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사달 났는데... '트럼프 SNS 탓'만 하는 정부 [문지방]
안보 협의 지연·비관세 문제 이견 등
미국 측 심상찮은 기류 이미 이곳저곳에
11월 중간선거 활용할 궁리는 했지만
정작 선거 앞둔 트럼프 속내는 외면한 꼴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미국의 변화한 의사 결정 구조와 발표 시스템이 우리가 잡아낼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표에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에 대한 관세를 재인상한다"고 발표한 데 대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내놓은 해명입니다. 외교 당국 간 충분한 협의를 건너뛴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선언이란 뜻으로 풀이됩니다. 우리 정부로선 미국 측이 이 같은 격앙된 반응을 낼 것이라고 예상할 만한 미 측의 외교적 신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죠. 정말 그럴까요.
누적되고 표출됐던 美 불만 기류

돌이켜 보면, 한국이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대미 투자가 더디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은 이미 여기저기에서 표출되고 있었습니다. 원자력·핵추진잠수함(핵잠) 문제에 관한 미국과의 후속 협의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던 게 대표적입니다. 대미 투자가 미국의 희망사항이라면, 원자력·핵잠 협력은 대미 투자의 대가로 우리가 요구한 안보 분야 의제들입니다.
따라서 안보 분야 후속 협의가 미뤄지고 있다는 건 "한국이 통상 분야 약속(대미 투자)을 지키지 않으니, 우리도 안보 분야 약속을 당장 이행하지 않겠다"는 미국이 보내는 적신호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정부 내 안보라인이 통상라인에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거나, 전달은 했지만 주요 당국자들이 이를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비관세 분야 합의에 대한 한미 간 해석 차이도 미국의 불만이 가시지 않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였습니다. 지난해 7월 관세 합의 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에 무역을 완전히 개방할 것"이라며 농산물 개방 합의를 주장했습니다.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정부 설명과 완전히 배치되는 말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미국 측은 잊을 만하면 "한국이 시장을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발신했습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비관세 분야에서 한국이 성의를 보이라는 미국 측 압박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위기로 인지하지 않고 애써 외면한 듯하다"고 지적합니다.
11월 중간선거 이용할 궁리만...트럼프 다급함 캐치는 실패

심지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올해 초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원화 약세 탓에 올해 상반기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실행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한미 간 대미 투자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 '당장은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고 먼저 고백한 꼴입니다. 미국 측 불만을 사전에 감지하긴커녕 되레 우리가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의심과 불만감을 부추긴 셈입니다. "(구 부총리의) 이런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의 지적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재인상 선언의 전조였던 셈입니다.
당초 우리 정부는 올해 11월 전 원자력과 핵잠 분야에서의 후속 협상을 최대한 진전시킬 계획이었습니다. 11월엔 미국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선거 국면이 본격화하면 협상 동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입니다. 특히 공화당이 패배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약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OK'해준 핵잠 개발과 원자력 협력을 위한 협상 동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미 내부 정치가 협상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합당하고 좋은 전략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 측 입장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에겐 지지율 하락세를 만회하고 선거 필승을 위해 내밀 '성과물'이 필요합니다. 관세를 무기 삼아 각국으로부터 끌어낸 대미 투자액과 이에 따른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미국 유권자들 눈앞에 떡하니 내놔야 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과제입니다. 가뜩이나 다급한데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은 감감무소식이니,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관세 재인상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11월 중간선거 국면을 활용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협상(안보 분야)만 진전시키려 했지, 정작 중간선거에 절박해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문제를 다시 흔들 수 있다는 반대의 시나리오는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SNS를 탓할 게 아니라, 상대국 내부 기류를 읽고 세밀하게 대응하는 외교 기본 기능조차 작동하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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