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보글보글' 방울샘…장성 영천리의 시간과 전설
장성군 영천리 ‘방울샘'
기포의 비밀은 석회암
물빛으로 길흉 점치다
샘을 품은 마을의 시간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온다. 기포는 한두 군데서 생기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솟아오른다. 그것도 바닥에서 둘레둘레 올라오더니, 금세 떠다닌다.
신기해서 한동안 쳐다봤다. 솟아오르는 기포를 사진에 담으려고 렌즈를 맞추는데, 다른 데서 나온다. 흡사 '나 잡아 보라'는 식이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 같다.
물이 깨끗하고 맑다.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가 훤히 보인다. 물맛도 좋다. 날씨가 추운 날엔 물이 따뜻하다. 지난 여름날의 기억은 시원했다. 물 온도 14~15℃를 유지한다. 가뭄이 심하게 들어도 마른 날이 없었다고 한다.

장성 영천(鈴泉) 이야기다.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 있다. 영험하다는데, 신령스런 샘인가? 아니다. 방울 영(鈴), 샘 천(泉)을 쓴다. 방울샘(방울시암)이다.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고 그리 이름 지어졌다.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따 영천리(鈴泉里)다. 마을 한가운데에 샘이 자리하고 있다.
몇 년 동안 계속된 소하천 정비사업도 끝나 방울샘과 어우러진다. 덕분에 주민들은 집중호우 때마다 되풀이되던 하천 범람 걱정을 덜었다.
방울샘은 타원형이다. 둘레 15미터, 수심 1미터 남짓 된다. 샘가를 석축으로 쌓고, 주변을 대리석으로 둘렀다. 보수 기록이 적힌 빗돌이 옆에 서 있다. 일제강점 때인 1931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했다. 장성면이 공사비를 후원하고 주민대표 나정숙·김규현·변승기가 참여했다. 대리석은 1991년 둘렀다.

1927년 나온 '장성읍지'에 적힌 얘기다.
방울은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가스다. 지층에서 만들어진다. 샘 바닥이 석회암이고, 산성의 지하수에 녹아 기포가 나온다고 한다. 석회암이 풍화침식되면서 물빛도 달라진다. 화학적 반응의 산물인 셈이다. 물고기의 시각장애 여부는 두 눈으로 확인할 순 없다.
방울샘은 마을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 주민들은 방울샘을 마을의 상징처럼 아끼고 보호했다. 마을의 평안과 나라의 안녕에 얽힌 얘기도 전해진다. 자연유산이고 문화유산이다. 샘물은 마실 수 있다. 간이상수도 취수원으로 쓴다. 흐른 물은 농업용수로 쓰인다.
옛날 우물가에 오동나무도 있었다고 전한다. 오동잎이 떨어지면서 샘물을 어지럽혀 베어버렸다. 그 나무가 있었으면, 봉황이 내려왔을까? 마을을 둘러싼 제봉산과 봉황산(황새산)이 봉황 형상이라고 한다. 마을 옛 이름이 오동촌(梧桐村)인 이유다. 더 옛적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쌀의집은 김규현의 아들 노농 김재식(1923∼2016)의 연구 공간이다. 김재식은 수협중앙회장, 수산청장, 전남도지사,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향에서 농사공부방을 운영하며 농맹(農盲) 퇴치, 우량 벼 품종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선진 쌀농사 기법도 전수했다. 쌀의집에는 그가 개발한 벼 품종과 특성을 기록한 안내판, 농사서적 200여 권이 전시돼 있다.


방울샘에서 가까운 데에 제봉(霽峰) 고경명 묘가 있다. 그의 생애를 적은 신도비와 제사 공간인 제봉각도 있다. 조선중기 문신 고경명(1533∼1592)은 임진왜란 때 아들 종후·인후와 함께 의병을 모았다. 금산전투에서 아들 인후와 함께 순국했다. 영천마을 제봉산(328m)이 그의 호와 엮인다.
방울샘에서 옛 이재산성(이척산성)도 멀지 않다. 석성과 토성이 섞인 성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영천마을은 400여 년 전 여양진씨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다. 이후 김해김씨, 금성나씨가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