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씨께 미안하고 고맙다고 전해줘요” ‘이문세의 작곡가’ 이영훈
2008년 2월 14일 48세

2008년 1월 18일 가수 이문세는 대장암 말기 투병 중인 작곡가 이영훈(1960~2008)이 입원한 병실에 찾아갔다. 이영훈은 이문세 히트곡 대부분을 만든 작곡가다. 1985년 처음 함께 작업한 이문세 3집이 150만장 이상 팔렸다. 수록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휘파람’이 잇달아 히트했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실은 4집(1987)은 285만장 나갔다.
‘이문세의 작곡가’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지만, 둘이 함께한 1999년 12집, 2001년 13집은 잇달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후 불화설이 돌았다. 서로 왕래도 뜸해졌다.

이문세는 병상 옆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 두 사람,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더 많이 만들게 해주시옵소서.” 둘은 손을 맞잡고 “아멘, 아멘”을 되풀이했다.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이영훈이 이문세의 손을 잡았다. “문세씨 항상 건강하고, 우리가 만든 발라드가 후세에 남을 수 있게 해줘요. 우리가 젊었을 때 몸 바쳐서 만든 거잖아.””(2008년 1월 21일 자 A13면)
일부에서는 이문세가 기자에게 요청해 병실에 찾아간 것이라고 수군댔다. 사실은 반대다. 당시 병실에 함께 갔던 한현우 전 조선일보 대중음악 담당 기자는 최근 “이영훈 작곡가가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이문세씨한테 부탁해 함께 가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훈은 이날 이문세와 만남 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영훈은 별세 보름 전쯤 한현우 기자에게 한 번 더 병실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고 했다.
“이씨는 슬그머니 이문세 이야기를 꺼냈다. “7집 만들고 사이가 나빠졌어요. 그래서 ‘결별’을 선언했다가 9집에서 다시 같이했죠. 가만 놔두면 문세씨와 내가 만들었던 음악이 없어지겠더라고.”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문세씨가 얼굴이 시커멓게 돼서 뛰어왔어요. 그리고는 덮어놓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내가 잘못했다, 내가 교만하고 가수 위에 서려고 하고, 죄를 많이 지었다고 고백했어.””(2008년 2월 15일자 A25면)

이영훈이 ‘사이가 나빠졌다’고 회고한 시기는 1993년 무렵이다. 둘은 이때 따로 음반을 냈다. 이문세는 8집, 이영훈은 첫 독집 ‘이영훈 소품집 I’을 냈다. 당시는 둘 모두 ‘결별’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금방 둘이 결별했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워낙 둘이서만 작업을 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한번쯤 음악에 변화도 줄 겸 후배들의 곡을 받아보기로 했을 뿐입니다.”(이문세)
“친구 사이에 결별은요. 좀 쉬면서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음악도 있고 해서 상의한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앨범 발표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은 우연이었구요.”(이영훈·1993년 10월 21일 자 17면)

둘은 9집 작업을 다시 함께했지만 훗날 이영훈이 병상에서 한 말을 보면 이 무렵 사이가 벌어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영훈은 병실을 다시 찾은 기자에게 “문세씨께 미안하고 고맙다고 꼭 기록해 달라”고 말했다. 이 말은 마지막 유언이 됐다.
이영훈 1주기인 2009년 2월 14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건너편에 ‘이영훈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영훈 작사·작곡, 이문세 노래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언덕 밑 정동길’ 바로 그곳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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