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설·우리 명절…차례상도 세대교체

서의수 기자 2026. 2. 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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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구 중 한 가구 “차례 안 지내” 10년새 22% 늘어
제사용품 앱으로 주문…명절 문화 ‘의무→선택’ 변화
▲ 설연휴를 앞둔 12일 대구 북구 대원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를 하고 있다. 권남인 기자 kni@kyongbuk.com

한때 명절은 온 가족이 고향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는 '의례의 시간'으로 기억됐다. 몸은 고됐지만 가족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찾던 날이었다. 그러나 최근 명절은 이동과 준비로 분주한 날이 아니라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연휴로 인식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고속도로 정체는 예전만 못하고, 상차림 역시 간소해지는 등 명절 풍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명절 문화의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2025년 추석에 차례상을 준비하겠다는 가구는 40.4%로, 2016년 74.4%와 비교해 34.0%포인트 감소했다. 농촌진흥청의 '설 명절 농식품 소비행태 조사'에서도 설에 차례를 지내겠다는 가구는 48.5%로 나타나 2014년 71.0% 대비 22.5%포인트 줄었다. 명절 차례가 더 이상 모든 가정의 '의무'가 아닌 선택적 문화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차례를 지내는 가정에서도 준비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차례 준비 가구 가운데 '전통을 유지하되 간소화한다'는 응답은 58.4%로 가장 높았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한다'는 응답도 14.9%를 차지했다. 농촌진흥청 조사에서는 차례 음식을 '일부 또는 전부 구매한다'는 응답이 57.7%로 나타나 직접 조리 중심의 명절 준비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과 나물, 잡채, 갈비 등 주요 제사 음식은 완제품이나 반조리 식품을 구매하거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늘면서 명절 상차림 준비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제수용품 구성 역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차례상에 오르던 사과와 배, 한과 중심의 상차림 대신 가족이 실제로 소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케이크나 디저트를 차례상에 올리거나 전통주 대신 와인을 준비하는 등 실용성을 중시한 상차림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는 추석 차례상에 수입 과일을 올린다는 응답이 34.9%로 2016년 23.8% 대비 증가했다. 바나나와 오렌지 등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과일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명절을 보내는 방식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집에서 휴식 및 여가 생활'을 계획한다는 응답은 34.9%로 '본가·친인척 방문' 다음으로 높았다. 특히 1인 가구는 '집에서 휴식'을 선택한 비중이 52.8%로 과반을 넘었다. 명절을 이동 중심이 아닌 휴식 중심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여행과 개인 일정 중심의 명절 계획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같은 변화는 시민들의 체감에서도 나타난다. 경북 경주에 사는 이명희(68·여) 씨는 "예전처럼 자녀들이 모두 고향에 모이기는 쉽지 않다"며 "차례는 간단히 지내더라도 영상통화로 안부를 나누고 명절 이후 따로 시간을 맞춰 만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몸은 편해졌지만 명절이 조금 조용해진 느낌도 있다"고 덧붙였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 맞벌이 가정 확대 등 사회 구조 변화 속에서 명절 준비에 투입할 시간과 인력이 줄어들면서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외부 서비스를 활용하는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역시 차례 음식 품목을 9가지 내외로 줄이고 진설 방식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는 권고안을 제시하는 등 전통을 유지하되 부담을 줄이는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명절 상차림과 소비 구조 역시 실용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통시장과 유통업계에서는 제수용 재료 구매가 감소하는 대신 간편식과 완제품 판매가 늘어나고, 일부 가정에서는 차례상 준비를 위해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명절의 '가벼움'은 세대별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자녀 세대에게는 휴식과 자율성이 강조된 변화지만, 부모 세대에게는 가족이 모이지 않는 명절이 정서적 공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명절 노동은 줄었지만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의 방식은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