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사과하고 또 사과해야 미래세대가 배운다” [안녕 진화위⑰]

고경태 기자 2026. 2. 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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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진화위⑰
민주당 ‘과거사 진실규명의 엔진’ 김성회 의원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안녕’은 작별이자 환영의 인사다.

5년간 과거사 조사기구로 활동해온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지난해 11월26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오는 2월26일 제3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다.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시작된 ‘안녕 진화위’는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 나서는 부정기 연재물이다. 과거사 조사와 규명에 진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3기로 가는 여정의 의지와 기대를 담는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
국회 상임위원회는 국회의원의 실력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쇼케이스’다.

상임위 전체회의나 업무보고, 국정감사와 청문회에서 기관장과 증인 및 참고인을 상대로 어떤 태도와 내용으로 질문하는가는 그 의원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면박과 호통에만 의존하는 의원들은 바닥이 드러나지만, 전문성과 식견, 정치적 감각을 갖추고 좋은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은 주목받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22대 국회 초선으로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서 활동한 김성회 의원(54, 더불어민주당, 경기 고양갑)은 기대주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의원은 2024년 6월과 10월, 2025년 4월 행안위 국정감사 등에서 진실화해위에 대한 송곳 같은 질문으로 김광동·박선영 위원장을 궁지에 몰아넣는 모습을 보였다. 진실화해위 내부 제보를 바탕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를 빨갱이나 부역자로 모는 상황을 추궁했고, 5·18에 대한 북한 개입설 관련 질문으로 위원장들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허황한지를 드러냈다. 이런 성과 덕분인지, 2024년 9월 국회 운영위원회의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 후보 청문회 때 운영위 소방수로 긴급 투입되기도 했다. 여기엔 2016년부터 케이비에스(KBS) 더라이브, 시비에스(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한겨레티브이 공덕포차 등 방송과 유튜브에서 선보인 뛰어난 언변도 한몫했다.

전국 45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희생자 유족회 및 유관 단체 관계자들이 6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3기 진실화해위 출범을 맞아 정부와 국회에 바라는 점을 밝히는 가운데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오른쪽)이 올해 95살인 한국전쟁 경주유족회 김하종 회장의 손을 잡고 함께 서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성회 의원을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김 의원은 국회 행안위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와 함께 3기 진실화해위 출범의 근거가 된 진실화해위 기본법(과거사법) 발의를 주도하며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 및 유족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왔다. 과거사 관련 국회 토론회나 피해자들 기자회견에 나와 “여야합의로 꼭 과거사법을 처리하겠다”며 피해자와 유족들을 안심시켰던 일도 여러 차례였다. 어쩌면 민주당에서 ‘과거사 진실규명의 엔진’ 같은 역할을 맡았다.

그는 국가의 진실화해위 권고 이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중 하나인 국가 차원의 사과는 단순히 피해자와 유족을 향한 것만이 아니라 ‘국가는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교범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최근 자신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에스앤에스(SNS)의 폭증이 가져올 직접민주주의의 득과 실’, ‘열강들 사이에서의 외교적 선택’, ‘미래 에이아이(AI) 격차 해소’ 등의 담론과 같이 과거사에 대한 국가의 지속적인 사과는 과거가 아닌 ‘미래 의제’에 속하는 문제라는 거였다.

김 의원은 국내 정치권에 몸을 담기 전 10여년간 미국 생활을 했다. 군 전역 뒤 2001년 부모가 살던 엘에이(LA)로 건너가, 엘에이(LA) 노사모 간사 등 시민단체활동·민주당 해외당직자 등으로 2011년까지 일했고, 같은 기간 목회학 석사 과정도 병행하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귀국해 신계륜·정청래·손혜원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했다. 그는 본인이 자부심을 품고 있다는 두 가지 과거사에 관한 이야기도 전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해외 최초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한 일이 하나였고, 전두환 신군부의 광풍이 몰아치던 1979~1980년 외할아버지인 안종훈 장군이 군의 정치개입을 시종일관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게 또 하나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1950년 7월 대전 산내면 골령골에서 헌병들이 대전형무소 재소자들과 보도연맹원을 학살한 현장에서 민간 청년단원들이 구덩이의 주검들을 정리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보좌관 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국회의원 처음 해보니까 어떤가요.

“보좌관 생활을 꽤 해서 국회 돌아가는 원리나 의원들의 업무 강도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수로 뛰는 건 다르네요. 원래 국회의원 업무 강도가 되게 높다고 느끼긴 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높고요. 생각보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보좌관 일할 때는 ‘내가 의원이 되면 보좌관처럼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안 돼요. 제가 뭘 하기보다는 보좌진들과 함께 협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입니다. 국회는 역시 팀으로 돌아가는구나 절감하고 있어요.”

―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나 진실화해위 국감 때 좋은 질문을 많이 하셨어요. 과거사 관련한 특별한 관심이 있으셨나요?

“대학 들어가던 1991년 국가폭력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충격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명지대 강경대군 치사사건이었습니다. 강경대가 저랑 같은 학년이었거든요. 단순히 집회에 참여해서 앞과 뒤를 오가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사법경찰 체포조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두개골이 함몰될 때까지 맞아서 죽었죠. 제가 알던 국가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죠. 대한민국 군인에 의해 그런 참상이 벌어졌다는 것을 사진과 비디오로 보면서 받았던 충격이 굉장히 컸습니다. 제가 군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전쟁 무용담은 들어봤지만, 군인이 자국민을 학살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어요. 국회 행안위에서 활동하면서 더 관심을 가진 측면도 있고요.

집단수용시설 및 해외입양 피해자들이 지난해 9월16일 낮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올바른 3기 진실·화해기본법 조속한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손팻말을 들고 선 가운데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 개정과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 군인 집안이라면.

“저희 외할아버지가 삼성 장군 출신인데 12·12 때는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이었어요. 당시 육군 소장이셨던 안종훈(1926~2002) 장군입니다. 장태완 장군 편에서 12·12를 일으킨 전두환 일당을 막는 일을 같이하셨다는 이야기가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장군 인터뷰에도 나옵니다. ‘반란군들 저렇게 놔두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셨어요. 그다음에 5월17일 전군지휘관 회의에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잖아요. 그걸로 5·18이 촉발되는데, 육군 중장이었던 외할아버지가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하고 국민의 요청이 있기 전에는 안 된다’라고 유일하게 반대를 하셨고, 그게 회의록에 남아있어요. 물론 묵살되었죠. 그러고 나서 44년 만에 또 계엄이 터졌는데 손자인 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에 반대하는 표결을 했고 결국 계엄을 막았잖아요. 저로서는 외할아버지가 못 이루셨던 것을 이룬 셈입니다.”

― 2024년 10월 진실화해위 국정감사에서 김광동 위원장에게 5·18 관련 질문을 하셨어요. 이후 박선영 위원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죠.

“5·18은 저한테 일종의 리트머스지였는데요. 국가 일을 하는 공직자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최저선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이나 북한군의 작업에 의해 이뤄졌다는 건 완벽하게 가짜뉴스로 드러나서 이미 법적 처벌도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교과서나 판결문보다는 극우 유튜브로 떠도는 이야기에 경도돼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거든요. 그 기준으로 질의해본 거였죠.

김광동 위원장이 5·18과 관련한 북한군 개입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답을 했는데, 혹시나 해서 ‘북한의 개입은요?’라고 다시 물었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을 해볼 수 있다’고 해서 굉장히 화가 났어요. 역사를 다루는 기관의 기관장이 이미 정립된 역사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로 기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어 질책했습니다. 박선영 위원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죠. 박선영 위원장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회피해 논란이 됐고, 이후에 신정훈 행안위원장과 논란을 벌였습니다. 박 위원장은 ‘내가 북한군이 개입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그 이상 답변하냐. 진실 여부는 내가 모른다’고 답을 했어요.”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4년 6월19일 오후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관 부처 업무보고에서 진실화해위 이옥남 상임위원과 황인수 조사1국장을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김성회 의원실 제공

― 김광동·박선영 두 사람을 다 겪으셨는데요.

“윤석열씨는 극우 유튜브를 열심히 봤다고 하잖아요. 그런 유튜브를 보면 ‘당신이 몰랐던 김구에 대한 불편한 진실’ 같은 제목으로 어떻게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합의한 역사를 왜곡하려고 들죠. 그런 식으로 형성된 윤석열씨의 국가관을 고려해보면 김광동과 박선영은 윤의 입장에선 최적의 인사였다고 봅니다. 국가 폭력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 그런 국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진화위를 구성한 건데, 윤석열 씨의 의심과 두 위원장의 의심이 같은 거죠.

국가가 어떻게 폭력을 저질렀는가를 들여다보기보다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간첩이나 부역자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뒀다고 보입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이승만의 군인들이 학살을 저지른 게 아니라 빨갱이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있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 2기 진실화해위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사건이 있었을까요?

“2기에서는 저는 아무래도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출신 황인수 조사1국장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그들에게 밝혀야 할 중요한 진실이란 ‘피해자들이 빨갱이였다’는 거였죠. 윤석열에서 김광동으로 이어지는 이런 생각이 황인수라는 사람을 한국전쟁기 사건을 관할하는 조사1국장으로 임명했다고 봅니다. 함평 민간인 집단희생 같은 경우에도 ‘죽창부대에 의해 죽었다’는 기술만 보고, 죽창은 좌익의 무기였으니 적대세력(인민군 또는 지방좌익)에게 죽은 거 아니냐는 식의 이념적 시선으로 재조사를 시킨 거였죠. 실제로는 당시 죽창 끝에 쇠를 달고 다닌 경찰 ‘대창부대’에 희생된 거였는데요. 아무튼 1기 때 진실규명된 것들까지 다 뒤집고 피해자가 ‘빨갱이’였는지 먼저 확인하려는 여러 사건을 보면서 되게 충격을 받았어요. 진화위 국정감사에서 그런 부분들을 지적한 거고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의 공동발의를 요청하기 위해 공화당 하원 존 캠벨 의원의 루 펜로즈 수석보좌관(왼쪽서 두 번째)에게 500여장의 지역구민 서명을 전달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김성회 의원. 김성회 의원실 제공

― 집단수용시설 피해자도 많이 만나셨어요.

“제가 피해자들을 뵙는 이유도 과거사 진상을 규명하는 것 이상으로 배·보상 같은 후속조처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진실규명에서 더 나아가 국가가 격에 맞는 사과도 하고 책임도 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화위 권고사항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지난해 국감 때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제출한 자료를 확인해보니, 1기 때는 권고 이행률이 86%에 달했는데, 2기 때는 이행률이 53%에 불과했어요.

마침 또 제 지역구인 고양시의 금정굴(한국전쟁기에 153명 이상이 불법총살돼 암매장된 동굴) 문제 같은 경우에도 고양시와 경찰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평화공원을 설립하라는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잖아요. 이렇게 방치하는 문제에 대해 행안부 장관에게 문제제기를 했고 경찰이 권고사항 수행기관으로 나서서 국토부와 엘에이치(LH, 한국토지주택공사)랑 적극적으로 논의하도록 했습니다. 이 부분은 나름 성과라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진실을 밝혀서 화해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는 거잖아요. 저는 진화위가 과거의 문제를 조사하는 기관이지만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학살이 벌어진 일을 함께 기억하는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있던 2007년 미국 하원에서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나서 제가 캘리포니아 지역 글렌데일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일을 했는데요. 그 이유도 다음 세대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통해서 과거의 참상을 기억하고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시는 없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진실화해위 기본법(과거사법) 이야기를 해볼게요. 김성회 의원님도 법안 발의를 한 입장에서 뜻 깊으셨을 텐데요.

“국민의힘이 잘 협조해서 기대했던 만큼 법안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법으로만 해결되지는 않겠죠. 결국 이제 집행 과정에서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걸 집행할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법적인 공간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3기 진화위법(과거사법)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야 간의 합의가 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진통이 없지는 않았지만, 진실을 밝혀서 역사와 화해하자는 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보수 정당도 동의한 셈이죠. 행안위에 계신 국민의힘 의원들이 비교적 합리적이에요. 심하게 시비를 걸지 않으시더라고요. 앞으로 여야가 합의한 위원들이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결론을 내어가면 될 거라고 봅니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3기에서 진실규명의 시간적 범위가 9년 가까이 늘어났어요.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코멘트할 필요가 없겠죠. 3기 위원회가 잘 조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사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안에 거의 해결하도록 구조를 짜놨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이때가 아니면 안 되지 않겠냐라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절박함이죠. 윤석열 정권이 2기 진화위에서 보여줬던 모습에 대한 충격이 있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 기간 진화위만큼은 다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피해자들이 매우 고령임을 고려하면 이번 위원회 활동 기간에 해결하는 게 맞겠죠.”

―개정안 조항 중에 중요하다고 보신 부분이 있다면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진화위 권고에 대해 국가가 이행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번 법 개정으로 권고사항 이행관리의 주체가 행안부 장관에서 국무총리로 격상된 것은 매우 잘된 일입니다. 또 진실규명 결정 사건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배제 규정이 신설된 것도 뜻깊습니다. 유족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워낙 연좌제에 엮여 있다 보니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사신 분들이 많잖아요. 늦게 사실을 알았을 경우에도 조사가 이뤄지고 적절한 배·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 진실화해위는 조사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릴 때마다 국가의 사과 등을 권고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사과한 적이 없어요. 실제 사과하려면 진실규명 나올 때마다 사과해야 하거든요.

“계속해야죠. 계속해야 합니다. 독일도 수십 년에 걸쳐서 총리들이 계속 사과해 오지 않았습니까?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이지만, 그 사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음 세대가 ‘국가는 이래야 하는구나’라는 상을 정립하는 데 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게 똑같은 거 아닙니까? 일본에 왜 자꾸 사과하라고 하느냐고 하지만 일본의 국민과 청소년들이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인 거지, 내 분을 풀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과거사를 규명하는 건 ‘국가는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교범을 만들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보자면 이건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일입니다. 몇 명 유족의 마음을 달래주는 거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권고 사항 이행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고요.”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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