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텃밭’ 빼앗긴 트럼프, 중간선거 패배 시 조기 레임덕 직면

그런데 1월 31일(이하 현지 시간) 실시된 이곳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민주당 테일러 레메트 후보는 57% 득표율을 기록하며 43%에 그친 공화당 리 웜스갠스 후보를 14%p 차이로 따돌렸다. 이 선거구는 2024년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p 격차로 압승한 곳으로, 1년 2개월여 만에 유권자들 표심이 31%p나 민주당 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텃밭 텍사스·마이애미에서 패배
더욱 주목할 점은 선거자금 73만 달러(약 10억6000만 원)를 투입한 웜스갠스 후보가 7만 달러(약 1억 원)를 사용한 레메트 후보에게 패했다는 것이다. CNN은 "최근 수년간 미국 전역에서 치러진 보궐선거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대이변"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선거 직전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했음에도 참패를 막지 못했다는 점이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트럼프가 17%p 차로 이겼던 지역에서도 공화당 후보가 진 것은 미국 전역에 안전한 공화당 의석은 없다는 의미"라며 기세를 올렸다.특히 눈여겨볼 점은 이번 텍사스주 상원의원 보궐선거 패배가 지난해부터 공화당이 이른바 '텃밭'에서 연전연패하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그동안 버지니아·뉴저지 주지사 선거, 뉴욕시장 선거, 켄터키·아이오와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화당은 텃밭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트럼프 대통령의 '안방'으로 불리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다. 지난해 12월 9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59%)가 공화당 후보(40%)를 19%p 차로 눌렀다. 공화당이 마이애미 시장 자리를 빼앗긴 것은 28년 만이다. 2024년 대선 때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에서 트럼프 대통령 득표율이 55%였던 점과 비교하면 지지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마이애미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셰브린 존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히스패닉(중남미계 이민자) 유권자들은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주거비와 보험료 등 생활비 인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이번 마이애미 시장 선거 결과가 올해 중간선거에서 전국적 현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NYT "트럼프, 일자리 늘리지 못해"

텍사스와 마이애미에서 대이변은 11월 3일 중간선거의 예고편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번 중간선거에선 하원 의원 435명 전원을, 상원의원 100명 중 35명을, 주지사는 전체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에서 각각 선출한다. 공화당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대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lame duck: 권력 누수 현상)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조차 중간선거 패배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14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대선에서 승리하면 중간선거는 이기지 못하게 돼 있다. 이건 심리적 문제"라며 패배 불가피론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최근 공화당 하원의원 연찬회에서 "우리가 중간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저들은 구실을 찾아 나를 탄핵할 것"이라며 공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2월 9일에는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미국 선거는 조작됐고 도둑맞았다"고 언급하며 선거에서 유권자의 신분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SAVE(Safeguard American Voter Eligibility: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 법안' 처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공화당이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고전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들 수 있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1월 23~25일 미국 성인 11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59%가 트럼프 대통령의 물가상승 대응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긍정 평가는 30%에 불과했다(표본오차 ±3.0%). 재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1년간 강행한 관세정책이 물가만 끌어올리고 제조업 회복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평균 관세율을 1932년 이후 최고 수준인 17%까지 올렸지만 수입품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면서, 제조업 일자리 확대라는 핵심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민 70% "생활비 감당 힘들다"
이에 따라 이번 중간선거 결과가 '감당할 수 있는 생활비(affordability)'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가 지난해 12월 성인 14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거주 지역 생활비가 '매우 감당하기 어렵다' 또는 '전혀 감당할 수 없다'고 답했다(표본오차 ±3.2%). 이는 조사 시작 이후 최고치다. 미국 선거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물가, 집값, 의료비 등 생활 밀착형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생활비 문제를 최대 화두로 삼아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주택, 의료, 식료품, 보육비 등 가계 지출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생활비 문제를 민주당이 만들어낸 '가짜 용어(fake word)'라고 비판했지만 최근 지지율이 집권 1·2기를 통틀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용카드 이자율 10% 상한제, 주택시장 개입, 관세 수입을 활용한 2000달러 지급을 제시하는 등 생활비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로버트 바베라 미국 존스홉킨스대 금융경제센터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 정책들은 상징성은 있지만, 실행 속도와 경제에 미칠 실제 영향을 고려하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반전 카드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이민정책을 들 수 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연방 이민 단속 요원의 총격으로 1월 한 달 사이 시민 2명이 숨졌다. 그러자 연방당국의 이민 단속 방식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는 등 반발이 확산하는 추세다. 미네소타주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연방 이민 단속 요원이 대거 투입돼 이 지역에 많이 사는 소말리아계를 비롯한 불법 이민자들을 단속하는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

중간선거, 트럼프 무덤 되나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이 '저항'을 촉구하는 등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현장 책임자였던 그레그 보비노 국경순찰대 사령관을 경질하고 연방 이민 단속 요원 700명을 미네소타에서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차별적 불법 이민자 단속 기조에서 한발 물러선 것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민정책 반대(53%)가 지지(40%)보다 앞섰다. 지난해 2월에는 지지가 50%, 반대는 41%였다.
미국 언론들은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연방대법원이 그동안 보수 우위 구도라 주요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내려왔지만, 이번 재판 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방대법원이 조만간 열릴 재판에서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이라고 판결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기업들에 대한 환급 절차와 각국의 투자 약속에 대혼란이 발생하고,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중간선거가 역대 대통령처럼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현직 대통령의 무덤'이 될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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