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하나뿐’ 우리 집 농막 막걸리와 쑥인절미

이봉현 기자 2026. 2. 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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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의 농막 일기 (14)
찹쌀밥과 쑥을 잘 섞어서 치댄 뒤 콩고물을 묻혀 썰고 있다. 칼 보다는 접시날로 떡을 써는 게 좋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막걸리

막걸리를 빚어 보면 그 술을 무덤덤하게 대할 수 없다. 적막한 밤, 홑이불로 푹 싸놓은 술 단지에서 연신 올라오는 ‘뽀글뽀글’ 소리는 누룩에 살던 수억 마리의 효모가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술 익는 향기까지 곁들여진 그 쫑알거림은 “술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 태어나는 거지”라고 잠결에 들린다.

농막을 들여놓고 마당 생활을 해 보면 아파트에서 해먹기 어려운 음식을 만들고 싶어진다. 막걸리와 쑥인절미도 그런 음식인데, 맛도 좋을

뿐 더러 만드는 재미도 있다. 나는 막걸리에, 아내는 쑥인절미에 진심이다.

단지에 찐 찹쌀밥과 누룩을 버무려 넣고 생수를 부었다. 온도 조절을 잘 하면 일주일 뒤 막걸리로 발효된다.

평생 술을 가까이해 온 나는 내 손으로 꼭 술을 담가보고 싶었다. 주변에는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워 수제맥주 맛을 자랑한 분도 있는데, 나는 누룩으로 발효한 막걸리를 만들고 싶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없는 단 하나의 막걸리 말이다.

하지만 막걸리 빚기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재료 배합을 잘못하거나 숙성 온도 조절에 실패하면 술이 시거나 씁쓰름하기 일쑤다. 막걸리 담그는 유튜브를 챙겨 보면서도 선뜻 실행을 못 하고 있는데, 마침 좋은 안내자가 나타났다. 이웃 노인회장님 부인께서 “술 담글 테면 같이 해”하신다. 80대 초반인 사모님은 새댁 때부터 집안 잔치나 제사에 쓸 막걸리, 동동주를 담으셨다 한다. 그분은 “막걸리 빚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하며 우리에게 믿음을 꽉 주셨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6월 초의 연휴. 아내와 나는 준비한 재료를 마당에 늘어놨다. 찹쌀 4kg, 누룩 1kg, 이스트 조금. 생수와 작달막한 단지. 누룩과 이스트는 함께 술을 담그기로 한 맞은 편 세종시 형님네가 오는 길에 공주시장에서 사 왔다. 건강을 챙기는 형님은 솔향 막걸리가 좋다며 솔잎도 준비했다.

누룩과 버무린 쌀밥을 단지에 넣었다.

찹쌀은 맑은 물이 나올 정도로 10번 이상 씻어서 4시간 정도 불렸다. 쌀의 전분과 불순물을 깨끗이 제거해야 술맛이 좋다고 한다. 그런 다음 솔잎과 함께 찜통에서 고두밥을 지었다. 다 된 밥을 잘 펴서 빠른 속도로 식혔다. 밥이 너무 뜨거우면 효모가 죽고, 시간이 오래돼 밥이 마르면 효모가 침투하기 어렵다고 한다.

손으로 만져질 만큼 밥이 식자 비닐장갑을 끼고 넓은 대야에서 누룩과 이스트를 넣어 잘 섞었다. 유튜브에 따르면 누룩은 쌀 1kg당 250g을 넣는 게 적당한데, 사모님은 저울도 없이 눈대중으로 쓱쓱 비율을 조절했다. 누룩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사는데, 1g에만도 수십~수백만 마리의 효모가 있다고 한다. 밥과 섞이면 누룩의 곰팡이가 전분과 단백질을 포도당으로 분해하고, 효모는 이를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낸다. 술이 익을 때 공기방울이 올라오는 건 이런 원리이다.

숨쉬는 항아리에 넣어두면 이틀 뒤 뽀골뽀골

다 비벼진 고두밥을 미리 뜨거운 물로 소독해 말려 둔 항아리에 담았다. 단지가 없으면 유리병을 써도 되지만 숨을 쉬는 항아리가 낫다고 한다. 여기에 6ℓ의 생수를 부었다. 물의 양은 쌀 1kg당 1.5~2ℓ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고운 천으로 항아리 주둥이를 싸맨 뒤 얇은 이불로 싸서 농막 한쪽에 뒀다. 술이 익는데 적절한 온도는 20~25도 내외라 한다. 중부 지방의 6월 초 평균 낮 기온이 20~22도 정도여서 적당하지만, 밤에는 방이 차지 않도록 히터의 온도를 맞춰뒀다.

이틀이 지나니 뽀골뽀골 소리가 들리고 시큼한 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잘 발효하도록 하루 한 차례씩 저어줬다. 담근 지 6일째 되는 날 술을 걸러냈다. 단지에 용수를 박아서 맑은 술을 떠냈다. 이렇게 떠낸 것을 동동주 또는 약주라 한다. 가라앉은 찌꺼기까지 함께 얇은 천으로 걸러내면 막걸리가 된다. 처음 나온 막걸리는 알콜 돗수가 12~13도 정도인데, 거르면서 1대1로 물을 추가하면 시중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6도 내외가 된다.

이제 시음할 차례. 동동주를 나무잔에 천천히 따랐다. 색깔을 보니 조금 거무스름해 일반 동동주와 달랐다. 사모님은 애초에 누룩 색이 검어서 그런 거라 했다. 솔향이 나고 맛은 세콤 쌉싸름했다. 묵직한 맛은 있는 데 술이 청량하거나 달지는 않았다. 농막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내놔 봤는데, “직접 담았냐”며 신기해하면서도 한두 잔 마신 뒤 “나는 이제 소주 마시련다” 하는 분위기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첫 시도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담근 지 나흘쯤 지나 뽀글거리는 소리가 쏴 하는 소리로 바뀔 무렵 뚜껑을 닫고 좀 서늘한 곳으로 옮겨 둬야 했는데, 출근하느라 서울로 올라가는 통에 이 과정을 생략한 탓일 거다. 즉, 과하게 숙성된 것이다. 그래도 직접 만든 술에 애착이 가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조금씩 마셨다.

가을걷이도 끝나고 옷차림이 두툼해지는 요즘은 막걸리 담기 좋을 때다. 신선한 햅쌀을 쓸 수 있어 술맛이 깨끗하고, 누룩 속 효모도 알맞은 온도와 습도에 안정적으로 활동한다. 지난 주말 두 번째 막걸리에 도전했다. 누룩은 아내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했다. 이번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담는 것이어서, 실패하지 않도록 찹쌀 600g만 사용했다. 이번 술은 동동주가 아니고 가라앉은 밥까지 함께 걸러서 막걸리를 떠낼 생각이다. 이번 주말에 뽀얗고 맛도 일품인 막걸리를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쑥인절미를 만들기 위해 찹쌀밥과 찐쑥을 준비했다.

인절미의 유래 “이것 참 ‘절미’로구나”

쑥인절미는 나와 아내가 봄이면 만들어 먹는 별미이다. 농막이 있는 공주와 인절미는 역사적 연관도 있다. 공주 공산성에는 인절미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있는데 대략 이렇다. 조선 중기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으로 피난 왔을 때, 먹을 것이 궁했다. 이 때 ‘임’씨 성을 가진 농민이 콩고물을 묻힌 찹쌀떡을 만들어 올렸다. 허기진 인조가 맛있게 먹고 “이것 참 ‘절미’(絶味)로구나” 했다. 떡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임씨가 만든 기막힌 맛이라 해서 ‘임절미’로 불리다, 발음하기 좋게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공주시는 인절미를 관광상품화 하기 위해 2016년 ‘공주 인절미’에 대한 상표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쑥인절미의 첫걸음은 연하고 싱싱한 쑥을 캐는 것이다. 쑥은 봄이면 농막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난다. 평소에는 잡초이지만 쑥떡을 해 먹을 때는 귀한 재료이다. 과일나무 아래, 나무에 준 거름을 나눠 먹어 키가 쑥자란 쑥의 위쪽 부드러운 부분을 낫으로 싹둑싹둑 벤다. 잠깐만에 한 광주리가 찬다. 검불을 씻어서 떼어낸 뒤 솥에 넣어 삶는다. 쑥떡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아내가 블로그에 정리한 쑥인절미 만드는 법은 이렇다.

1) 쑥을 삶아 놓는다 (베이킹소다를 약간 넣으면 색도 맛도 살아난다)
2) 4시간 이상 불린 쌀로 찹쌀밥을 약간 고슬고슬하게 짓는다(소금, 설탕 첨가)
3) 쑥과 밥을 합쳐서 방망이로 15~20분 정도 치댄다(많이 치댈수록 떡이 쫀득해진다)
4) 콩고물을 바닥에 깔고 치댄 떡을 넓게 펴서 고물을 고르게 묻힌다.
5) 한입에 적당한 크기로 썬다. 썰 때에는 칼보다는 접시 날을 이용해서 잘라낸다.

쑥인절미를 조금씩 해 먹다가 우리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을까’ 궁리를 했다. 밥솥에 조금씩 만들어 먹는 게 아니고 1~2말씩 해서 먹으려면 떡방앗간에 가져가야 한다. 시골 떡방앗간 가운데는 삶은 쑥과 찹쌀밥까지 모두 준비해 떡을 만들어주는 곳도 있지만, 쑥을 삶고 쌀을 가져다주면 공임을 받고 해주는 게 보통이다. 이번에도 옆집 세종시 형님과 함께 했다. 쑥을 베어서 큰 솥에 가득 담고 집 한 쪽에 쌓아둔 나뭇가지와 검불 등을 이용해 불을 1시간 이상 때면 마침내 쑥이 끓어오른다. 다 삶아진 쑥을 건져 찬물에 깨끗이 씻고, 찹쌀과 함께 방앗간에 맡긴다.

우리 농막에서 차로 15분 거리에는 인절미 맛있게 만들기로 유명한 방앗간이 있다. 아침에 재료를 가져가면 이튿날 오전에 양갱 크기로 비닐에 포장해서 박스에 담아놓는데, 하나를 까서 먹어보면 쑥 향기와 쫀득쫀득 찰진맛이 어우러져 입안이 행복해진다. 비결을 알아보니 기계를 이용해서 삶은 쑥과 찹쌀밥을 치대는데, 다른 방앗간 보다 곱절의 시간을 치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만든 떡을 받아와서 몇 개만 먹고 나머지는 곧바로 냉동실에 넣는다. 얼린 쑥인절미는 아침에 꺼내 해동하면 맛과 식감이 그대로 살아난다. 아내는 쑥인절미를 특히 좋아해 6월에 만든 인절미를 9월까지 아껴서 먹었다. 아내 블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사 먹는 인절미와는 차원이 다르다. 향긋한 쑥 냄새가 글을 쓰는 지금도 코끝에 맴돈다. 다음 주에 해먹을 생각에 주말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로 월요일이 더욱 즐겁다.”

이봉현의 농막일기는?

기자로 35년간 서울에서 일했습니다. 혼자 집중할 때 에너지를 얻는 편이어서, 텃밭과 정원이 있는 호젓한 공간을 꿈꿔왔습니다. 마침내 충남 공주의 산간마을 밭을 사 2018년 사과대추, 자두 등 유실수를 심었습니다, 2020년 봄부터는 농막을 들여놓고 금요일 밤에 내려가 주말 텃밭 농사를 짓고 옵니다. 5년간의 ‘5도2촌’ 생활에서 경험한 기쁨, 시행착오, 지역의 현실 등을 담아 격주로 독자를 만나려 합니다. 한겨레 로그인 콘텐츠 ‘오늘의 스페셜’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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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막 7년차…‘대추나무 암’에 눈물을 머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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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 2촌’ 농막에서 트랙터까지 몰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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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다람쥐처럼 농막에 모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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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막을 위협하는 야생동물 3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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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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