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번역, 아직 인간보다 미숙하다[기고]

2026. 2. 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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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한국 문학작품 영어 번역 논란…인간 대체 가능한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와 운영사인 오픈AI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2일 챗GPT가 인간보다 한시를 더 잘 번역했다고 주장하는 보도가 몇개 나왔다. 뉴스1에 따르면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재미있는 실험을 해봤다. 17세기 조선시대 시인 장유(張維)의 한시 ‘신독잠(愼獨箴)’을 챗GPT를 통해 영어로 번역한 후 인간 번역가가 옮긴 번역본과 함께 국내 영문과 교수 16명 앞에 나란히 놓았다(민 의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AI 시대 금광이 여기에 있”다고 자신있게 선언한 바가 있다). 어떤 번역이 더 좋은지 물었더니 16명 중 12명은 AI가 만든 번역을 선호했고, 2명은 판단이 불가했다고 답했다. 2명만 인간이 번역한 시가 낫다고 했다. 결과를 본 후 민형배 의원실은 “AI 시대에 번역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AI 번역에 원문 참조했나 의문

그러나 이 실험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섣부른 판단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점점 보인다. 일단 의원실이 교수들에게 ‘원문’이라고 제공한 글은 한문 원문이 아니라 현대 한국어 번역본이다. 즉 “원문의 대구법을 영문학적으로 잘 표현했다”라고 평가한 교수는 원문을 읽어보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높다.

한문 원문을 쓰든 한국어 번역본을 쓰든 결과물만 잘 나오면 상관없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번역가가 원문을 아예 참고하지 않으면 번역에 종종 오류가 생긴다(‘고요속의 외침’ 게임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면 ‘신독잠’의 한국어 번역본에 ‘하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인간은 ‘하늘’을 ‘sky’라고 번역한 반면 챗GPT는 ‘Heaven’이라고 번역했다. 챗GPT 번역을 선택한 교수들은 “작가가 유학자였음을 고려하면 물리적 공간(Sky)이 아닌 신의 개념이 들어간 Heaven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한국어 번역본에는 ‘하늘’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하지만 챗GPT는 일관성 없이 첫 번째 사례를 ‘sky’로 번역한 다음 두 번째 사례를 (대문자 H를 쓴) ‘Heaven’으로 번역했고, 4행에 등장하는 ‘신(神)’이라는 단어도 ‘Heaven’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교수들이 AI의 섬세함을 과대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챗GPT가 ‘Heaven’이라고 번역한 ‘하늘’은 한문 원문에서 ‘천(天)’이 아니라 그보다 더 화려한 ‘圓穹(원궁)’이다. ‘원궁’은 초자연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하늘의 둥근 모양을 기술하기도 한다. 따라서 ‘Heaven’이 꼭 ‘sky’보다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심사위원으로 국내 영문과 교수만 16명을 택했다는 점도 수상하다. 한문과 교수는 이 실험의 전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고, 해외 영문과 교수는 인간 번역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한문학, 한국 문학, 영문학을 연구하는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다. 그리고 인간의 번역본이 완벽하다고 볼 수 없지만 챗GPT의 번역본에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일단 1행이 너무 난해하다. ‘Within’은 ‘~안에’를 뜻하는 전치사지만, 지시 대상이 없기 때문에 ‘room’이 무엇 안에 있는지 알 수 없다. 12행에는 한문 원문에도, 한국어 번역본에도 없는 명령형 ‘tell me’가 등장한다. 설령 이번 경우에 챗GPT의 번역본이 인간의 번역본보다 우수하다고 해도, 모든 경우에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챗GPT 로고 앞에서 로봇의 팔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깊은 의미 해석은 인간만 가능

이런 보도 속에서 함의된 꿈은 쉽고 싸게 한국 역사와 문화를 온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미래다. 인간 번역가는 AI보다 느리고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돈도 요구하는데, 건너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희망은 아직 환상이다. 일단 챗GPT가 정확하고 유려하게 번역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한다 해도, 국내에서 한국 고전문학을 찾는 독자가 많지 않고 해외에는 더더욱 없다. 번역서의 수만 늘린다고 해서 이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 독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한국 고전문학이 왜 중요하고 흥미로운지 해석하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고전문학의 경우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 학자가 이미 편집한 작품이 아니라면 필사본을 확인해야 하는데 AI는 행서, 세로쓰기, 반시옷 등을 읽을 수 있는 광학 문자 인식(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기능은 아직 부족하다. 편집된 책이 있는 경우 필자가 실험해본 결과 AI의 한문 번역은 나쁘지 않다. 글을 요약하고 대충 의미만 파악해야 할 때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해서 좋다는 것은 아니다. 오역이 잦고 문체가 매력 없는 경우가 많다. 박진성 조선일보 기자가 보도한 바 어느 출판사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제미나이로 번역하고 펴냈을 때 결과물에 ‘알빠노’, ‘킹받네’, ‘스불재’와 같은 신조어와 속어가 많았다. <열하일기>나 <한중록> 같은 한국 고전문학 유산이 이렇게 왜곡되면 얼마나 아쉬울까? 결국에는 번역을 평가하고 고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야지만 해외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이 나올 것이다. AI는 인간의 일을 보충할 수는 있지만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한국 고전문학을 대량으로 번역하려면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장유의 한시 한 수 정도야 챗GPT 무료 버전으로 가능하지만, 34권으로 구성된 장유의 <계곡선생집>은 단어 수 제한 때문에 안 된다. 따라서 출판사는 그런 기술을 제공해줄 회사를 찾아야 하고, 긴 글을 첨삭해줄 전문가도 고용해야 한다. <계곡선생집>은 수요가 비교적 낮은 작품인데, 과연 어떤 출판사가 이런 비용을 부담하고 싶어할까? 차라리 처음부터 인간 번역가를 고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AI는 번역가에게 유용한 보조가 될 수 있다. 가령 어려운 구절의 문법을 쉽게 풀어주거나, 대규모 분량의 작품을 서로 비교하는 작업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결함이 많은) 실험을 딱 한 번 수행해놓고 앞으로 번역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번역은 경쟁이 아니다. 해석이다. 따라서 번역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쌓아온 학식과 이치를 압축하고 응용해야 한다. 미래에 AI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인간만 가능하다. 그런 미래가 있다 해도, 아주 먼 미래다.

<필자가 한 번역본>
愼獨箴
張維

有幽其室 有默其處
人莫聞睹 神其臨汝

警爾惰體 ?爾邪思
濫觴不壅 滔天自是

仰戴圓穹 俯履方輿
謂莫我知 將誰欺乎

人獸之分 吉凶之幾
屋漏在彼 吾以爲師

Verses to Heed When Alone
(by Jang Yu/ translated by Spencer Lee-Lenfield)

In the solitude of one’s room,
in the silence of one’s home,
no one at all can hear or see you,
but the gods may be looking down.

Discipline your lazy body.
Repress your crooked thoughts.
Unstemmed, the riverhead
will naturally flood to the sky.

Gaze up in reverence at the round heavens,
bow down as you tread the square earth.
You may think, “No one knows what I’m doing,”
but whom are you trying to fool?

As to what separates humans and beasts,
what metes out bad luck and good,
the darkest corner over there--
I take that as my teacher.

이영일(스펜서 리 렌필드)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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