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굉장한 여자’, 전성진의 유연성을 질투하다

한겨레 2026. 2. 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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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
전성진 작가의 책. 안온북스 제공

해외에 나가 사는 건 오랜 꿈이었다. 지나치게 낭만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언어, 문화, 주거 형태, 생업, 커뮤니티, 교통수단 이용법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템플릿을 바꾸고 과거를 전생처럼 잊은 채 거듭나고 싶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꿈인지는 인지하고 있어 벌이에 비해 지나치게 잦은 여행으로 숨통을 트곤 했다.

여기 한국에서 음식 잡지 에디터를 하다 베를린으로 훌쩍 떠난 여성이 있다. 육개장도 없는 베를린으로 떠나 각종 요식업에 몸을 담으며 삶의 터전을 일군 이를 소개한다. 산문집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와 신간 산문집 ‘몸을 두고 왔나 봐’를 출간한 전성진 작가다.

레즈비언으로서 유튜브와 팟캐스트, X(옛 트위터) 등지에서 ‘굉여’(굉장한 여자의 줄임말)로 활동하고 있는 굉장히 재치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두 저서를 통해 해외살이의 험난했던 적응기를 구구절절 풀어놓지 않는다. 대신 그는 베를린의 게토 지역인 노이쾰른에서 조금 별난 하우스메이트 ‘요나스’와 함께 사는 이야기와 그곳에서 큰 부상을 입고 치료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며 타국에서 산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대해 말한다.

지난 여름, 나는 파리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리 북부의 생드니 지역에 있었다. ‘생드니’를 검색창에 입력하니 생드니 총포상, 생드니 퍽치기, 생드니 강도, 생드니 흡혈귀(?) 같은 자동 검색어가 주르륵 뜬다. 실제로 거주자들은 알제리와 모로코 이민자들, 시리아 난민들이 대부분이었고 백인을 마주치는 일은 도시에서 알비노 비둘기를 마주치는 일만큼이나 흔치 않았지만, 생드니는 좋은 곳이었다.

값싼 바게트와 소박한 후무스, 뜨끈한 타진(모로코식 뚝배기 요리)을 먹을 수 있었고, 거주민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지 못했지만 몇 마디 불어로도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수도관이 터져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도로 전체가 물바다가 됐는데, 주민들은 오히려 한껏 신이 나 상의를 탈의한 채 뛰쳐나와 물 축제를 즐겼다. 어떻게 하면 발을 덜 적시고 그곳을 지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내게 “웰컴 투 파리!”를 외치던 남자의 얼굴이 생생하다. 이민자들 사이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인 것만 같았다.

도망치듯 떠난 생드니에서의 한 계절은 평화로웠다. 아침이면 납작복숭아 하나와 텀블러를 챙겨 나와 각종 미술관과 갤러리, 미테랑 도서관에 출퇴근하듯 부지런히 다녔다. 그러나 밤은 그렇지 않았다.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렸고 새벽이면 소리를 지르다 그 소리에 놀라 깼다. 그 무렵 나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사로잡혀 있었고 스스로에게 완전히 질려 있었다. 결국 나는 나를 벗어날 수 없구나. 아무리 딛고 선 땅에서 멀어지고 국경과 문화가 바뀌어도 내가 나인 이상 나를 피해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구나. 마음 속에 지옥이 있으면 어딜 가도 지옥이라 했던가. 절망감은 단전부터 매캐하게 들이쳤다. 떠나온 자, 이다지도 떠나지 못할 것이냐….

반면 전성진 작가에겐 떠나온 자 특유의 구구절절함이 없었다. 그는 첫 책에서 담백하게 타국에 삶의 터전을 가꾼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연인과 함께 떠나왔고, 노이쾰른에서 동독 출신의 괴짜 요나스와 함께 살았고, 종종 차별과 부딪혔지만 때로는 선의를 마주했고, 동료들을 두었고,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클라이밍을 즐겼다. 매 에피소드마다 곁들인 음식 묘사는 기가 막혔고, 무엇보다 농담을 잘했다.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를 읽은 후의 감상은 이 작가가 참으로 산뜻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쾌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바탕엔 결국 누르고 눌러낸 사연이 있는 법. 두 번째 산문집 ‘몸을 두고 왔나 봐’에서는 전성진 작가가 베를린에서 겪은 사고를 통해 그의 슬픔과 절망을, 그리고 재활을 읽었다. 타국에서 팔다리가 부러지고 으스러지는 큰 사고를 겪은 그가 마주한, 어린 시절부터 지연해 온 것들을 보았다. 가정 폭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는 유체이탈식 관점,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버려왔던 기억. 수치심과 불안과 괴로움을 모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한 내게 떠안기고 스스로의 뒤에 숨었던 경험. 신체의 파손 뒤 찾아오는 고통과 무감각으로, 기능하지 않음으로, 몸과 내가 분리되면서 기어코 내가 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과정.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어쩐지 뺨이 축축하더라니.

역시 잘 웃기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전성진 작가의 베를린에서의 재활 과정은 상담 과정과 교차하고, 동시에 유년기의 엄마와 현재의 엄마와의 관계를 오간다. 뼈가 붙고 신경이 되살아나며 고통과 유리시켰던 자기 자신을 하나로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제일 맨 뒤로 미뤘던 아이는 그때의 뒤늦은 수치심과 괴로움을 마주하는 어른이 된다. 그는 의사에게 완치 판정을 받고, 이야기는 단정히 땋아놓은 매듭처럼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완전히 치료됐다”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속 대사를 인용한 농담과 함께.

신간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내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수 년 전 이맘 때쯤이다. 나는 긴 발리 여행을 떠났다. 각 국의 히피들 사이에서 매일매일 요가원에 다니고 채식을 하고 명상을 하며 스스로를 다림질했다(고 믿었다.) 하루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로컬 맛집을 찾아 나섰는데, 그날따라 가는 곳마다 문을 닫았다. 오늘 운이 나쁘다고 투덜대자, 두건을 두른 기사는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는 말했다. “투마로 해피데이.”

다음 날은 행복했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며칠 뒤는 아니었다. 여행을 마치고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서였다. 어두운 길에서 튀어나온 오토바이와 부딪치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공중으로 솟구쳤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쿵’ 떨어진 뒤에는 머리통이 온통 축축하고 시원했다. (그것이 피가 흘러서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순간에 떠오른 건 인생의 파노라마도 그리운 이도 아니었고 오직 ‘아직 해야 할 게 많은데’라는 허무한 강박뿐.

그대로 죽는 줄 알았지만 가까스로 병원에 이송되어 정수리를 빡빡 밀고 벌어진 상처를 스무 바늘 꿰맸다. CT도 찍었는데 다행히 뇌출혈 없는 외상이었다. 병원 사정상 빠르게 퇴원해야 했지만 다리도 다쳐 꼼짝달싹 못하던 차에, 영사관과 연락이 닿아 친절한 한인의 집에 머물 수 있었다. 열대 기후인 탓에 밤이면 쥐 대신 커다란 도마뱀이 주방을 뒤지는, 그야말로 진짜 인도네시아의 집이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 한인과 그의 현지인 아내와 아들은 신년맞이 기도를 하러 떠났고, 무더운 이국의 도시는 폭격이라도 하듯 폭죽을 쏴댔다. 나는 깽깽 짖는 포메라니안을 안고 집이 무너져 내리는 건 아닐지 전전긍긍했다. 해피뉴이어, 해피뉴이어를 되뇌면서.

전성진 작가가 사고를 겪은 후 자신과 자신의 고통을 유리시키는 습관을 깨닫고, 억눌러두었던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듯, 나는 그때의 일을 계기로 무엇을 깨달았던가. 한 해의 마지막 날 곱씹는다. 그때의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나 자신의 취약함을 마주하긴커녕 나 자신을 더욱 모질게 채찍질하기로 마음먹는다.

인생 이렇게 가버리면 그만이다. 그 전에 해야 할 게 많다. 약점은 꼭꼭 숨기고, 강해져야 한다.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빡빡 민 정수리를 감출 모자를 사고 바로 일에 뛰어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내가 해냈어야 할 일들이 아쉬워 가슴을 쳤고 더 잘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당연히… 정서적으로는 더 취약해졌다.

강해지는 게 더 약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또 한 세월을 살아왔다. 서울에서 끌탕을 치고 파리로, 생드니로 도망친다고 나를 내게서 떼어놓고 갈 수도 있는 것도 아니면서. ‘몸을 두고 왔나 봐’를 읽으며 내가 두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내가 억눌러왔던 것들을, 나만 참으면 끝이라고 나만 견디면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고 유리시키려 했던 것들을,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부서져도 꼭 성취하고 싶었던 것들을.

전성진 작가는 어떻게 삶에 닥친 위기의 순간에서, 자신이 외면해 왔던 것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 누구의 삶에도 ‘완치’라는 건 없겠지만 적어도 화해라는 걸 해낸 그를, 뒤돌아 자기 자신과 손을 맞잡은 그의 유연성을 질투한다. 뻣뻣한 데다 인정머리 없는 나는 스스로가 내민 손을 잡아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내민 적도 없는지 모르겠다. 나는 도무지 내가 좋아지지 않으니 별 수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취했던 고난이도 요가 동작처럼, 공중에 붕 떴던 순간처럼, 한순간의 사고에 허물어져버리고 만 몸처럼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때때로 “투마로 해피데이”라던 택시 기사의 환한 웃음을 생각한다. 그의 말은 맞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미소를 생각한다. 올해도 나는 그저 발리에서의 12월 31일 밤처럼, 남의 집 포메라니안을 나의 개처럼 꼭 안고 해피뉴이어만을 되뇌겠지. 사랑도 화해도 없다면 오직 내게 있는 괴벽 같은 질투를 원동력으로, 신년에도 애써 보겠다. 독자 여러분 각자의 건투 또한 빈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196?h=s)에서 사랑스러운 질투로 파고든 인사이트를 만나보세요!
이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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