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 허벅지·매끈한 털… 금빛 신라의 땅 경주서 ‘전설의 적토마’를 만나다[2026 설특집]

김지현 기자 2026. 2. 1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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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설특집 - 붉은 말의 해, 적토마를 찾아서
삼국지의 영웅호걸들 탔던 ‘명마’
수소문 끝 찾아간 승마장서 ‘함가’ 조우
30분 질주에도 지친 기색 없이 ‘쌩쌩’
영하 30도 추위에도 꼿꼿한 자세 위풍당당
지난 5일 경북 경주시 한 승마장에서 적토마(아할테케) 품종 말 ‘함가’가 질주하고 있는 모습. 박윤슬 기자

경주 = 김지현 기자

“함가, 달리자!” 지난 5일 오전 경북 경주시의 한 승마장. 관리자의 외침에 올해 10살, 사람으로 치면 30대 전성기를 맞이한 함가의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렸다. 함가가 속력을 내자 땅 위로 10㎝가량의 모래바람이 일었다. 매끈한 꼬리털은 함가가 달리는 내내 90도로 바짝 세워졌다.

30분간의 질주 후에도 함가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다가왔다. 카펫처럼 부드러운 콧등에 손을 대자 손난로처럼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말은 사람보다 신체 온도가 약 2도 높다.

함가는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동탁, 여포, 관우, 조조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던 이른바 ‘적토마’ 품종이다. 공식적인 품종 이름은 ‘아할테케(Akhal-Teke)’로, 달릴 때 땀에서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빠르게 달려 ‘한혈마(汗血馬)’라고도 불린다.

함가는 승마장 한쪽에 있는 운동장의 가장 가장자리에서 달렸다. 창문의 크기만큼 들어오는 햇살이 함가가 달리는 길에 내려앉았다. 빛을 받으며 달리는 함가의 털은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함가의 목에 난 어두운 갈색의 털은 갈기처럼 휘날렸다.

이 승마장은 약 2644.63㎡(800평) 크기의 방목장으로 어린 말이나 기승 훈련을 받는 ‘육성마’들의 공간이었다. 말은 적어도 4살이 돼야 훈련할 수 있다. 드넓은 방목장은 어린 말을 노련한 말로 육성하는 공간인 셈이다. 가로세로 4m 남짓한 좁은 마방에서는 온전한 신체적·정신적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목장에서 100m 떨어진 곳에는 가로 20m, 세로 60m 크기의 운동장이 있다. 말들은 매일 운동장에서 최소 20분, 최대 1시간의 훈련을 받거나 달리기 연습을 한다. 매일 말의 컨디션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아할테케 품종의 말은 달리면 목에 난 고동색 털과 윤기나는 꼬리 털이 마구 흔들린다. 박윤슬 기자

함가는 163㎝의 훤칠한 키에 이마의 털이 짧아 눈매가 시원하게 드러났고, 다리와 말발굽은 마치 하얀 양말을 신은 듯 새하얗다. 쭉 뻗은 다리로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꼿꼿한 자세를 보일 때는 함가는 마치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또 햇빛을 받으면 금은빛 얇은 털의 윤기가 눈에 띄었다. 관리자는 “몸에 호피무늬 모양의 흰 얼룩이 있는데 이건 함가의 영양 상태가 최상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날씨는 승마장 기둥의 고드름도 녹지 않은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이곳에 있는 함가를 비롯한 15마리의 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목장을 분주하게 거닐었다. 말은 영하 30도까지 견딜 수 있어 사람에겐 매서운 한겨울도 이들에겐 따스한 봄날이다.

사람은 패딩을 껴입어도 떨리는 추위를 봄날처럼 즐기는 강인함뿐만 아니라 5㎝가 넘는 커다란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며 모래를 박차는 말발굽 소리에는, 도약을 위한 인내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말은 본래 뿔이 없는 피포식자다. 오직 체력 하나로 도망쳐야 하므로 말은 평소에 극한의 예민함을 유지하며 체력을 비축해둔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쏟아붓기 위해서다.

승마장 대표는 함가의 콧등을 쓰다듬으며 “말은 달려야 하는 상황을 대비하며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에는 우리 모두가 말처럼 비축한 힘을 바탕으로 힘차게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전했다.

아할테케 품종을 나타내는 ‘함가’의 말 여권(Equine Passport) 사진. 박윤슬 기자
‘투르크메니스탄’ 순수 혈통… 5000년간 타품종 교배 안해

■ ‘함가’의 품종 ‘아할테케’
2차대전 때 군마로도 활용

삼국지연의를 통해 잘 알려진 적토마(赤兎馬)의 모티브가 된 말은 아할테케(Akhal-Teke)로, 투르크메니스탄이 원산지다. 아할테케는 5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통 육종으로 탄생한 고대 혈통으로 다른 품종과 교배된 적이 없다.

아할테케는 투르크인들이 국가의 상징으로 여길 정도로 귀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아할테케의 순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대통령 직속 전담 부서를 만들어 관리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지구력이 좋고 빠른 아할테케를 군마로 활용했는데 전쟁으로 25필만 남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에게 아할테케를 선물하며 ‘아할테케 외교’를 하기도 한다.

삼국지연의 속 적토마는 타오르는 듯한 붉은 털로 유명하지만 사실 아할테케는 황금빛 털을 가지고 있다. 햇빛을 받으면 금색과 은색의 털이 섞여 반짝거린다. 갈기는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평을 얻었다. 키는 160㎝가 넘고 옆모습은 살짝 굴곡진 윤곽을 가지고 있다. 목이 길고 다리는 가늘지만 단단하다. 또 뛰어난 체력과 지능을 가져 세계적인 명마로 꼽힌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적토마는 기세와 능력이 ‘불처럼 강력한 말’로 묘사된다.

아할테케는 붉은 땀을 흘린다는 의미의 ‘한혈마(汗血馬)’라고도 불린다. 달리며 피가 섞인 땀을 흘릴 만큼 용맹하고 빠르게 질주한다는 말이다. 또 오랜 시간 물과 먹이가 없어도 버틸 수 있고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다. 매우 덥거나 추운 기후에도 적응할 수 있고 민첩한 반응 속도를 보여 주행에 최적화된 말이다. 그래서 아할테케는 고전적인 승마 경기는 물론이고 서커스 묘기 등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

본래 영리하고 충성심이 강한 덕에 아할테케는 삼국지연의뿐 아니라 고전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한서’에서 한 무제는 아할테케 품종인 한혈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대완을 정벌해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작품에서는 “말이 물에서 나와 천마지가를 지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아할테케가 지도자에게 전쟁과 권력의 정당성을 주는 소재로 활용된 것이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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