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붉은 말'에 태어난 '우는 말'…中청년의 얼굴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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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실수로 만들어진 봉제인형 하나가 시대의 초상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붉은 말의 해가 상징하는 상승과 분투를 몸에 달고도 우는 표정이 2026년을 사는 청년들의 감정을 정확히 찌른 것이다.
쿠쿠마 열풍은 하나의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붉은 말의 해에 실수로 태어난 우는 말은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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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말과 웃는 말 [촬영 한종구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14/yonhap/20260214070830133ywbo.jpg)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공장에서 실수로 만들어진 봉제인형 하나가 시대의 초상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2026년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다.
중국인들은 말이 도약과 야망, 불의 기운 등을 상징한다고 믿는다.
새해를 맞아 다양한 붉은 말 장식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도약을 기대하는 심리가 반영됐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웃고 있어야 할 인형의 입이 뒤집혀 달리면서 우는 모습이 됐는데, 이게 우는 말 이른바 '쿠쿠마'(哭哭馬) 열풍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쿠쿠마 인형은 세계 최대 도매시장인 중국 저장성 이우의 한 공장에서 생산된 불량품이다.
평소였다면 폐기했겠지만, 상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진열대에 올렸다.
온라인에서는 '이상한데 묘하게 공감된다'는 반응이 나왔고, 사진 한 장·영상 하나가 퍼지면서 운명을 바꿔놓았다.
쿠쿠마는 곧 밈이 됐다.
일부 네티즌은 '회사에는 우는 말을, 집에는 웃는 말을 놓았다'는 농담했고, 회사 책상 위 인증샷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우는 말은 '출근 말'(上班馬), 웃는 말은 '퇴근 말'(下班馬)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중국인 런런러씨는 연합뉴스에 "울고 있는 말을 보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며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자유롭게 마음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붉은 말의 해가 상징하는 상승과 분투를 몸에 달고도 우는 표정이 2026년을 사는 청년들의 감정을 정확히 찌른 것이다.
해시태그는 1억9천만 회로 늘어났고, 주문은 폭주했다.
공장에서는 웃는 버전과 우는 버전을 동시에 생산하기 위해 생산 라인을 늘렸고, 도매 중심이던 판매는 라이브커머스까지 확장됐다.
실수로 태어난 인형이 오히려 야근을 부르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도출됐다.
쿠쿠마 열풍은 하나의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사람들이 사는 건 장식용 인형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닮은 표정이라는 점이다.
공감의 배경에는 중국 청년들의 고단한 현실이 녹아 있다.
9시 출근, 9시 퇴근, 주 6일 근무로 상징되는 '996' 문화는 오랫동안 번아웃의 다른 이름이었다.
최근 공식 통계에서 중국인의 평균 근무 시간이 다소 줄었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체감은 여전히 팍팍하다.
근무 시간이 조금 줄어든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는 말과 웃는 말 판매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14/yonhap/20260214070830346buvy.jpg)
중국 당국이 발표하는 경제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관세 전쟁과 내수 투자 악화 등에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 안팎'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지만, 성장세가 둔화하며 회복의 탄력은 약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기에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16∼17%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노력하면 된다던 성장 신화에 대한 믿음이 옅어지면서 청년들이 웃는 말 대신 우는 말을 선택한 것이다.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탕핑'(躺平)이라는 단어가 몇 년 전 유행한 데 이어 경기 중 두 팀의 점수 차가 커 승부를 뒤집을 수 없게 됐을 때 남은 시간을 가리키는 스포츠 용어 '가비지 타임'(垃圾时间)이 경제가 나빠 개인은 어쩔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풍경은 비단 중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 역시 불확실한 미래로 비슷한 피로를 겪고 있다.
웃는 표정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울음을 숨기지 않는 장식품이 위로가 되는 역설은 국경을 넘는다.
한국과 중국은 각각 설과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가 시작됐다.
중국은 춘제 연휴 전후로 연인원 95억명이 이동할 것으로 전망되고, 한국 청년들 역시 고향과 휴식처를 오가며 잠시 숨을 고를 것이다.
붉은 말의 해가 시작되는 이 명절만큼은 "더 달려라"보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필요해 보인다.
쉬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고, 그 휴식이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붉은 말의 해에 실수로 태어난 우는 말은 우리에게 묻는다.
계속 웃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울음을 인정할 용기가 필요한가?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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