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비워낸 자리에서 생기는 취향

2026. 2. 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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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나는 오래된 옷이 왜 편안한지에 대해 썼다.

단순히 몸에 익어서가 아니라, 새 옷을 사서 기분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설령 새 옷을 사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소비를 하고 싶다고.

입지 않는 옷이 자리를 차지하면 정작 입고 싶은 옷을 둘 곳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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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나는 오래된 옷이 왜 편안한지에 대해 썼다. 단순히 몸에 익어서가 아니라, 새 옷을 사서 기분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늘 무언가를 더해야 내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굳이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생겼다. 마음의 기준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까지 했다. 설령 새 옷을 사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소비를 하고 싶다고. 가치 소비, 의미 소비 시대에 맞게,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하나를 사더라도 의미 있게 채우고 싶어졌다. 이렇게 가치 있는 것만 선택하는 삶을 지속하려면 어떤 환경에서 지내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은 옷장 정리라 결론지었다.

왜 옷장 정리일까. 무언가를 채우기 전에는 반드시 먼저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도를 가지고 옷장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알 수 있다. 누구의 옷장이든 자주 입는 옷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분명히 나뉜다. 인간의 무의식은 나도 모르게 내 손이 내 기호대로 움직이게 한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취향이 드러난다. 그런 거 잘 모르겠다면 이참에 만들면 된다. 소비를 줄이겠다는 다짐보다 기준을 세우는 일이 먼저다. 기준이 없으면 또다시 충동 소비로 돌아간다. 이제 내가 15년 넘게 지인들의 패션 컨설팅을 도맡아 해오며 적용해 온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단순하다. 최근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건 앞으로도 입지 않을 확률이 99%다. 계절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손이 가지 않았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언젠가 입겠지’는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아깝다고? 당연하다. 그렇지만 기억하자. 빈 공간을 만들어야 새로운 것도 잘 채울 수 있다. 입지 않는 옷이 자리를 차지하면 정작 입고 싶은 옷을 둘 곳이 없어진다.

두 번째는 스타일을 정하는 일이다. 핀터레스트에 추상적이어도 좋으니 원하는 이미지를 단어나 문장으로 검색한다. ‘데이트 성공 남친룩’ 같은 유치한 시도도 좋다. 눈이 가는 차림을 찾아가며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마다 계속 저장한다. 몇 장을 모을지보다 어느 정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특정 분위기가 반복되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른다. 어렵다면 나에게 중요한 상황을 가정하자. 여자친구 부모님을 뵙는 자리라면 어떨까. 기준이 생기면 선택은 더 또렷해진다.

이제 그 차림을 구성하는 아이템이 내 옷장에 있는지 살펴본다. 없다면 찾아서 산다. 그럼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1착장’이 만들어진다. 이제 여기서 더 옷장을 채운다면 이 1착 안의 아이템이 기준이 된다. 바지에 어울리는 또 다른 셔츠를, 셔츠에 어울리는 또 다른 재킷을 더해 간다. 이렇게 하면 옷장 안에선 어떻게 조합해도 괜찮은 차림이 나올 것이다. 선택에 대한 고민도 줄어든다.

한번 꼭 해보시라. 옷장을 비웠는데 마음마저 가벼워진다. 그 자리를 새롭게 채워가는 내 취향은 삶의 여러 분야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옷장 정리는 단순한 공간 정돈이 아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내 기준을 세우는 훈련이다. 후회하지 않는 소비 습관도 찾고, 취향도 생겼다. 와이낫?

지승렬 패션탈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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