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李 정부 치매 정책, ‘일상 누릴 권리’ 허울뿐인 말 아니려면

이석호 기자 2026. 2. 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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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관리율’ 지표, 정책 비전과 괴리...공공신탁, 정책 신뢰부터 쌓아야
공공후견 '제자리', 해법 있나...치매관리주치의 확대 ‘뜬구름’ 될라
정책 수립 시 당사자 의견 반영해야...숙의 과정 기록, 투명한 공개 필요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 / 보건복지부

이재명 정부가 향후 5년간 추진할 국가 치매 정책의 밑그림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을 발표하고, 비전으로 '치매가 있어도 일상을 누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제시했다. 치매 예방부터 진단, 치료, 돌봄까지 모든 단계에서 지역사회 기반을 강화해, 당사자가 살던 곳에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다. 현장에서 체감 가능한 변화로 이어지는지가 성패를 가른다. 실행 구조와 평가 방식이 실제 정책 수요자 관점에서 실효성 있게 설계됐는지도 검증이 필요하다. 

'치매관리율' 지표, 정책 비전과 괴리...공공신탁, 정책 신뢰부터 쌓아야

정부는 이번 5차 계획에서도 대표 성과 지표로 '지역사회 치매관리율'을 제시했다. 이는 치매안심센터 등록률, 경도인지장애 진단자 등록률, 환자·보호자 서비스 이용률 등을 가중 합산한 지표로, 지난해 76.4%에서 2030년 84.4%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치매 정책의 비전이 '일상 유지'와 '권리 보장'에 있다면, 수치 위주의 단일 지표만으로 성과를 평가하기에 한계가 있다. 행정적 성과는 수치로 관리될 수 있지만, 당사자의 삶의 질이나 가족 부담까지 담아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추진하는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공공신탁)' 서비스도 주요 과제다. 올해 시범사업 도입 후 2028년 본사업 전환이 목표다. 치매 환자의 자산을 사기나 경제적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신탁 방식으로, 공적 체계 안에서 수탁기관인 국민연금이 관리·지출을 지원하는 구조다.

실제로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사기나 재산 유용 사건이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추세에서, 제도 취지 자체에 대한 이견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제도는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후견지원신탁(치매신탁)'이라는 금융위원회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치매 머니'라는 자극적 수사를 붙이고, 2050년에는 488조 원 규모의 치매 환자 자산이 '묶인다'는 이슈를 다루면서 공공신탁의 불씨를 되살렸다. 금융업계에서도 '성장성'에 주목하며 앞다퉈 민간신탁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공공후견 '제자리' 해법 있나...치매관리주치의 확대도 '뜬구름' 될라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 시범사업 / 보건복지부

신탁(信託)은 이름 그대로 '믿고 맡기는' 계약 구조인 만큼 신뢰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공적 기관이 치매 당사자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개념에 대해 아직 사회적 이해와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사유 재산 통제로 오해하는 시선도 존재해 정책 목표와 사회적 인식의 간극도 드러난다. 이와 함께 업무를 담당할 공공기관 인력조차 신탁 관련 업무가 생소해 교육과 경험 축적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현장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도 치매 환자의 자산 관리는 가족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사적 영역에서 개인마다 인식 수준과 처한 환경이 달라 민감도도 높다. 올해 시범사업의 사례 지원 목표는 750명이다. 사회적 인식과 현장 체계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전적인 수치다. 목표치에 집착해 사례 발굴만 집중하다가는 오히려 거부감을 키울 수도 있다.

제도적 안착에 어려움을 겪는 치매공공후견도 지원 인력을 지난해 256명에서 2030년 1,900명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원인에 대한 현장 진단과 개선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상자 인식 미흡, 이용 절차의 복잡성, 후견인 수급·관리, 현장 지원 체계의 취약성 등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지원 인력을 늘리더라도 실제 이용률이 제한적일 것이란 우려에서다.

2024년 시범적으로 도입된 치매관리주치의 사업도 2028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한다. 현장에서는 제도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의료기관 운영 여건과 수가 체계 개편 등 유인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 참여율은 여전히 낮고, 운영 부담으로 중도 이탈 사례도 흔하다는 지적이다.

정책 수립 시 당사자 의견 반영해야...숙의 과정 기록, 투명한 공개 필요
출처=보건복지부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 자료

정책 과제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5차 계획 수립 과정에서 치매 당사자와 가족, 의료·복지·돌봄 현장 전문가, 학계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실제로 얼마나 충분히 반영됐는지다.

몇 차례 간담회나 설문조사만으로는 복합적인 현장 요구와 돌봄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정부 주도의 거버넌스 구조 안에서 정책이 탁상 논의에 머물지 않으려면, 일방적 지표 중심의 평가 체계도 함께 손질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수치화된 지표에서 배제된 치매 현장의 현실적 문제가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행되는 정책의 실행 방식과 효과를 따져 묻는 일이 시기상조로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추상적 구호만으로는 정책 신뢰와 실질적 성과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당사자와 가족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정책은 성공적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2030년 치매 환자는 121만 명,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는 36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자만 약 50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사회적 영향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이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 만든 슬로건과 계획이라도 5년후 냉정한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치매가 있어도 일상을 누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라는 비전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책 설계 단계에서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구조부터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와 진행한 숙의 내용과 조정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탄탄하게 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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