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기차를 타지 않으면 가난해지는 나라[점선면]

유설희 기자 2026. 2. 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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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사실들): 지방에 남으면 가난도 남는다
선(맥락들): “양질의 일자리 부족·거점 국립대 경쟁력 약화돼”
면(관점들): 지방이라는 ‘개천’을 ‘큰 강’으로 바꿔야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이제는 옛말이 아니라 틀린 말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되려면 반드시 서울행 기차를 타야만 하거든요. 최근 한국은행이 비수도권의 저소득층 부모에게 태어나 고향에 남은 자녀 10명 중 8명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제 지방은 기회의 땅이 아닌 빈곤의 대물림 장소가 되어버린 건데요. 오늘 점선면은 서울로 가자니 숨 막히는 주거비가 앞길을 막고, 고향에 남자니 끊어진 사다리가 발목을 잡는 이 답답한 현실을 한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점(사실들): 지방에 남으면 가난도 남는다

비수도권에서 살고 소득이 하위 50%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자녀(현재 36~40세) 10명 중 8명은 여전히 소득 하위 50%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발표한 ‘지역 간 인구이동과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에서 “최근 세대에서 대물림 정도가 심해지는 양상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한은은 가난이 얼마나 대물림되는지 측정하기 위해 ‘소득 백분위 기울기’라는 지표를 사용했습니다. 쉽게 말해 부모의 경제적 위치가 자녀의 경제적 위치로 얼마나 똑같이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이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부모의 소득이 자녀에게 그대로 대물림된다는 뜻인데요. 분석 결과 1970년대생 자녀의 수치는 0.11이었지만 1980년대생 자녀는 0.32로 크게 뛰었습니다. 80년대생부터는 내 노력보다 부모의 경제력이 내 소득을 결정하는 힘이 3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자녀들은 계층 이동 가능성이 약화됐습니다. 고향에 남은 경우, 부모 소득이 하위 50%인 자녀의 소득이 여전히 하위 50%에 머무는 비율은 과거(1971~1985년생)에는 58.9%였지만 최근(1986~1990년생) 들어 80.9%로 높아졌습니다. 과거엔 ‘가난의 대물림’이 10명 중 6명에 그쳤다면 지금은 10명 중 8명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소득 하위 50%인데 자녀가 소득 상위 25%로 진입한 비율은 13%에서 4%로 하락했습니다.

부모 경제력이 뒷받침된 자녀는 수도권 이주를 통해 계층 상승 기회를 얻지만 고향에 남은 자녀는 ‘가난의 대물림’을 겪는다는 통념이 입증된 겁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최근 세대로 올수록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선(맥락들): “양질의 일자리 부족·거점 국립대 경쟁력 약화돼”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한국은행은 비수도권 전반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거점 국립대들의 경쟁력이 약화된 구조적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한은은 “거점도시 대학의 경쟁력 약화와 더불어 비수도권 전반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구조적 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수도권으로 이주하면 계층 상승의 기회가 생기지만요. 문제는 이 수도권으로의 이동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소득층 자녀는 주거비 부담 등으로 수도권보다는 인근 지역 이주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부모 자산이 하위 25%에 속한 자녀는 상위 25% 자녀보다 수도권 이주 확률이 43%포인트나 낮았습니다.

면(관점들): 지방이라는 ‘개천’을 ‘큰 강’으로 바꿔야

결국 지방 청년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서울로 와서 살인적인 집값에 허덕이며 삶의 질을 포기하거나, 고향에 남아 끊어진 사다리를 바라보며 가난을 대물림받는 것입니다. 정민수 한국은행 지역경제조사팀장은 “용이 될 재목이 강으로 가는 것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지방이라는 작은 개천을 큰 강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집중과 지역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은 서울행 티켓을 거머쥔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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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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