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포장'으로 무어의 법칙 넘는다... 관건은 '하이브리드 본딩'

홍인택 2026. 2. 1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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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미세 설계 한계, '쌓기' 기술로 극복
'땜볼' 현 기술론 20단 이상 HBM 어려워
주석 없이 구리째 결합하는 '신기술' 부상
완벽한 평탄화, 미세먼지 '제로' 공정 필요
편집자주
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
SK하이닉스의 HBM4 실물. 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 증가한다.'

반도체 발전에 관한 가장 유명한 가설인 '무어의 법칙'이다. 인텔 설립자 고든 무어가 61년 전인 1965년 미국 잡지 '일렉트로닉스'에 쓴 기고문에 담았던 이 예측은 혁신을 거듭해온 반도체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생명력을 이어왔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무어의 법칙은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반도체 회로가 10억 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 단위로 작아지면서 '작게 만드는 기술'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모어 댄 무어(more than Moore)"라는 자신감 넘치는 말들이 나온다. 평면(2D)에서 더 미세하게 만들 수 없는 한계를 입체(3D) 설계로 극복하고, 이젠 무어의 법칙도 뛰어넘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과거엔 반도체 공정 중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포장(패키징)'이 이젠 자신감의 근거가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을 '잘 쌓는' 기술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첨단 메모리 시장을 선점했다. 칩에 수천 개의 미세 구멍을 뚫고, 이를 통해 전극을 연결하는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은 HBM 양산을 가능케 한 핵심이었다.


D램 붙이는 방식 바꿔야 메모리 성능 점프

2025년 10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 대전(SEDEX) 2025'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에 6세대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와 HBM3E 실물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높은 성능을 내기 위해 층수가 올라가고 구멍이 늘수록 HBM이 뜨거워진다는 데 있다. 6세대 HBM(HBM4)에선 최대 층수가 16단까지 높아졌고, 정보 입·출구 역할을 하는 관통 전극은 기존 1,024개에서 2,048개로 늘었다. 주승환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기가 통하며 열이 발생하는 난로가 2배 많아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안 그래도 뜨거운 데이터센터를 식히려고 물에 담그는 '액침 냉각'뿐 아니라, 해저·우주 데이터센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HBM의 발열 문제는 풀지 않을 수 없는 숙제다.

그래서 거론되는 대안이 '하이브리드 본딩'이다. 수직으로 쌓인 칩을 연결하는(본딩)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기존에는 위아래 칩의 관통 전극을 채운 구리 기둥 사이에 주석으로 된 땜볼을 넣고 열을 가해 붙였는데, 업계에선 이를 열압착(TC)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하이브리드 본딩은 칩의 구리 기둥 사이에 구리 패드를 넣어 붙인다. 열을 가해서 붙이는 건 같지만, '접착제'의 종류가 다르다.

효과는 간단명료하다.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HBM을 만들면 구리보다 저항이 높은 주석 땜볼이 없어지고, '구리 고속도로'가 개통돼 열 효율이 극대화한다. 12단 HBM을 기준으로 기존 TC 본딩 방식에선 층 사이마다 '구리-주석'의 이종접합면이 2개씩 생겨 모두 22개의 접합면이 생겼는데, 하이브리드 본딩에선 이게 사라진다. 유봉영 한양대 재료화학공학과 교수는 "하이브리드 본딩은 이종접합면 때문에 생기는 저항이 없어 데이터 전송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며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속도를 맞추려면 추후 하이브리드 본딩이 필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하이브리드 본딩 구현은 설비·인력에 달려

HBM은 세대를 거듭하고 있지만,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한 대량 양산 시간표는 늦춰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전자부품기술학회(ECTC)에 발표한 논문에서 "16단 이상 HBM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필수"라고 밝혔으나, 올해 1월 29일 실적 발표 행사 땐 "TC 기반 16적층 패키징 기술을 양산 가능한 수준으로 확보했다"(김재준 부사장)고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기존 TC 본딩 기반의 16단 적층 기술을 갖췄다. 이강욱 SK하이닉스 패키지개발담당 부사장은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전시회 '세미콘코리아2026' 당시 "20단 이상 HBM에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굉장히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결국 수율(생산량 중 정상 제품의 비율)이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공정 전반의 조건이 관건이다. 주석 땜볼 없이 직접 붙이는 만큼 ①접합부가 완벽하게 평탄해야 하며 ②칩과 칩 사이에 아주 미세한 먼지도 있어선 안 된다. 두 가지 모두 '후공정'으로 분류되는 패키징에서는 까다롭게 요구되지 않던 조건이다. 유 교수는 "장비도 있고 기술도 어느 정도 검증이 끝났지만, 두 조건에서 허용 한계가 굉장히 낮기 때문에 수율이 낮다"고 했다. 하이브리드 본딩을 거친 HBM의 수율은 기존 방식의 절반 이하로 알려져 있다.

결국 '20단 초고속 HBM'을 위해선 패키징 설비 환경 개선, 인력 투입 같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제언이다. 주 교수는 "전공정(웨이퍼 제조·산화·에칭 등 패키징 이전 단계) 수준의 새로운 환경을 도입해야 하고, 패키징 인력 재교육도 필요하다"고 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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