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 고증이지”…‘밀덕’·‘역덕’이 열광한 100만뷰 전투신 만든 학예사 [한끗차人]
진주박물관 이어 '역사 단편영화' 제작
역사적 기록 바탕으로 콘텐츠 제작해야
눈물이 맺힌 두 눈동자, 헝클어진 머리칼, 분노하는 얼굴.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제작한 단편영화 ‘한성 475’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1500여년 전 한성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백제의 전투를 담았다. 결과는 백제의 패배였다. 개로왕(455∼475년)은 전사했고, 백제는 터전인 한성을 떠나 웅진(공주)으로 천도해야 했다.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삼국시대의 전성기를 이끈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신라의 진흥왕이 교과서의 주인공이 된 것과 달리 개로왕은 망국의 군주로 기억된다.
김명훈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37)는 ‘한성 475, 두 왕의 승부수’라는 전시를 통해 개로왕의 노력과 한계를 재조명했다. 특히 이번 전시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편영화 한성 475는 역사 콘텐츠로는 이례적으로 100만회 가까운 조회수(94만회)를 기록하며 ‘역덕’과 ‘밀덕’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누리꾼들은 “고증이 놀랍다”, “박물관에 있는 유물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다니” 등 찬사를 보냈다.

- 이러한 성과가 처음이 아니라고 들었다. 이전 근무지인 국립진주박물관에서도 단편영화 ‘사르후’가 300만 조회수를 넘어섰다. 이러한 도전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으로 2020년부터 화력조선 시리즈를 선보였다. 2021년부터 담당을 맡아 시리즈를 이끌었는데 시즌 3 격인 ‘사르후 전투’는 2022년에 진행됐다. 당시 임진왜란에서 확장된 주제를 고민하던 찰나 조선시대 전란외교를 주제로 잡게 됐다.
사르후 전투는 조명연합군이 후금(이후 청)에 패배한 전투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사건은 아니지만 명나라 멸망이 가속화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로 꼽힌다. 김 학예연구사는 이를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무기가 박물관 전시장에서 ‘죽어있는 채’로 있기보다 전장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단편영화 등을 통해 유물의 쓰임새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는데 조회수 300만이 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게 돼 기쁘다.”
-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한성 전투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하다.

- 한성 475에서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고증이다. 화력조선은 조선시대라 기록이 풍부하지만, 삼국시대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의 몇 줄에 의존해야 한다. 소품과 배경도 문제였다. 조선시대와 달리 삼국시대 소품은 구하기가 어려워 직접 제작해야 했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풍납토성 같은 성곽도 일일이 모델링했다. 자문위원분들을 정말 끈질기게 괴롭힌 끝에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 고증에 대한 본인만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고구려 장수왕과 백제 개로왕의 대결을 바둑으로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다.
“국가의 명운을 건 왕들의 선택이 바둑에서 수를 두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외교를 통해 고구려를 포위하려 했던 개로왕의 수와 일격에 백제를 끝장내려 했던 장수왕의 승부수를 기보로 시각화하면 재미있겠다고 판단했다. 당시 넷플릭스 영화 ‘승부’를 보며 바둑을 잘 몰라도 그 긴장감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 몇몇 장면에서는 인공지능(AI)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유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박물관에 오면 관람객에게 유물은 자칫 거무튀튀한 쇳덩어리로 보일 수 있다. 영상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살려내고 싶다. 모든 전시품을 명품처럼 귀한 유물로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박물관이 유물과 관람객을 이어주는 창구로서 역사의 과정을 조명하고 유물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본인만의 한끗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즐거움’이다. 만드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어릴 적 드라마 <태조 왕건>을 즐겨 봤는데, 그때의 DNA가 남아 이번 전시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서사형 전시를 계속 선보여서, 어린 친구들이 이를 보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윤성연 기자 y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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