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엡스틴 이스라엘 정보원설…FBI ‘X파일’에 “모사드에 포섭된 스파이”

정의길 기자 2026. 2. 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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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길레인의 아버지 통해 모사드에 연결
마가 진영서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와
미국 법무부가 지난 12월19일 공개한 제프리 엡스틴 관련 수사 자료 중 하나인 사진. 엡스틴은 이 사진에 나오는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의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을 통해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포섭됐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미 법무부 공개 자료 로이터

미국의 미성년 성착취범인 제프리 엡스틴은 단순한 억만장자 금융투자가가 아니라 외국에 포섭된 요원이었나?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이런 주장이 지난해 말 미국 정부의 관련 수사자료 공개 이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마가) 진영에서 제기한 ‘엡스틴은 이스라엘 정보 자산’이라는 주장이 더욱 퍼지고 있다.

지난 1월30일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300만건 이상의 문서와 사진, 영상 등 엡스틴 수사자료에서는 엡스틴을 추적했던 연방수사국(FBI)의 비밀요원이 그를 “모사드에 포섭된 요원”이라고 보고한 자료도 드러났다.

지난 2020년 연방수사국 로스앤젤레스 지부가 남긴 보고서는 자신들의 정보원 중 하나가 “엡스틴은 포섭된 모사드 요원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보고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엡스틴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을 위해 “스파이로 훈련된”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보고서는 정보원의 이런 주장이 독립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고 적었다.

보고서를 보면, 이 정보원은 엡스틴의 변호사인 앨런 더쇼비츠가 2007년 엡스틴이 연방검찰에서 수사받을 때 알렉스 어코스타 당시 연방검사에게 “엡스틴은 미국과 동맹국 양쪽 모두의 정보기관에 소속돼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엡스틴과 더쇼비츠 사이의 전화를 엿듣고 메모했다는 이 정보원은 두 사람의 통화 뒤에는 모사드가 더쇼비츠에 접근해 엡스틴과의 통화 내용을 보고받았다고 했다. 어코스타와 더쇼비츠는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엡스틴은 당시 검찰 쪽과 형량 협상(플리바게닝)을 진행해 주법 위반 2건을 인정하는 대신 연방법에 의한 중요 혐의는 불기소 처분을 받고, 13개월만 복역 뒤 풀려났다. 어코스타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노동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는데, 나중에 엡스틴 스캔들이 다시 불거지며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2019년에 사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엡스틴은 변호사 앨런 더쇼비츠를 통해 미국 및 동맹의 정보기관들과 연계됐다. 하버드 법학대학원 교수인 더쇼비츠는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친이스라엘 인사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권리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이론가이기도 하다. 더쇼비츠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등 부잣집 자제들을 제자로 두는 등 고급 인맥을 운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더쇼비츠는 정보원에게 만약 자신이 다시 젊어진다면, 그는 이스라엘 정보원(모사드)으로서 전기충격기(stun gun)를 들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정보원이 “더쇼비츠가 모사드에 포섭되었으며 그들의 임무에 동조하고 있다고 믿었다”고 썼다.

또, 이 정보원은 엡스틴이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와도 가까웠고, 엡스틴은 “바라크 밑에서 스파이로 훈련됐다”고 보고했다. 엡스틴과 바라크의 관계는 그가 이스라엘의 요원이라는 마가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의 대표적 근거이기도 하다.

알자지라 방송 등의 보도를 보면 공개된 엡스틴의 이메일도 그가 바라크 측근이자 이스라엘의 베테랑 정보요원인 요니 코렌과 폭넓은 관계를 보여준다. 코렌은 모사드 출신 베테랑 정보 요원으로 바라크 총리 재직 때 이스라엘의 군정보기관 수장을 지냈다. 코렌은 엡스틴의 뉴욕 저택에 정기적으로 머물렀으며, 2012년 암 치료 때에는 엡스틴이 치료비를 지불했다고 알려졌다.

엡스틴과 이스라엘의 연관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유대인인 그는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의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을 통해서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연결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유대인이자 영국의 출판재벌인 맥스웰은 이스라엘 경제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1991년 요트에서 실족사했다. 사망 직전에 그는 회사의 연금에서 거액을 횡령해 유용했는데, 그의 사망에 의혹이 제기됐다.

엡스틴도 지난 2018년 보낸 한 이메일에서 맥스웰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을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그들(모사드)이 맥스웰의 몰락하는 제국(사업체)을 구하는 4억파운드(약 7876억원)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맥스웰)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한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적었다. 엡스틴은 또 맥스웰이 미국, 영국, 소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비공식 요원으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법무부 누리집 갈무리

이스라엘 군정보국 출신의 유명한 정보요원인 아리 벤-메나셰는 맥스웰이 1980년대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무기거래 및 정보 작전에 관여했고, 이 때 엡스틴도 개입해 이란과의 무기 밀매 등에 관여했다고 주장한다. 벤-메나셰는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의해 덫에 걸렸다”며 “엡스틴은 미국 정부를 덫에 걸은 도구 중 하나이고, 그들은 엡스틴으로 미국 대통령들을 포획했다”고 주장했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지난해 9월16일 보도했다. 그는 또 “이는 단지 섹스에 관한 것이 아니고, 돈 문제이기도 하며 그 돈이 어디서 왔겠는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고교 교사 출신의 유대인 엡스틴이 갑자기 뉴욕 월가에서 억만장자 투자가로 부상한 배경을 짚은 것이다.

지난해 말 엡스틴 수사 자료 공개 이후 ‘엡스틴은 이스라엘 정보 자산’이라는 주장이 퍼지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6일 엑스를 통해 공개 반박했다. 그는 “제프리 엡스틴과 에후드 바라크의 이례적인 밀접한 관계가 엡스틴이 이스라엘을 위해 일했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는다”며 “이는 그 반대임을 증명한다, 바라크는 20년 전에 선거 패배에 집착해, 반시온주의 급진좌파들과 손잡고 선출된 이스라엘 정부를 타도하려는 실패한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법무부는 “엡스틴이 외국 정보기관 자산이라는 확정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엡스틴이 모사드 요원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고 악의적인 거짓말”이라고 여러 언론과의 회견에서 밝혀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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