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유달산, 어디로 올라도 ‘일등’ 파노라마…자꾸 떠올라, 또 올라

해가 바뀌고 목포에서 열흘을 ‘살았다’. 나름 안다고 생각했던 목포를 다시 발견했던 긴 여행이자 짧은 ‘살이’ 중에 그만 유달산에 정이 듬뿍 들었다. 전망 포인트의 진리가 있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열흘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유달산에 올랐고, 그때마다 새로운 곳이 보였다. 목포에 갔는데 유달산에 오르지 않는 자, 유죄! 유달산은 목포 여행의 시작이자 끝, 그리고 모든 것이다.
무조건 1등이 되는 유달산

유달산 최고봉의 이름은 일등바위다. 해발 230m 남짓의 꼿꼿한 바위산은 목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으로 단단히 쌓아 올려진 곳이다. 바다의 색을 닮은 항구, 구불구불 이어진 원도심의 골목, 근대 건축의 잔향을 품은 붉은 지붕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오래된 삶의 결들. 고도를 조금만 높이면 도시의 결이 또렷해지고, 오래된 시간이 한눈에 읽힌다.
유달산의 탁월한 장점은 목포역에서 가깝다는 것. 기차에서 내려 10분이면 유달산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서 정상까지도 30~40분 이내로 주파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등산 시간은 자꾸만 길어진다. 목포는 항구다. 비석에 새겨진 이 선언적인 문구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 브랜딩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께 인사를 드리고 대학루 정자를 지나 올라가면 익숙한 BGM이 깔린다. 이난영이 무한반복으로 부르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다.
유달산은 오르내리는 과정 자체가 몰입형 목포 역사 스토리텔링 체험이다. 숨이 가빠질라치면 등장하는 정자와 쉼터, 형형한 기암괴석이 심박을 다독여준다. 곳곳에 목포 사람들의 유달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비석이 있는가 하면, 일등바위에 새겨진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처럼 일제강점기의 상처와 흔적도 다 지우진 않았다. 북항 근처에서 출발한 목포해상케이블카가 정상 부근에서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가 다시 남쪽 바다로 멀어져가는 것도 색다른 ‘밀당’이다.
바위산은 가파르지만 친절한 계단이 등반 과정을 돕는다. 특히 폭설이 내린 날 더 고마웠다. 유달산에선 이등바위보다 일등바위가 더 가깝다. 사람이 죽으면 율동바위(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고, 이동바위(이등바위)에 대기했다가 이동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눈팔지 않고 일등바위에 오르면 목포와 목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보인다. 내륙에선 아파트 군단이 밀려오고, 신안군에서 진도까지 섬들 사이엔 해마다 다리가 늘어간다. 언뜻 보면 목포는 커지고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근대 건축의 전시장이자 지붕 없는 근대역사박물관이며 도시재생의 각축장이었던 원도심의 한산한 풍경이 애처롭게 깔린다.
도시의 영화는 오르내리지만, 목포의 위상은 영원한 일등이다. 척박한 바위 위에 올라 도시와 바다를 단번에 내려다보는 순간, 누구나 자기만의 일등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위로를 얻는다. 유달산에 오를 때마다 마주친 청년이 있었다. 그를 목격한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지만, 그가 사는 나머지 23시간59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리고 언제나, 오르는 것이 목포다.
여기가 진짜 목포 생활 마을

사실 기차에서 내린 여행자들의 발길은 대부분 1897 개항문화거리(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로 향한다. 목포근대역사관 1·2관을 포함해 다양한 근대 역사문화 자원과 숙소, 카페, 식당, 주점 등이 밀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달산을 오른 여행자라면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 산기슭에 포개지듯 자리한 작은 마을이야말로 남루하지만, 생활이 이뤄지는 진짜 목포다.
‘옥단이길’이 있는 목원동은 목포의 대표적인 생활사 마을이다. ‘옥단이’는 1950년대 물지게를 짊어지고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북촌 골목을 누볐던 실존 인물이다.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이 ‘옥단이’ 공연을 무대에 올리면서 알려졌고, 10여년 전 목원동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옥단이길이 조성됐다. 지도를 따라가려면 어렵지만, 눈길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면 벽화 골목, 물지게 체험 우물, 일제강점기 조선인 마을에 불이 나면 종을 울렸던 불종대 등 20여개 주요 장소들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도, 가수 윤심덕도, 극작가 김우진도 목원동에 기억과 흔적을 남겼다. 좁은 골목마다 옛 목포의 생활 정취가 남아 있고,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마을 투어와 축제, 체험 등을 이어가고 있다.
옥단이를 쫓다 보면 죽동 일대에서 ‘마인계터로’라는 다소 생경한 주소명을 만나게 된다. 조선 말기에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서로를 돕던 일종의 복권계인 ‘만인계(萬人契)’에서 유래했다. 만인계는 개항 후 간척사업과 경제활동이 활발하던 목포에서 특히 성행했다. 곗날마다 사람들이 모였던 자리에 문을 연 만인살롱(만인계웰컴센터)은 목포 공동체 문화의 또 다른 층위를 만들고 있다. 도시재생사업 후에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활성화를 지속하기 위해 만든 마을기업에서 운영하는 카페, 식당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아침에 7700원 가정식 조식을 제공하는데, 조합에 속한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숙박객에게도 할인 혜택이 있다. 식사 후 곳곳에 전통 한옥이 남아 있는 마을을 느리게 산책하는 재미가 있다.
별천지의 오래된 미래
방향을 크게 틀어 유달산 남쪽 만호동엔 바다 너머 적을 감시하던 목포진지(木浦鎭址)가 복원되어 있다. 그 진지 남쪽에 있는 ‘소년 김대중 공부방’은 그 시절 섬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의도 소년이 가족과 함께 처음 목포에 상륙했을 때 그의 눈에 비친 목포는 ‘가히 별천지’였다고. 목포는 그렇게 많은 이들의 꿈을 실어 나른 도시였다.
목포의 바람이 가장 잘 드나드는 동네, 서산동 시화마을은 2000년대 이후 주민, 시인, 화가, 예술인, 영화인의 손을 거쳐 일찍이 관광 명소화되었지만, 주민들의 삶이 묶인 곳이기도 하다. 좁고 가파른 골목 곳곳에 손글씨 시화가 걸려 있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작은 작업실과 카페가 고즈넉하게 이어지던 곳인데, 이번 겨울 동안은 정비 공사로 군데군데 파헤쳐져 있었다. 마을은 삶의 결을 따라 시나브로 변하고 있다. 덕분에 평소에는 늘 건너뛰었던 보리마당까지 올라갔다. 주민들이 곡식을 널어 말리고 보리를 타작했던 보리마당이야말로 서산동 시화마을이 태어난 곳이다. 정상에서 뒤를 돌아보니 유달산이 코앞이고, 그 아래 온금동이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서산동과 온금동 일대는 개항기 북촌이라 불리던 조선인 마을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마을이 유달산 능선에 기대어 살고 있다.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가야 할 이유도 없는 곳이지만,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 오래된 도시의 숨과 생활의 리듬이 저절로 읽힌다. 허리띠 풀고 먹는 만찬처럼, 지도 앱을 내려놓고 걸어보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유달산 어느 길로 올라서든 마지막에는 일등바위가 있으니까.
‘읽히는 도시’ 목포의 포도북스

목포의 골목과 사람, 속도와 결을 가장 잘 품고 있는 곳 중 하나가 ‘포도북스’다.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한 건물에 2025년 2월 문을 연 헌책방 콘셉트 공유 서점이자, 지역 작가·기획자·청년들이 책을 매개로 함께 만들어가는 독립서점이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시간이 스며 있던 책들이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서점으로 돌아오는 곳. 오래된 목포를 알린 출판물부터 지역 주민이 기증한 희귀본, 작은 전시와 낭독회까지, 단순한 ‘헌책방’을 넘어 목포 생활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입점주가 130여명이나 되어서 지인의 책 선반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유달산 아랫마을들을 걷고 이곳에 들르면, 목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목포, 강화도에 이어 세 번째 포도책방(포도북스)이 이달 중 광주 북구 우산동에 문을 열 예정이다. 자기만의 속도로 도시를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목포 홀로 여행자를 위한 맛집

2인이 아닌 설움을 달래주는 1인 환영 맛집을 소개한다. 네 곳 모두 목포역에서 5분 거리 이내에 있다. ‘은지네해장국’은 섬 여행 때마다 종종 들르던 뼈해장국집이다. 근처에 유명한 해장국집이 여럿 있지만, 어쩐지 은지네만 찾게 된다. 국물이 기름기 없이 깔끔하고 살점이 넉넉해 질리지 않으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목포 명물 빵집 ‘코롬방제과점’과 멀지 않은 ‘독아지’는 동태탕과 김치찌개를 양푼에 푸짐하게 내어주는 곳이다. 김치찌개에 고기, 참치, 스팸, 꽁치 옵션이 있고, 달걀부침도 완숙, 반숙 중 선택이 가능하다. 점심 피크 시간만 피하자. 목포 이주민의 추천을 받은 ‘예향밥상’은 한식 뷔페식당이다. 7000원 가성비를 노리고 갔다가 맛있어서 두 번 세 번 갔던 집. 잡곡밥에 삼삼하게 조리한 돼지고기볶음과 상추쌈, 손맛이 탁월한 반찬이 다 그립다. 갓 지은 솥밥이 생각날 땐 ‘목포온김에’가 제격이다. 1인 쟁반 차림에 담아주는 목포곰탕과 제육덮밥 외에 김밥과 국수 등도 깔끔한데 따로 김 판매를 할 정도로 ‘김부심’이 있다.
목포 | 글·사진 천소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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