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머노이드 대전 “조금 슬프지만 명예로운 전역을 할 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렇게 말하며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의 전기자동차 2종(모델S·모델X) 생산 중단 계획을 밝혔다. 테슬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두 선봉장이 물러나는 자리를 채우는 건 신형 전기차가 아닌, 사람의 형태를 한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 ‘옵티머스’다. 이날 머스크는 이 공장을 연간 100만 대 생산 규모의 3세대 옵티머스 제조 거점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테슬라의 행보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일본에서도 기술과 시장 규모가 급성장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현재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사진 테슬라]
이르면 수개월 안에 공개될 예정인 3세대 옵티머스는 테슬라가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첫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앞서 머스크는 이 모델을 가리켜 “로봇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사실적”이라며 “사람의 손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정밀한 조작 능력을 구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 혼다가 2000년 공개한 ‘아시모’ 등, 과거에도 사람의 형태나 동작을 흉내 낸 휴머노이드 로봇은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의 상호작용 능력이 부족하고 엔지니어가 프로그래밍을 통해 일일이 수동 조작해야 하는 한계로 대량생산이 무의미할 만큼 실용성·사업성은 희박했다. 또 물리적으로 사람의 근육과 인대, 특히 손을 모사하는 구조 설계가 매우 어려운데 이를 해내지 못하면 산업용 또는 서비스 로봇으로서 존재가치를 갖기 힘들었다.
테슬라, 전기차 공장 휴머노이드 거점 전환 이 때문에 지금껏 양산·유통된 산업용·서비스 로봇은 일부의 제한된 작업만 수행할 뿐, 다리를 갖거나 서서 걷는 등의 더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인체 특성을 갖추지는 못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면서 본격 대량생산 시대를 앞둘 만큼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 기술이 발전한 데는 인공지능(AI) 기술 약진이 작용했다. 김지현 SK경영경제연구소 부사장은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몰아친 챗GPT 등 생성형 AI 열풍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다양하게 활용할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미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사 피겨AI가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손잡고 2024년 선보인 ‘피겨01’은 사람과 음성 대화를 하며 실시간으로 사람의 명령에 반응, 작업을 수행한다. 테이블 위의 빈 식기에 대해 말하면 알아듣고 식기건조대에 옮겨주는 식이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사이 물리적으로도 센서나 액추에이터(구동기), 소재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손 등의 정밀한 구현이 가능해졌다. 광학과 압전 등의 센서 발전으로 전방위 환경 감지 능력이 강화됐고 고출력 모터로 제어 성능도 향상됐다. 평면과 구면, 관절형 등 다양한 형태의 모터 개발로 휴머노이드 로봇 설계 유연성이 강화됐다. 그러면서 제조 단가 하락과 시장 수요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시장 조사 업체 모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는 올해 39억3000만 달러(약 5조7000억원)에서 2031년 178억 달러(약 25조9000억원)로 연평균 35.3% 성장할 전망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산업 흐름을 바꿀 ‘제2의 전기차’로 주목받고 있는 배경이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미국은 테슬라 등 빅테크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통한 AI 기술력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 제조 역량과 내수 시장의 수요를 앞세운 중국도 만만치 않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설치 대수가 지난해 1만6000대에서 2027년 10만 대로 6배 넘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지난해 설치 대수 기준 시장점유율에서 1~4위를 기록한 애지봇(30.4%)·유니트리(26.4%)·유비테크(5.2%)·러쥐(4.9%) 모두 중국 기업이다. 이들은 만든 제품을 자국 물류·제조 현장에 대거 투입하면서 테슬라(4.7%)를 5위로 밀어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2020년부터 출원한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특허 수가 미국 기업보다 5배가량 많다. 이에 제조 단가 인하 경쟁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로봇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공급망의 중추”라며 “미국도 중국산 핵심 부품 의존도가 높다”고 전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공급망에서 이탈할 경우 테슬라 옵티머스의 핵심 부품인 관절 액추에이터 생산 원가가 대당 2만2000달러에서 최고 5만8000달러로 2.6배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전통의 로봇 제조 강국 일본도 그간 쌓은 기술력으로 미국·중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는 세계 2위, 출하량 중 70% 이상은 수출에서 발생 중이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가와사키중공업의 재난구조용 휴머노이드 로봇 ‘칼레이도’, 소니의 휴머노이드 로봇 팔 관절용 초경량 액추에이터와 같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 애지봇 공장에서 직원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옮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 “휴머노이드, 수년 내 사람 앞지를 것”
후발주자인 한국은 현대차그룹이 2021년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이후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과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지난달 선보인 최신형 ‘아틀라스’는 공장 등 실제 산업 현장 투입을 목표로 설계된 전동식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약 190㎝ 키에 90㎏ 몸무게로 순간 최대 50㎏ 하중을 들어 올릴 수 있고, 56가지 자유 동작으로 사람과 비슷하게 복잡한 움직임을 구현한다. 최근 공개된 연구용 영상에서는 연속 공중제비와 같은 화려한 체조 동작과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균형을 잡고 보행하는 모습으로 시선을 모았다. 현대차그룹은 전동식 아틀라스를 중심으로 2028년부터 연간 수만 대 로봇을 생산, 미국 등의 자동차 공장에 배치할 계획이다. 제조 현장의 인건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는 행보다.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 [연합뉴스]
현대차 노조는 급격히 발전 중인 아틀라스가 근로자 다수를 대체하면서 대량실업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 지난달 22일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의 로봇도 생산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성이 수년 내에 사람을 앞지를 공산이 큰 만큼 각계가 격변기를 염두에 둔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에 공장을 지어 인건비 등의 비용 절감을 추구했던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 흐름이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성과에 따라 거세질 수 있다”면서도 “단순 생산직 일자리 수요는 줄더라도 로봇을 관리하는 기술직 등의 수요는 늘기 때문에 고용시장에 부정적 영향만 끼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