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못 바꿔도 내 책상 앞만은 바꿀 수 있다
‘데스크테리어’ 열풍에
키보드 꾸미기까지 인기
지난 9일 찾은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내 키보드 전문 매장은 PC방을 방불케 했다. 매장 곳곳에서 ‘타닥타닥’ 하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타건감 좋다” “이건 오래 치면 손목이 아프겠다” 등 키보드 품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진열된 키보드는 70여 종에 달한다. 가격 역시 수만원에서 십수만원을 넘는 제품까지 다양했다. 매장 안은 평일 오후임에도 고객 20여 명으로 꽉 찼다. 인기 키보드를 두드려보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직접 타건을 해보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며 “과제하기 싫을 때 그래도 (키보드) 치는 맛이라도 있으면 컴퓨터 앞에 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 전·월세 가격은 연일 치솟으며, 인테리어 비용은 갈수록 높아진다. 그러나 집은 못 바꿔도, 내 책상 앞만은 바꿀 수 있다. 이른바 ‘데스크테리어(deskterior)’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책상(desk)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로, 내 책상 주변만큼은 잘 꾸미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데스크테리어’를 검색하면 좋아하는 캐릭터 피규어를 곳곳에 배치하거나, 식물을 놓는 등 저마다 개성으로 예쁘게 꾸민 책상 사진 약 28만개가 나온다. 단순히 보기에만 좋게 꾸미는 건 아니다. 눈의 피로를 줄일 수 있는 간접 조명을 설치하거나, 모니터를 공중에 띄워 책상 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모니터 암(monitor arm)’을 달고, 손목 받침대를 놓는 등 집중력을 높이면서도 업무 효율과 건강을 신경 쓴 제품이 많다.

그중에서도 ‘키보드’는 데스크테리어 열풍의 중심에 서 있다.서울 소재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홍성윤(45)씨는 사무실에만 키보드를 3개 놓고 쓴다. 집에서 쓰는 키보드는 또 따로 있다. 홍씨는 “‘독거미’란 별명이 붙은 기계식 키보드를 처음 사봤는데, 흔히 키보드 애호가들이 ‘도각도각’이라고 말하는 조약돌 맞부딪히는 듯한 소리, 손가락을 다시 밀어올려 주는 듯한 적당한 반발감이 계속해서 타이핑을 하고 싶게 만들더라”며 “4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키보드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는 “생각해 보면 키보드야말로 회사 사무실, 집 서재에서 먼지 쌓일 틈도 없이 자주 사용하는 실용적인 물건이더라”며 “타건감, 타건음, 반응 속도, 외양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키보드를 여러 개 갖춰 놓고 매일의 기분에 맞춰 키보드를 바꿔 사용한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뮷즈(박물관 굿즈) 열풍’을 이끌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뮷즈 판매 순위 상위권에 늘 꼽히는 제품이 바로 ‘기계식 단청 키보드’다. 한국 전통 단청 문양을 담은 데다 한글 자음 모음이 큼직하게 적혀 있어 내·외국인에게 모두 인기가 좋다고 한다.

키보드가 ‘애호’의 대상이 되면서,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면 찾을 리 없던 ‘키캡’을 구하는 이도 많아졌다. 키캡은 쉽게 말해 키보드에서 ㄱ, ㄴ, ㄷ 같은 문자가 쓰여 있는 개별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개당 1000원 안팎의 가격으로, 키보드 전체를 바꾸는 것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개성 있는 키보드 꾸미기가 가능하다. 최근 키보드 전용 매장 등에서 키캡 제거 전용 리무버 등 관련 장비도 판매하고 있어, 기계식 키보드만 갖추고 있다면 개인이 손쉽게 교체할 수도 있다.
지난 1일 국내 양대 편의점에서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출시한 주력 제품군 역시 ‘키캡’이 포함된 초콜릿과 ‘키캡 키링(키캡으로 키링을 만드는 것)’ 등 데스크테리어 열풍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CU는 포켓몬 키캡을, 세븐일레븐은 헬로 키티 키캡이 포함된 제품군을 내놓았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에 따르면, 특히 포켓몬 키링은 발매 하루 만에 크림에서 전일 대비 검색량이 239% 증가했다. 검색량만 증가한 게 아니라 프리미엄(웃돈)까지 형성됐다. 원래 키캡 키링에 초콜릿 등이 포함된 세트 상품이 1만7900원이지만, 현재 크림에선 키캡 키링만 3만1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8)씨는 “포켓몬 키캡 출시 이후 매일 편의점 앱을 통해 재고 조회를 해보는데도 서울 전역에는 남은 재고가 ‘0′으로 표시돼 구할 수가 없었다”며 “충남 아산 인근에 재고가 있다고 나와서 다행히 아는 지인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쓰기 싫은 보고서를 쓸 때마다 이 포켓몬 키캡을 보며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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