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비극에 울컥, 액션 멜로에 두근…둘 다 봐야지[설, 뭐 볼까]
지난해 한국 영화의 부진을 뒤로하고 영화계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설 대목을 노리고 한국 영화 기대작 두 편이 연이어 개봉하면서다. 국내 배급사들이 올해 개봉 편수를 확 줄인 만큼 극장가에서는 매 편 흥행이 더 간절해졌다. 설 연휴는 한국 영화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고전 명작을 재해석한 작품, 공상과학(SF)적 상상을 가미한 스릴러물 등 개성이 확실한 외화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뚜렷한 양강 <왕과 사는 남자> <휴민트>
명실상부 2파전이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 두 작품 중 무엇을 볼까 고민하는 관객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계유정난 후 노산군으로 강봉된 조선조 6대 왕 단종(박지훈)이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로 유배를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16세의 어린 상왕 이홍위가 귀양지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 등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보냈을 마지막 4개월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배우 박지훈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우수에 찬 눈빛과 위엄 있는 목소리로 그는 단종이 어리기만 한 희생양이 아니라 일국의 왕으로 길러진 자였음을 곱씹어보게 한다.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누적 관객 110만명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와 일주일 격차를 두고 개봉한 <휴민트>는 류승완표 첩보 액션물이다. 배우 조인성·박정민·신세경·박해준 등 호감형 배우들로 채워진 캐스팅만큼 그 만듦새가 탄탄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과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은 각자의 이유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를 위기에서 구해내려 애쓴다. 호쾌하면서도 독창적인 류승완표 액션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된다. 박정민의 멜로 눈빛을 엿볼 수 있는 건 덤이다.
<주토피아 2>와 <아바타: 불과 재> 등 외화가 극장가를 양분하던 연말을 지나 한국 영화가 연초부터 화제작으로 꼽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거인> 김태용 감독이 배우 최우식과 다시 합을 맞춘 영화 <넘버원>도 지난 11일 개봉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만약에 우리>(김도영 감독)와 <신의악단>(김형협 감독) 등도 장기 상영하며 꾸준히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다. 류 감독은 지난 4일 <휴민트> 언론 시사 이후 “연휴에 한국 영화들을 다 예쁘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고전 명작을 재해석하다
외화 중에는 세계문학전집에서 봤던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이 눈에 띈다. 먼저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원작을 재해석한 <폭풍의 언덕>이 11일 개봉했다. 데뷔작 <프라미싱 영 우먼>(2021)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에머럴드 피넬 감독이 연출하고, 할리우드 톱스타 마고 로비가 제작자 겸 주연 캐시 역으로 나섰다. 히스클리프 역은 제이컵 엘로디가 맡았다. 이들이 재창조한 <폭풍의 언덕>은 정념이 들끓는 듯한 격정 로맨스물이다. 15세 이상 관람가이지만 애정 신의 수위가 높다.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의 맛이라 할 수 있다.
13일에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개봉한다. 마티유 들라포르트·알렉상드르 드 라 파텔리에르 감독은 원서로 4000쪽에 달하는 프랑스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대하소설을 충실히 화면에 옮겼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힌 ‘에드몽 당테스’(피에르 니네이)가 탈옥 후 자신의 삶을 파괴한 이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얘기다. 그동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중 가장 높은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한다.

독특한 콘셉트의 외화들
호러물의 거장 샘 레이미 감독의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알맞은 영화다. 직장상사 브래들리(딜런 오브라이언)와 함께 무인도에 갇힌 직장인 린다(레이철 매캐덤스)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기를 그린다. 장르는 호러이지만, 직장에서와 달리 부하직원 린다가 관계의 주도권을 거머쥐는 여정이 통쾌함을 선사한다.
지난 4일 개봉한 <노 머시: 90분>은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SF 스릴러다. 판사, 배심원, 사형 집행인이 모두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된 2029년을 배경으로 한다. 아내 살해 혐의로 법정 의자에 묶인 채 눈을 뜨게 된 형사 레이븐(크리스 프랫)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다룬다. 90분 이내에 자신이 아내를 죽이지 않았음을 밝히지 못하면 사형이 집행된다는 설정이 극의 서스펜스를 만든다.
<노 머시: 90분>과 같은 날 개봉한 <영원>도 ‘사후세계 환승역’을 무대로 한 독특한 설정의 영화다. 조앤(엘리자베스 올슨)은 죽은 뒤 도착한 휴게소에서 “당신과 영원의 시간을 함께할 동반자를 고르라”는 미션을 받는다. 65년을 함께했던 남편 래리(마일스 텔러)를 선택하면 될 것 같지만, 문제가 간단치 않다. 래리를 만나기 전 사별한 전남편 루크(캘럼 터너)도 60여년 동안 휴게소에서 조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엉뚱하면서도 감동적인 사후세계 삼각관계 로맨스가 펼쳐진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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