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고 켜켜이 쌓인 삶의 결…사진전 ‘여기저기, 경기’에 포착된 이야기

정자연 기자 2026. 2. 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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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그룹 다큐경기가 풀어낸 시선
경기도의 여기저기, 남부와 북부
13일까지 관람객 호응 얻으며 전시
박정민, 용인_신갈천(2021)


지역 소멸과 기록의 공백이 동시에 이야기되는 시대다. 개발과 재편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 변화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사람과 자연의 얼굴은 쉽게 남지 않는다. 지난 달 31일부터 수원 예술공간 아름(수원시 정조로 834 2층)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여기저기, 경기’ 다큐경기 사진전은 지역을 설명하거나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머무르고, 반복해서 바라본다. 이 사진들이 포착한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우리들의 삶의 결이다.

이번 사진전은 13명의 사진가가 10년간 경기지역을 기록해 온 프로젝트다. 전시장엔 ‘여기저기’, ‘남부’, ‘북부’로 세션이 나뉘어 경기도의 모습을 담아낸 32점의 사진이 내걸렸다. 하나의 사진은 저마다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며 경기도의 과거와 현재, 또 미래를 담아냈다. 다큐사진의 기록성을 넘어 ‘지금 여기’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녹아들었다.

‘여기저기’에선 경기도의 개발 풍경과 자연 풍경, 경계와 시간이 쌓인 골목 이야기와 사람 등이 조화롭게 서사를 풀어낸다.

박정민 작가는 경기도의 풍경을 개발된 곳과 개발될 곳으로 나눴다. “서울을 대신해 변화의 갈급증에 시달리는 곳, 생겨난 만큼 사라져간 것들을 기억할 여유조차 호사스런 이곳에서 나는 간신히 눈을 비비고 물끄러미 바라볼 마음을 먹는다”라고 밝힌 그의 말처럼 2013년 송산그린시티 건립예정지였던 시화호, 시화호 조력발전소와 해상 송전탑(2014) 등 경기 인더스트리아를 통해 얼룩덜룩한 풍경을 직조한다.

최우영, 포천(2024)


파주와 포천 등 경기북부지역에 방치됐거나 사라져 가는 풍경을 담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최우영 작가의 시선은 수도권이라는 이름으로 서울과 운명을 같이했으나 그림자를 짊어진 경기도로 향했다. 한땐 반짝였으나 인구 감소로 폐허처럼 녹슨 겉모습만 남아버린 모텔, 뼈대만 남은 주유소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 주변 등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로는 담아낼 수 없는 혼돈의 풍경 경기도는 그야말로 모호하다.

또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를 가로지르는 구도심의 풍경과 사람 등을 담아낸 김윤섭 작가와 경기도의 수원, 김포, 시흥 등 경기도의 물길을 담아낸 박창환 작가, 자연과 개발 사이의 경계를 담아낸 박상문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남부’에선 박김형준, 남윤중, 봉재석, 김홍석, 권순섭 작가의 렌즈를 통해 김포와 부천 대장지구, 수원 일월호수공원, 시흥의 자연과 개발의 풍경이 포착됐다. 생동감 넘치면서도 오늘날의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물음들이 한가득이다.

김홍석, 부천 대장지구(2024)


현대와 미래의 욕망으로 동반된 개발 풍경이 남부의 주요한 화두라면, ‘북부’에선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야깃거리가 사진에 담겼다.

그동안 사람에 집중해 왔던 유별남 작가의 렌즈는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으로 향해있다. 도로를 달리는 군용차량과 곳곳에 남은 전쟁의 상징물들, 왕래는 줄어들고 지나가는 이들만 늘어나는 혹은 달려서 나부끼는 깃발은 사라지고 불지 않는 바람만 기다리는 곳. 그래서 뜬금없어 보이는 과거와 현재의 들어맞지 않는 표식들이 즐비한 이 곳을 두고 그는 ‘궁여지책’이라 이름을 붙였다.

홍채원, 파주 캠프 그리브스(2019)


홍채원 작가의 사진에선 DMZ 인근에 남아 있는 옛 미군 부대 캠프 그리브스를 마주하게 된다. 한동안 방치되며 ‘시간이 멈춘 장소’로 남았으나 이러한 전쟁의 기억 위에 예술과 일상이 더해진 이 곳. 아픔과 치유, 사라짐과 남겨짐,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공존하는 장소로 변화한 파주 캠프 그리브스를 통해 작가와 장소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긴장, 평화와 폭력이 겹쳐지는 경계에서 멈추지 않은 현재를 조용히 응시하며 사유하는 작품 네 점을 만날 수 있다.

박상환 작가는 한국전쟁과 미둔기지 주둔이 바꿔놓은 작은 마을 동두천의 풍경을 채워나갔다. 변화를 도모하는 동두천, 사라져 가는 것들의 흔적을 쫓고 새로이 생겨나는 존재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평화로와 어수로, 동광로와 중앙로 등에서 다양하게 담겼다.

15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구성된 ‘다큐경기’는 2015년 11월 수원에서 결성된 이후, 지난 10년간 경기도 곳곳을 함께 기록해왔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기록성과 함께 사회적, 문화적, 미학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 이들의 작업은 13일까지 만날 수 있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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