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장비 '셀프 심의' 1억→3억 확대...속도전 좋지만, 비리 우려

유지승 기자 2026. 2.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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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연구장비 도입심의 기준 1억→3억 이상으로 완화
행정 줄여 기술패권 속도전...비리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



정부가 내년부터 국가연구시설장비(NFEC·엔팩)의 심의 기준을 기존 1억원에서 3억원 이상으로 문턱을 크게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연구자들의 행정 부담을 덜어 ‘연구 몰입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3억원까지 연구소 자체 심의에 맡기게 되는 만큼, 비리나 비효율 장비 구매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내년도 엔팩 심의 기준을 1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규제 혁신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3억원 미만의 연구 장비는 정부의 심의 대신, 각 연구기관이 자체적으로 심의해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속도'다.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는 1억원이 넘는 장비를 사는데 행정 업무 부담부터 심사에 수개월이 소요돼 글로벌 연구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출연연 관계자는 "심의 서류 준비 업무가 부담이 됐던 만큼, 자율 심의를 늘려주면 행정 업무의 효율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출연연 내부에선 물가 상승분을 반영할 때 그간 1억원 이상의 장비까지 다 심의를 하는 것은 불합리했다는 의견들이 나왔단 설명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심사 문턱이 낮아지면 연구기관 자체 심의만으로 장비 구매가 가능해지는 만큼, 연구자가 자신의 인맥이나 특정 업체 위주로 장비를 선정하더라도 외부의 견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장비의 경우 각 분야별 전문가가 아닌 이상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 악용된다.

실제로 그동안 장비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거나, 장비 가격을 부풀리고, 연구장비의 사적 유용, 무단 반출을 한 비리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 정부 심의를 받지 않기 위해 장비 가액을 쪼개거나, 다른 기관에서 빌려쓸 수 있는 장비를 또 신청하고, 구매후 방치해 예산이 낭비된 사례도 잇따른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막상 해외에서 주문 제작해 들여온 장비가 기존 장비와 호환이 되지 않아 사용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비 중복 구매나 방치 등의 문제를 우려하는 것을 알기에 최소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일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기술패권 전쟁 심화 속에 '연구 속도'를 잡기 위한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더 강력한 감시 시스템이 함께 따라오지 않으면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성은 주되,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부정 적발시 강력한 패널티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3억원 이하까지 정부 심의를 풀어주는 대신, 3억원 이상 고가 장비에 대한 심의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서면'과 '대면' 검토를 병행했던 것에서 3억원 이상 장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전면 '대면 검토'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 심의를 면제하는 3억원 미만 연구장비에 대한 도덕적 해이 우려가 있는 만큼 강력한 감시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면 검토의 경우 연구자가 직접 위원들 앞에서 장비 도입의 정당성을 발표하는 것으로 전문가인 심의위원들로부터 장비 스펙이나 최신 기술 트렌드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잘못된 장비를 구매하는 시행착오까지 줄일 수 있어 효과적인 방식으로 통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자율을 주고 책임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행정 서류들을 제출하는 절차를 최대한 완화하기로 했다"며 "3억원 이상 고가 장비에 대해선 대면 검토를 내실화해 장비 심사에서 탈락시 연구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상황을 소통을 통해 줄이고 더 적합한 장비를 들여오기 위한 논의와 조언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승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