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나오는 이름들…‘엡스타인 파일’서 드러난 엘리트의 민낯

최승진 특파원(sjchoi@mk.co.kr) 2026. 2. 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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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자료 공개 2주 지났지만
충격파 전세계로 일파만파 번져
“엘리트 무책임에 국민적 공분”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자료. [AP 연합]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에 대한 수사자료를 공개한지 2주가 지난 시점에도 충격파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료 공개로 미국 정·재계, 학계, 연예계 ‘엘리트’들의 은밀했던 사생활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엘리트 그룹이 돈과 인맥, 호화로운 만찬, 개인 전용기, 외딴 섬, 때로는 성접대를 제공한 엡스타인에 보호막을 쳐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엡스타인 파일에는 평범한 미국 시민들과는 동떨어진 엘리트들의 화려한 삶과 네트워크가 묘사돼 있고, 그 중심에 성범죄자가 있다는 점에서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엡스타인 파일에 등장하는 권력자들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이 있다.

엡스타인은 지난 2002년 클린턴 전 대통령과 영화배우 케빈 스페이시를 자신의 전용기에 태우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했다.

머스크 CEO는 2012년 엡스타인에게 “당신의 섬에서 가장 화려한 파티는 무슨 요일·밤에 열리느냐”는 이메일을 보냈다. 머스크 CEO는 소셜미디어(SNS)에서 자신이 엡스타인과 거의 연락하지 않았고, 그의 섬에 가자는 초대를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 역시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1990년대 엡스타인과 파티를 즐기고 엡스타인의 비행기에 함께 탔던 바 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관계를 끊었고 엡스타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엡스타인이 교류한 인물들로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률고문을 지냈던 캐서린 루믈러(골드막삭스 최고법률책임자에서 사임),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스티브 배넌, 전 하버드대 총장이자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등이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이혼 사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스 스테일리는 엡스타인과의 연루 의혹에 바클레이스 CEO에서 물러났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엡스타인 소유의 섬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의 파장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영국의 앤드루 전 왕자는 지난해 10월 왕자 직위를 박탈당했고, 그의 전처 세라 퍼거슨은 앱스타인에 돈을 빌리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피터 맨덜슨 전 영국 산업장관이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를 주미 영국대사로 임명했던 키어 스타머 현 총리도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에서 문화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자크 랑은 엡스타인 파일에 600여회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왕세자빈 메테마리트, 전 총리인 토르비예른, 현 세계경제포럼(WEF) 총재인 뵈르게 브렌데 등이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계기로 부패혐의 수사를 받고 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부총리 겸 외무부 장관을 지낸 미로슬라우 라이차크의 이름이 엡스타인 파일에 나온다. 이스라엘에서는 현 야당인 노동당 소속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가 엡스타인의 뉴욕 시내 자택에서 오찬과 만찬을 함께 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이 술탄 아메드 빈 술라옘 전 DP월드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찍은 사진. [로이터 연합]
엡스타인은 2009년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수신자에게 “고문 영상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 이메일의 수신자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유력 사업가 술탄 아메드 빈 술라옘이라는 사실이 후에 공개됐다. 빈 술라옘은 이로 인해 두바이 정부 소유의 물류기업 DP월드의 이사회 의장 겸 CEO에서 경질됐다.

니콜 헤머 벤더빌트대 교수는 “우리는 지난 몇 년동안 엡스타인 스캔들에 대해 많이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의 세계에 엘리트들이 연루된 규모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NYT에 말했다.

피자 게이트·살해 의혹까지…음모론도 쏟아져
트럼프 행정부가 문건 공개를 주저한 데다, 명사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낯낯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음모론도 양산되고 있다.

우선 엡스타인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피자’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데, 이를 두고 지난 2016년 당시 제기됐던 미국 민주당의 ‘피자 게이트’와의 연관성을 제기하는 주장도 나온다.

피자 게이트는 민주당 관계자들이 워싱턴DC의 피자 가게 지하에서 아동 성착취를 하고 있다는 허위 음모론을 말한다.

지난 2018년 엡스타인의 비뇨기과 의사 해리 피시는 엡스타인에게 “처방전 재발급이 가능하다”면서 “사용 후 손을 씻고 피자와 포도 소다를 먹으러 가자”고 이메일을 보냈다. 두 사람만이 알 것으로 보이는 이같은 표현은 다른 여러 이메일에서도 발견된다는 게 NYT의 설명이다.

이를 두고 보수 논객 터커 칼슨은 엡스타인 파일을 거론하며 피자 게이트와의 연관성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이 사망한 교도소 구역에서 새로 공개된 비디오 기록에는 늦은 밤 엡스타인이 수감된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의 모습이 공개됐는데, 이에 인터넷에서는 엡스타인의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또 엡스타인은 2017년 왼팔에 문신이 있다고 말했지만, 최근 공개된 시신 사진에 문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그가 사망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하지만 로 카나 민주당 하원의원은 NYT에 이 같은 음모론을 일축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토록 미성숙하고 무모하며 오만한 엘리트를 만들어냈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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