 상환 부담에 쫓기며 일상적인 지출을 줄이고 있다.
특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통해 집을 산 젊은 세대는 이자 부담과 원리금 상환 압박으로 인해 소비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다. 주택이 자산 축적의 통로가 아니라 생존의 짐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부를 확대시키는 대신 세대 간 불균형과 소비 위축을 심화시키고 있다.
후생 감소와 세대 간 격차
한국은행은 단순히 소비 지표뿐 아니라 경제적 ‘후생(welfare)’ 수준을 함께 분석했다. 후생은 식료품, 의류 등 일반 소비 지출뿐 아니라 주거서비스 소비, 상속을 통한 만족감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삶의 효용 개념이다.
분석 결과는 더욱 뚜렷했다. 주택가격이 5% 오를 때 50세 미만 가계의 후생은 0.23% 감소했다. 반대로 50세 이상 고령층의 후생 감소 폭은 미미했다. 이는 젊은층이 주거 사다리 상승을 위해 저축이나 추가 차입을 늘리면서 실질 소비 여력이 줄어든 결과로 해석된다.
이러한 후생 격차는 단순한 세대 간 소비 차이를 넘어 사회 전반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킨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산 격차는 부모 세대의 재력을 상속받지 못한 청년층의 경제적 박탈감을 키우고, ‘노력해도 사기 힘든 집’이라는 인식은 출산, 결혼, 사회 참여 의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구조
소비는 경제 성장의 핵심 축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 안팎으로, 소비 위축은 곧 성장 둔화로 직결된다. 부동산가격 상승이 소비를 늘리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선진국에서는 부동산 자산이 가계의 소비 여력을 확충시키는 ‘소비 엔진’으로 작동한다. 부동산 가치 상승이 주택 담보대출을 통한 유동성 확대나 금융자산 재분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가계부채가 이미 GDP의 100%를 넘어선 상황에서, 주택가격 상승이 소비 여력보다는 부채 상환 부담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즉, 부동산이 ‘부의 사다리’가 아니라 ‘부채의 사슬’로 변질된 것이다.
한은의 분석은 이를 뒷받침한다. “주택가격 상승이 가계의 소비와 후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국의 주택 보유 구조가 소수 고자산층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의 가계가 주거 안정을 위해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부동산 중심 경제’의 전환 필요
일각에서는 이번 분석을 단순한 통계결과가 아니라 정책적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취해야 할 과제로, 먼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불평등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주택보유 편중을 줄이는 세제 개편과 임대시장 안정화가 필수적이다.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한 주택 공급, 공공임대 확대, 보유세 현실화 같은 조치가 장기적으로 세대 간 자산 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가계의 안정적 소비 여력을 높이기 위한 금융정책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경직된 대출 규제는 젊은층의 내 집 마련을 어렵게 만들지만, 무분별한 대출 완화는 부채 비율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금리 정책과 가계부채 관리 정책이 균형 있게 조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주거가 단순한 ‘투자 대상’이 아니라 ‘생활 기반’으로 기능하도록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동산가격 상승이 더 이상 국민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아니며, 오히려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로 작용하고 있음을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 회복 없이 성장도 없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자산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은 부동산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더 이상 과거의 성장공식을 반복할 수 없다는 신호다. 가계가 빚에 짓눌리고, 소비가 얼어붙고, 세대 간 격차가 구조화되는 사회에서 내수 중심의 성장 모멘텀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산 효과가 사라진 한국.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국민의 삶의 효용은 떨어지고 있다. 한 부동산 컨설턴트는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는 ‘집값을 통한 부의 착시’가 아니라,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이 작동하는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것이 지금 한은의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메시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 고성장 이면에 'S&P 8점'… 쿠팡 ESG 현주소는 [왜 지금]
- '마시든 말든'... 설 명절 '선택'도 달라진다 [왜 지금]
- 도로 위 금광, 누가 40년째 '판권'을 쥐었나 [왜 지금]
- 흔들리는 강남... 양도세 중과 앞두고 급매 와르르 [왜 지금]
- 런베뮤 과로사가 촉발한 청년 노동의 '최후통첩' [왜 지금]
- 정부는 누르고, 기업은 내리고... 민생은 '숨통' [왜 지금]
- 설탕값 왜 내리지 않았나… '4000억 과징금'의 배경 [왜 지금]
- 노후 자산이 증시 중심으로…60대가 코스피 재편한다 [왜 지금]
- 쿠팡 개인정보 유출, 한미 외교·통상 갈등 '불쏘시개' [왜 지금]
- 서민주거 외치며 고분양가 매입?…정부정책 '도마 위' [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