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풋내기가 MVP로 선정됐다고!?’ 센세이션 일으켰던 신인 가드의 등장

[점프볼=최창환 기자] ‘가드는 팬들을 즐겁게 하고, 센터는 감독을 웃게 한다’라는 농구계 명언이 있지만, 예외도 있기 마련이다. 2025-2026시즌 팬도 감독도 즐겁게 해준 신인 가드가 대거 등장했듯, 출범 초기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가드는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라떼’ 얘기에 공감하기 힘든 MZ 세대라면 못 믿겠지만, 올 시즌에 활약 중인 신인 가드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스타들도 많았다. 평균 두 자리 득점은 기본이었으니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역대 신인 가드 가운데 최고의 사례를 엄선, 점프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기자와 같은 세대라면 공감의 ‘좋아요’를, MZ 세대는 전래동화 듣는 셈 치고 흥미롭게 주목해 주길!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주희정(나래)
1997-1998시즌 45경기 36분 15초 12.7점 4.1리바운드 4.2어시스트 2.9스틸
“동아고 주희정이라고 하는데 눈여겨보세요. 한양대에서 꼭 데려갔으면 합니다.” 주희정의 연습생 신화는 이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최명룡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시절, 한국산업은행은 겨울마다 부산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하며 조직력을 다졌다. 부산에 위치한 동아고, 중앙고와 연습경기도 수시로 치렀다.
그때 최명룡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은 선수가 바로 동아고 주희정이었다. “당시 한양대 감독이었던 선배에게 주희정을 스카우트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평가절하하더라고요. 결국 고려대에 갔죠.”
명문에 입학했지만, 주희정이 설 자리는 없었다. 1년 선배 신기성이 일찌감치 주전 자리를 꿰차 이렇다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 설상가상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 홀로 자신을 뒷바라지했던 할머니의 건강 악화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까지 놓였다.
방황하던 주희정이 농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최명룡 원주 나래(현 DB) 감독은 한국산업은행 선배였던 박한 고려대 감독을 찾아갔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청담동 카페에서 만나 말씀을 드렸더니 고려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머뭇거리시더라고요. 연습생 제도를 활용해서 제가 책임지고 키우겠다면서 데려왔습니다.”
나래는 연습생 신분임에도 주희정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할머니가 생활할 주거 공간을 마련해줬고, 불편함이 없도록 경제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연습생치고는 당시 월급(150만 원)도 적지 않은 편이었습니다”라는 게 최명룡 감독의 회고다.
그렇게 1997-1998시즌을 맞이한 주희정은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정규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서 부상을 입은 이인규를 대신해 주전으로 나서 나래의 앞선을 책임졌다. 주희정은 데뷔 시즌 45경기(당시 시즌은 5라운드 제도였다) 가운데 43경기에 선발 출전하는 등 평균 36분 15초 동안 12.7점 4.1리바운드 4.2어시스트 2.9스틸로 활약했다. 어시스트는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꼽혔던 강동희-이상민-버나드 블런트에 이어 4위, 스틸은 전체 1위였다. 주희정은 이와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전 이해도가 높았어요. 수비도 영리하게, 열심히 했죠. 가드치곤 리바운드도 많았으니 애초 기대했던 것 이상의 활약이었습니다.” 최명룡 감독의 말이다. 주희정 역시 “크게 획을 그어야겠다는 각오로 프로에 온 게 아니었어요. 집안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기 때문에 불안함이나 부담도 없었죠. 물론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전하면서 오프시즌을 열심히 준비한 것을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막전을 통해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라고 돌아봤다.

신기성(나래)
1998-1999시즌 45경기 33분 49초 12.9점 3점슛 2개 3.6리바운드 4.1어시스트 1.9스틸
KBL 출범 첫 신인상의 주인공이었던 주희정은 1년 만에 나래를 떠나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나래가 1998 신인 드래프트 전체 7순위로 신기성을 지명한 만큼, 교통 정리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삼성도 무게감 있는 포인트가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왜 주희정이 트레이드 대상이었을까.
“아버지의 마음으로 키웠던 선수였기 때문에 보내는 입장이었던 저 역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만, 기량이 궤도에 오른 만큼 ‘더 큰 물에서 놀아’라는 마음이었어요. 삼성, 나래의 기업 규모는 백화점과 구멍가게 정도 차이잖아요(웃음). 삼성에서 먼저 제안했고, 저와 구단도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을 내렸죠. 트레이드 소식을 전하니 울더군요. 충격이었겠죠. 저에게 2년 동안 연락도 안 할 정도로 섭섭해했습니다.” 최명룡 감독의 회고다.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윈-윈이 됐다. 주희정은 삼성의 약점을 단번에 메우며 리그 최정상급 가드로 성장했고, 2000-2001시즌 통합우승을 안기며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신기성도 나래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자리를 잡았다. 고려대 재학 시절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등 슈퍼스타들을 이끌었던 야전사령관의 면모를 프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데뷔 초기 3점슛이 약점으로 꼽혔던 주희정과 달리, 신기성은 슈팅 능력도 겸비한 1번이었다. 45경기를 모두 소화하며 평균 33분 49초 동안 12.9점 3점슛 2개(성공률 44.7%) 3.6리바운드 4.1어시스트 1.9스틸로 활약하며 나래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평생 한 번뿐이라는 신인상도 수상했다. 당시 신기성이 제친 경쟁자는 바로 서장훈이었다. 청주 SK(현 서울 SK)에서 데뷔한 서장훈은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차출돼 전 경기를 소화하진 못했지만, 34경기 평균 38분 10초 동안 25.4점 14리바운드 2.3어시스트 1.6블록슛으로 맹활약했다.
리바운드 1위(서장훈 이후 국내선수 신분으로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한 선수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에 오르는 등 웬만한 외국선수 이상의 존재감을 뽐냈지만, 당시 기자단은 개인 성적보단 팀 성적에 무게를 뒀다. SK에서 함께 뛴 서장훈과 현주엽의 표가 분산된 것도 신기성으로선 호재였다. 신기성은 기자단 투표에서 37표를 획득, 서장훈을 9표 차로 제쳤다. 신기성이 수상 직후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쳐서 MVP가 된 것만큼이나 기쁩니다”라는 말을 남긴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김승현(동양)
2001-2002시즌 54경기 37분 38초 12.2점 3점슛 1.3개 4리바운드 8어시스트 3.2스틸
2001-2002시즌 대구 동양에서 데뷔한 김승현은 역대 최고의 신인 가드 정도가 아니라 역대 최고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신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상, 코트 밖 이슈 등으로 전성기가 짧았으나 신인 김승현과 동시대를 함께한 관계자, 팬이라면 누구라도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동국대 출신 김승현의 2001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위는 3순위. 당시 랭킹 1위는 김주성과 함께 중앙대의 트윈타워로 활약한 송영진이었고, 가드 가운데 최고를 꼽는다면 전형수였다.
“김승현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어요. 단신인 데다 자기 농구만 한다는 지적도 받았죠. 하지만 제가 봤을 땐 번뜩이는 면이 있었습니다. 외국선수들의 능력을 잘 살려줄 것 같았죠. 그래서 차라리 2순위가 나왔으면 했는데 3순위가 나오더라고요. ‘글렀다’ 싶었는데 전형수가 2순위로 불리면서 쾌재를 불렀습니다.” 2001 드래프트 당시 동양 최명룡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를 맡았던 김진 감독의 회고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김승현이 평가를 뒤집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숨에 리그의 판도를 바꿨다. 남다른 시야와 속공 전개 능력을 바탕으로 볼품없었던 동양의 농구에 속도감을 더했다.
단순히 재밌는 농구를 보여주는 데에 그친 게 아니었다. 김승현-김병철-전희철-마르커스 힉스-라이언 페리맨으로 이어지는 짜임새 있는 라인업을 갖춘 동양은 이전 시즌 9승 36패 최하위의 수모를 딛고 2001-2002시즌 정규시즌 우승(36승 18패)이라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도 SK를 4승 3패로 제압,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그 중심에는 단연 김승현이 있었다. 54경기 모두 선발 출전, 평균 37분 38초 동안 12.2점 3점슛 1.3개(성공률 37.9%) 4리바운드 8어시스트 3.2스틸을 기록했다. 어시스트와 스틸은 전체 1위였으며, 여전히 신인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다.
신인상 부문에서 경쟁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MVP 경쟁에서도 웃었다. 김승현은 MVP 투표에서 39표를 획득, ‘부상 병동’이었던 SK를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던 서장훈을 2표 차로 제치며 MVP의 영예까지 안았다.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신인상, MVP 동시 석권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승현은 이어 2년 차 시즌을 앞두고 열렸던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천금의 스틸, 어시스트를 만들며 대한민국이 중국에 극적인 역전승을 따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양동근(모비스)
2004-2005시즌 52경기 33분 10초 11.5점 3점슛 1.3개 2.8리바운드 6.1어시스트 1.6스틸
“같은 계열사인 두 팀이 한 집안을 몰아줬다”라는 비난도 잠시, 2004년 1월 18일 전주 KCC(현 부산 KCC)와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가 단행한 트레이드는 역대 최고의 윈-윈 트레이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로 꼽힌다. KCC는 R.F. 바셋을 영입하며 이조추 트리오-찰스 민렌드 조합의 위력을 배가시켰고, 이를 토대로 2003-2004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무스타파 호프와 함께 2004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양도받은 모비스도 원하는 바를 이뤘다. KCC로부터 받은 1순위 지명권으로 지명한 선수가 바로 양동근이었다. 김승현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양동근에게는 공수에 모두 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정교한 슈팅 능력에 수비력을 겸비, 유재학 신임 감독 체제와 함께 리빌딩에 돌입한 모비스의 주전 가드로 꾸준히 경험치를 쌓았다.
무엇보다 돋보인 장점은 성실함이었다. 훗날 KBL 최고의 명장이 된 유재학 감독의 조언이나 쓴소리를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지적받은 부분을 농구일기에 적으며 자신을 돌아봤고, 몸 관리에도 충실하게 임했다.
“유재학 감독님의 충고를 포스트잇에 적어 화장실, 천장, 벽 등 자신의 시야가 닿는 곳곳에 붙였어요. 단순히 메모만 있는 게 아니라 패스할 때 공의 궤적을 점선으로 그려 넣을 정도였죠. 몸 관리 때문에 피자도 안 먹었어요.” 현대모비스 관계자의 회고다.
양동근은 데뷔 시즌에 52경기 평균 33분 10초를 소화하며 11.5점 3점슛 1.3개 2.8리바운드 6.1어시스트 1.6스틸로 활약했다. 신인 신분으로 12월의 선수(현재의 라운드 MVP에 해당하는 상이다)에 선정되기도 했다. 양동근은 이와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53표를 획득, 13표에 그친 이정석(당시 SBS)을 여유 있게 제치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플레이오프 탈락 팀 최초의 신인상이라는 진기록도 세웠지만, 오명이 아닌 전설로 향하는 첫걸음이었을 뿐이다. 데뷔 시즌만 플레이오프 무대를 못 밟았을 뿐 양동근이 2년 차 시즌부터 걸었던 길은 독자들이 알고 있는 대로 그 어떤 선수보다도 화려했다. 현대모비스에 총 6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안기며 등번호 6번이 영구결번되는 영예를 안았다.
물론 양동근은 자신이 세운 업적에 대해서도 ‘양동근스러운’ 답변을 남겼다. “현역 시절 ‘만약 지명권 교환이 없었다면?’이라는 질문을 가끔 받았는데, 가정은 해봐야 소용없는 거라 생각해요. 제가 어느 팀에 갔을지, 어떤 커리어를 쌓았을지 모르죠. 다만, 현대모비스에 와서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니 전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생각은 들어요. (포스트잇에 패스 궤적까지 그렸던 일화를 묻자)그러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제가 패스를 워낙 못하다 보니…. 통산 어시스트가 많은 건 단순히 오래 뛰어서일 뿐이에요. 평균 기록은 낮은 편이잖아요. 다른 형들에 비하면 전 임팩트가 많이 부족한 선수라고 생각해요.”

김선형(SK)
2011-2012시즌 54경기 32분 1초 14.9점 3점슛 1.1개 2.7리바운드 3.5어시스트 1.3스틸
서장훈이 FA 자격을 취득하며 삼성으로 떠난 2002년 이후, SK는 전형적인 ‘안될안’이었다. 국가대표 출신 스타 영입, 비싼 몸값을 자랑했던 외국선수와의 계약, 우승 경력의 감독 영입 등 성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투자를 했지만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오명만 남았을 뿐이다. 2002-2003시즌부터 2011-2012시즌까지 10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오른 건 2007-2008시즌이 유일했고, 그나마도 6강에서 스윕을 당했다.
비과학적인 방법도 총동원했다. 양지에 있는 연습체육관에 수맥이 흐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와 수맥 탐지기를 동원했고, ‘팀 로고에 있는 칼 방향이 밑으로 향해서 성적도 밑에 있는 것’이라며 칼 방향을 위로 바꾸기도 했다.
샤머니즘도 별다른 효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2011-2012시즌만큼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기에 충분한 시즌이었다. 비록 최종 성적은 9위에 그쳤지만, 2011-2012시즌은 바로 김선형이 데뷔한 시즌이었다.
‘오세근 드래프트’라 불렸던 2011 신인 드래프트. 오세근에 이어 2순위로 지명됐던 김선형은 ‘무색무취’의 SK에 스피드라는 색깔을 입혔다. 신인임에도 역대 선수들과 견줘도 뒤처지지 않는 속공전개능력을 뽐냈고, 웬만한 빅맨보다 많은 덩크슛을 터뜨리며 단숨에 SK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승부처를 즐기는 듯한 표정과 함께 위닝샷을 터뜨리는 등 SK가 그토록 찾았던 해결사의 등장이었다.
비록 신인상 투표에서 7표에 그쳐 MVP급 존재감을 뽐낸 오세근(당시 KGC인삼공사, 72표)에게 타이틀을 넘겨줬지만, 인기상과 이성구기념상(모범선수상)을 수상하며 KBL의 미래를 이끌 라이징스타로 공인받았다. 김선형의 신인 시절 기록은 54경기 평균 32분 1초 14.9점 3점슛 1.1개 2.7리바운드 3.5어시스트 1.3스틸. 14.9점은 KBL 선수 등록 포지션 기준 신인 가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1위는 2001-2002시즌 전형수(당시 코리아텐더)의 15.6점.
팀 성적에 대한 아쉬움도 2년 차 시즌에 곧바로 채웠다. 애런 헤인즈라는 든든한 러닝메이트를 만난 김선형은 2012-2013시즌에 SK에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안겼고, SK는 KBL 역대 한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44승)을 세웠다. 김선형은 중앙대 동기이자 선의의 라이벌 오세근보다 빨리 MVP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김민구(KCC)
2013-2014시즌 46경기 32분 41초 13.4점 3점슛 1.9개 5.1리바운드 4.6어시스트 1.8스틸
‘포스트 허재’라 불린 선수가 또 있었을까 싶다. 단순히 데뷔 당시 소속팀 감독이 허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김민구가 지닌 재능은 특별했다. 경희대 재학 시절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빗댄 ‘구비 브라이언트’라 불릴 정도로 탁월한 공격력을 뽐냈으며, 김종규-두경민과 함께 ‘BIG.3’를 이뤄 경희대를 신흥 강호로 이끌었다.
프로에 데뷔하기도 전이었던 2013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김민구는 2013 FIBA(국제농구연맹) 남자농구 아시아컵에서 평균 12.7점 4.1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대만과의 3-4위 결정전에서 3점슛 5개 포함 21점으로 활약, 대한민국에 16년 만의 월드컵 티켓을 안기며 대회 베스트5에 선정됐다.
2013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종규에 이어 2순위로 KCC에 지명된 후에도 김민구의 활약상은 이어졌다. 화려한 1대1 능력과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양동근, 김태술, 김선형 등과의 맞대결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2014년 2월 15일 고양 오리온을 상대로는 31점을 퍼붓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가드들 가운데 신인 시절 30점 이상을 기록한 경험이 있는 선수는 김승현뿐이었다.
NBA 신인상(1986-1987시즌) 수상 경력을 지닌 척 퍼슨 당시 KCC 코치는 김민구를 향해 “NBA에서도 뛸 수 있는 재능을 지녔다”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설령 ‘립서비스’ 차원이었다고 하더라도 김민구가 지닌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김종규(당시 LG, 68표)에 이어 신인상 투표 2위(28표)에 올랐던 김민구는 데뷔 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대표팀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합숙훈련 기간에 외박을 나온 김민구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고관절을 크게 다쳤다.
운동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부상이었고, 김민구는 2014-2015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2015-2016시즌 복귀했지만, 27경기 평균 10분 10초 동안 3점 1.1리바운드에 그쳤을 뿐이다. 원주 DB, 울산 현대모비스에서는 주요 식스맨으로 활약했으나 ‘구비 브라이언트’라 불리던 시절 기대했던 성장세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던 게 사실이다.
46경기 평균 32분 41초 13.4점 3점슛 1.9개 5.1리바운드 4.6어시스트 1.8스틸. 김민구가 신인 시절 남겼던 기록은 그렇게 커리어하이로 남았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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