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 이면에 'S&P 8점'… 쿠팡 ESG 현주소는 [왜 지금]

손유지 2026. 2. 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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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글로벌 ESG 평가 8점 그치며 최하위권 수준
과로·산재 등 잇단 논란... ‘성장 우선주의’ 부작용 드러나
창업자 중심 불투명한 지배구조, 책임경영 신뢰 흔들려
노동·공시·환경 전면 혁신 필요…쿠팡 지속가능성 시험대

[지데일리] “ESG 평가 8점.”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이 최근 공개한 쿠팡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점수는 업계 안팎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100점 만점에 불과 8점이라는 수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이커머스 기업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쿠팡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S&P글로벌이 쿠팡의 ESG 점수를 100점 만점에 8점으로 평가했다. 노동환경, 책임경영, 지배구조의 취약성이 주요 원인으로, 성장 중심 경영의 한계와 구조적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쿠팡 로켓배송 차량들. 쿠팡 제공


쿠팡은 오랫동안 ‘한국의 아마존’을 자처하며 빠른 배송과 첨단 물류 시스템으로 시장을 재편해 왔다. 그러나 S&P가 제시한 수치는 그 화려한 기술력과 성장의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이제 쿠팡의 이름 앞에는 ‘혁신’보다 ‘지속가능성 부재’, ‘노동 착취 논란’, ‘책임경영의 실종’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ESG 8점, 무엇이 문제였나

S&P글로벌의 ESG 점수는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세 영역을 종합 평가한다. 쿠팡의 8점은 사실상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 대상 글로벌 유통·이커머스 기업들 가운데도 보기 드문 낮은 수치다. 세부 항목을 보면 ‘사회(S)’ 부문이 특히 취약한 것으로 지적된다.

명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노동인권 관련 사건과 경영 투명성 부족이 주요 감점 요인으로 파악된다. 쿠팡은 2020년대 들어 여러 차례 물류센터 내 산재 사망 사건, 과로 추정 사례, 협력업체 직원의 처우 논란에 휘말려왔다.

2021년에는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한 명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다수의 노동자가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쿠팡은 뒤늦은 사고 대응과 책임 회피 논란으로 대중적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일용직 중심의 고용 구조와 엄격한 실적 중심 평가, ‘쿠팡맨’이라 불리는 배송노동자들의 과중한 업무 강도가 줄곧 문제로 지적돼 왔다.

S&P의 ESG 분석 체계는 단순히 사건 발생 여부보다 기업이 이를 예방하고 공개적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얼마나 갖췄는지를 주로 평가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쿠팡은 투명한 내부 통제나 이해관계자 소통 구조가 여전히 취약하다. 사회적 논란에 대한 해명이나 사후 대책을 즉각적·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점도 낮은 평가로 이어졌다.

'성장 우선주의'가 만든 왜곡된 경영 구조

업계 관계자들은 쿠팡의 ESG 저점을 ‘성장 제일주의’의 결과로 분석한다. 쿠팡은 창립 이후 ‘로켓배송’과 초단기 물류 시스템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지만, 그 과정에서 비용 절감과 인력 효율화가 과도하게 추진됐다는 지적이 많다.

물류센터 자동화, AI 시스템 도입, ‘쿠팡플렉스’(개인 배송 파트타임 제도) 등은 기술혁신 사례로 평가받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노동 강도 증가와 불안정 고용의 단면으로 작용했다.

쿠팡은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이후에도 공격적인 투자와 확장이 이어졌다. 막대한 현금 유입 덕분에 매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수익성 확보와 관리 체계 개선은 뒷전이었다. ESG 경영의 토대인 ‘지속가능한 성장’보다는 ‘시장 점유율 확대’와 ‘속도전’이 경영의 중심이 된 격이다.

이는 곧 기업문화에도 반영된다. 내부 직원들의 퇴사율이 높고, 공감과 소통보다는 실적 중심의 평가와 위계적 조직 문화가 강화됐다는 증언도 잇따른다. 이런 비인간적 구조는 사회(S) 항목의 감점 요인이며, 장기적으로 브랜드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심각한 경고 신호로 볼 수 있다.

지배구조(G) 불투명, CEO 의존 경영

쿠팡의 ESG 평가에서 ‘G(지배구조)’ 항목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쿠팡은 미국 법인을 상장사로 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창업자 김범석 전 대표가 여전히 지주회사 쿠팡Inc.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 내 법인은 사실상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이사회 구조나 주요 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2021년 덕평 화재 당시, 김 전 대표가 ‘한국에서 모든 공식직을 사임했다’는 발표 이후에도 미국 본사 지주회사에서 여전히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책임 회피’ 논란이 확산됐다. 이런 모호한 지배구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이라는 거버넌스 원칙과 괴리돼 있다.

투명한 의사결정 절차와 외부 감사 강화, ESG 위원회 설치 등은 현대 기업들이 신뢰를 확립하기 위해 채택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쿠팡은 이런 체계를 명확히 갖추지 않았고, 동일한 논란이 반복되는 가운데 창업자 중심의 ‘톱다운 경영’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된다.

환경(E) 부문은 상대적 ‘무난’?... 지속가능성 의문

쿠팡의 ESG 평가에서 ‘환경(E)’ 부문은 상대적으로 무난한 평가를 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뚜렷하다. 

쿠팡은 최근 몇 년간 분류용 포장재 개선, 재활용 포장박스 도입, ‘친환경 배송 박스’ 전환 등 다양한 환경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대 포장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상품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큰 박스를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비닐 완충재나 테이프 사용량도 줄지 않았다는 소비자 지적이 꾸준하다.

쿠팡의 진정한 과제는 ‘보이는 친환경’이 아닌 체계적 감축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탄소 배출 저감, 물류센터의 에너지 효율화, 전기배송차 확대 등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ESG의 ‘E’는 단순히 캠페인 수준의 개선이 아니라 공급망 전반의 탄소 구조, 자원 순환 시스템, 그리고 투명한 데이터 공개를 요구한다. 쿠팡이 이런 구조적 변화에 나서지 않는 한, ‘친환경 포장’은 보여주기식 경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SG는 비용이 아닌 '생존'의 문제

쿠팡의 사례는 기업이 ESG를 ‘이미지 관리’의 수단으로 접근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글로벌 투자 환경에서 ESG 리스크는 더 이상 선택적 항목이 아니다. 다수의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ESG 부진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거나, 지속가능한 가치 평가에 따라 기업가치 산출 방식을 바꾸고 있다.

즉, 쿠팡의 ESG 점수 8점은 단순히 ‘이미지 하락’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금융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 상장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요구하는 ESG 정보 공개 의무가 강화되면서 쿠팡은 더욱 높은 수준의 책임경영을 요구받을 수 있다.

쿠팡이 ESG 평가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대책이 아닌 구조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우선 노동환경 개선이 최우선 과제다. 근로시간 관리, 산재 예방 시스템, 배송 인력의 건강권 보장 등이 명문화돼야 한다. 내부 고발 및 직원 의견 수렴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해 안전 문제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책임경영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경영진의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는 내부 윤리위원회, ESG위원회 설치가 요구된다. CEO나 창업자 중심의 결정보다는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더불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정립이다. 쿠팡의 현재 성장 방식은 물류 인프라 확장과 인력 효율화에 의존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탄소 절감형 AI 물류 시스템 구축, 친환경 물류차량 도입,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사회적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소비자와 직원, 투자자 모두 쿠팡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은 ‘책임 있는 기업인가’이다. 노동문제나 위기 대응에서 진정성 있는 태도, 장기적 관점의 대책 실행이 수반되지 않는 한, 쿠팡의 로켓은 언젠가 멈출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쿠팡은 이제 더 이상 ‘빠른 배송’으로만 경쟁력을 설명할 수 없다. ESG 8점이라는 냉정한 평가는 기업이 외면해온 숙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며 "진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 환경을 함께 지켜내는 경영의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