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 저축해 고작 200만원인데”…동기는 ‘집값’ 7억 올랐대

김현주 2026. 2. 1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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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사회초년생 시절 다짐을 기억하시나요? "월급의 70%는 무조건 저축한다." 그 성실한 약속을 지킨 분들이라면 지금쯤 뿌듯해야 정상일 겁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최근 한 달 새 30조원이나 증발했다.

10년 전 1000만원의 선택이 지금 당신의 자산 앞자리를 바꿨듯, 지금 당신의 여윳돈이 어디서 잠자고 있는지가 10년 뒤 당신의 노후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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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50% 뛸 때 예금 수익은 20%…숫자만 늘고 구매력은 쪼그라든 ‘가짜 자산’의 역설
코스피 5500·집값 3배 폭등서 소외된 ‘저축왕의 비명’…“원금 사수가 가장 위험했다”
이자로 생활비 감당 안 돼 은행서 30조원 증발…떠나는 은퇴자들 위험자산 ‘강제 이주’

10년 전, 사회초년생 시절 다짐을 기억하시나요? “월급의 70%는 무조건 저축한다.” 그 성실한 약속을 지킨 분들이라면 지금쯤 뿌듯해야 정상일 겁니다.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최근 물가 상승폭이 예금 금리를 상회하면서, 원금을 지키는 보수적인 저축 방식이 오히려 자산 가치를 갉아먹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Freepik 제공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VIP룸. 정기예금 만기를 앞둔 직장인 박모(44) 씨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원금은 지켰죠. 그런데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입사 동기 녀석은 그때 대출 끼고 주식 사서 집 넓혀 갔는데, 저는 이자 몇 푼 받고 좋아했으니까요.” 박 씨의 허탈함은 단순한 질투가 아닙니다. 지난 10년, 대한민국 자산 시장이 성실한 저축자들에게 내밀고 있는 냉혹한 청구서입니다.

◆복리의 마법? 물가라는 ‘괴물’

박 씨의 사례를 뜯어보자. 2016년 초 1000만원을 1년 만기 정기예금에 넣고, 매년 이자를 합쳐 재예치했다고 가정해보자. 세후 기준 10년 누적 수익률은 20% 남짓. 연평균 1.8% 수준이다.

문제는 물가다. 국가데이터처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외식 물가 상승세가 이어진 가운데, 짜장면 평균 가격도 50~60% 안팎 오르며 소비자 부담이 커졌다. 김밥 가격도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는 늘었지만, 돈의 실질 가치(구매력)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셈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이를 ‘실질 마이너스 금리’라 부르지만, 현실의 박 씨에게는 ‘가난해짐’을 뜻한다.

◆자산 시장은 다른 세계였다

같은 기간 ‘용기’를 낸 사람들의 성적표는 달랐다. 2016년 브렉시트 충격 속 장중 1900선까지 밀렸던 코스피는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그 사이 SK하이닉스는 3만원대 종목에서 수십만원대 시가총액 상위주로 도약했다. 1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시장의 판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벌어진 사다리: 서울 집값 vs 저축의 속도"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부동산 격차는 더 뼈아프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16년 5억원대에서 최근 12억원 안팎까지 뛰었다.

예금만 고집한 계층은 자산 증식의 사다리에서 철저히 소외된 ‘벼락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은행, 안전지대 아닌 ‘정거장’일 뿐

이제 은행 예금은 자산을 불리는 수단이 아닌, 잠시 돈을 맡겨두는 ‘파킹(Parking)’ 용도로 전락했다. 스마트한 돈은 이미 은행을 떠나고 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최근 한 달 새 30조원이나 증발했다. 이 돈은 증시 대기 자금이나 고수익 채권, 해외 주식으로 흘러들어갔다.

예금 수익률이 20%대에 머무는 동안 서울 아파트값과 주요 우량주 가격은 수배 이상 뛰어오르며 저축만 고집한 이들과 투자자 사이의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Freepik 제공
은행 관계자는 “은퇴하신 어르신들조차 ‘이자로는 생활비 감당이 안 된다’며 투자 상품을 묻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확실한 건 ‘무조건적인 저축=미덕’이라는 공식이 깨졌다는 사실이다. 10년 전 1000만원의 선택이 지금 당신의 자산 앞자리를 바꿨듯, 지금 당신의 여윳돈이 어디서 잠자고 있는지가 10년 뒤 당신의 노후를 결정할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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