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점대 인생을 980점으로”…신용회복지원이 바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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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대상으로 쿠키 만들기 체험형 카페를 운영하던 ㄱ씨는 2020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또 다른 수상자인 ㄴ씨는 학원 운영 중 무리한 투자로 신용점수가 498점까지 떨어졌지만, 연체채무를 전액 상환한 뒤 823점으로 회복됐다고 밝혔다.
보육원 출신으로 코로나 이후 직장을 잃고 대출로 생활비를 충당하다 신용점수가 475점까지 내려갔던 청년 ㄷ씨도 신용회복 조치로 659점까지 점수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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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대상으로 쿠키 만들기 체험형 카페를 운영하던 ㄱ씨는 2020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예약이 모두 취소되면서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대출 연체가 시작됐고, 그의 신용점수는 200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몇 년에 걸쳐 빚을 모두 갚았지만 신용점수는 그대로였다. 정상적인 금융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신용점수는 980점으로 올랐다. 전액 상환자를 대상으로 연체 이력을 정리해주는 ‘전 국민 신용회복지원’ 조치가 적용되면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전 국민 신용회복지원 수기 공모전’ 수상자 3명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채무를 전액 상환했고, 지난해 9월 시행된 신용회복 지원조치를 통해 정상적인 금융생활로 복귀한 사례다.
이 제도는 2020년 1월부터 2025년 8월 사이 발생한 5천만원 이하 연체 채무를 지난해 말까지 전액 상환한 경우, 통상 5년간 보관되는 연체 이력 정보를 즉시 삭제해준다. 성실하게 빚을 갚았음에도 연체 기록이 남아 신용점수가 낮은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대출·카드 발급 등 정상적인 금융활동에 제약을 받아온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다.
대상 수상자인 ㄱ씨는 수기에서 “신용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일이었다”며 “이번 신용회복은 200점대에 머물러 있던 나의 인생을 900점대의 삶으로 끌어올려 준 전환점이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수상자인 ㄴ씨는 학원 운영 중 무리한 투자로 신용점수가 498점까지 떨어졌지만, 연체채무를 전액 상환한 뒤 823점으로 회복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제도가 없었다면 카드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사업을 정리하거나 포기했을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보육원 출신으로 코로나 이후 직장을 잃고 대출로 생활비를 충당하다 신용점수가 475점까지 내려갔던 청년 ㄷ씨도 신용회복 조치로 659점까지 점수를 끌어올렸다. 그는 “(신용회복이) 마법처럼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았지만, 다시 걸어나갈 수 있도록 발판을 놓아준 디딤돌이었다”고 말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신용회복지원은 성실하게 책임을 다한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제도”라며 “금융이 어려운 분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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