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행복한 설] 경기만의 맛, 설레지 아니한가

최준희 기자 2026. 2. 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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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명절 먹거리 - 경기 맛집

'수원 갈비·통닭' 화성~행궁동 통닭골목 코스 추천
'의정부 부대찌개' 한국전쟁 격변기 담긴 걸쭉한 맛

'평택 송탄 부대찌개' 보다 깔끔한 국물을 원한다면
'용인 백암순대' 머리고기 수육 곁들여 든든한 한 끼

'포천 이동갈비' 특제 양념 맛·참나무 숯불 향 '조화'
'대부·제부도 바지락칼국수' 서해 갯벌 숨 쉬는 풍미

'안성 국밥' 기름기 적은 편…건더기보다 국물로 승부
'여주·이천 쌀밥' 임금 수라상 '명불허전' 고품격 한식

지역의 세월과 주민의 손맛이 어우러진 향토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경기도는 세련된 조리법 대신 땅의 기운과 역사가 깃든 '경기만의 맛'을 지켜온 명소들을 조명한다.

경기도에는 오랜 세월 동안 지역의 생활문화와 함께 성장하며 '경기도만의 맛'을 지켜온 음식들이 곳곳에 살아 있다.

명절 연휴 복잡한 도로를 뚫고 멀리 떠나는 대신, 가까운 지역의 음식에서 골목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여행 이상의 여운을 느낄 수 있다.
▲ 지난해 열린 '수원 통닭거리축제' 모습 / 사진제공=수원특례시

▲수원 통닭골목과 갈비, 도시의 품격을 담은 맛

수원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은 단연 갈비와 통닭이다. 예부터 갈비는 가족의 기념일을 책임지는 특별한 음식으로, 통닭은 일상 속 위로가 필요한 순간 자연스레 떠오르는 메뉴였다.

세계유산 수원화성을 둘러본 뒤 행궁동 통닭골목에서 갓 튀긴 한 마리 통닭을 찢어 먹는 재미는 남녀노소가 모두 아는 수원의 즐거움이다.

통닭골목을 걷다 보면 시대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래된 간판과 새로운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고, 가게마다 다른 튀김옷과 기름의 향, 양념 맛이 골목 길 위에서 모래알처럼 섬세한 차이를 만든다. 한 집에서 먹었다고 통닭골목을 다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수원 갈비 역시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

정조대왕의 화성 행차 기록에서 그 기원을 찾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수원의 갈비 문화는 도시의 역사와 품격이 담긴 상징처럼 자리해 왔다.
▲ 한국·미국 문화가 뒤섞인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 사진=SNS 캡쳐

▲한국·미국 문화가 뒤섞인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부대찌개는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음식이지만, 그 탄생 배경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는 한국전쟁이라는 격변기를 지나오며 형성된 독특한 음식 문화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식량이 귀하던 시절,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가 한국식 양념과 만나면서 만들어진 이 음식은 시대의 아픔과 생존의 지혜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의정부식 부대찌개는 오래 끓여 깊어진 육수에 햄·소시지·김치·고추장이 어우러져 묵직한 풍미를 낸다. 세월이 흐르며 라면사리, 떡, 치즈 등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지금은 세대와 국적을 넘어 사랑받는 음식으로 완전히 정착했다. 골목의 식당마다 양념과 국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이 미묘한 차이가 단골을 만들고, 골목의 세월을 지켜온 힘이 된다.
▲ 전쟁이 만든 독특한 미식문화, 송탄 국제시장 / 사진=SNS 캡쳐

▲전쟁이 만든 독특한 미식문화, 송탄 국제시장

평택 송탄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기지와 함께 형성된 '문화적 접점' 같은 공간이다. 의정부식보다 햄과 소시지 비중이 높은 송탄 부대찌개는 국물이 보다 담백해 "송탄식이 더 깔끔하다"는 이들도 많다.

여기에 수제 햄버거, 핫도그, 치즈스테이크, 브런치 같은 미국식 메뉴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시장 골목에서는 한국식 분식집 앞을 지나면 바로 옆에 미국식 다이너가 등장하고, 외국인과 지역 주민이 섞여 식사하는 광경이 자연스럽다. 전쟁의 흔적이 시간이 지나 삶의 일부로 스며들며 만들어낸 독특한 미식 문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용인 백암순대 /사진=SNS 캡쳐

▲용인 백암순대, 장터에서 꽃핀 소박한 맛

용인 백암순대는 백암장터의 분주한 활기 속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장날이면 국밥을 팔던 상인들이 피 대신 채소와 두부를 넉넉히 넣어 속을 만든 흔적이 지금의 백암순대를 완성했다.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맛 덕분에 남녀노소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사골 육수에 백암순대를 듬뿍 넣고 끓여낸 순대국은 구수한 풍미가 일품이다.

백암순대거리에서는 순대국은 물론 순대정식, 머리고기 수육 등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손맛을 뽐낸다.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장터의 인심과 전통이 담긴 "사람 냄새 나는 음식"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 질 좋은 한우가 만든 포천 이동갈비 /사진=유튜브 캡쳐

▲질 좋은 한우가 만든 포천 이동갈비

포천시 이동면에 있는 이동갈비마을은 1960년대 이동갈비집과 느타리갈비집이 영업을 시작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천이동갈비는 신선한 원재료에 정성이 어우러진 음식이다. 우선 고기는 포천 지역의 질 좋은 한우를 사용하고 화학조미료 대신 배·마늘·양파·간장 등으로 특제 양념을 만들어 고기를 하룻밤 재워둔다. 재워둔 고기는 참나무 숯불에 구워내기에 맛과 향 모두 다른 지역에 느낄 수 없는 포천이동갈비만의 맛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우의 높은 원가와 물량 부족으로 수입 소고기를 사용한 것이 일반화됐지만 포천이동갈비만의 특유의 맛은 변하지 않고 있다.
▲ 갯벌이 만든 따뜻한 한 그릇, 대부·제부도 바지락 칼국수. /사진=SNS 갈무리

▲갯벌이 만든 따뜻한 한 그릇, 대부도·제부도 바지락칼국수

지금은 다리로 연결돼 있지만 안산시 대부도와 화성시 제부도는 서해의 넓은 갯벌을 품은 섬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은 바지락칼국수일 거다. 갯벌에서 갓 캐낸 바지락을 듬뿍 넣어 끓여낸 칼국수는 시원한 국물 맛이 매력적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바지락을 비롯한 다양한 조개를 채취했던 곳이다. 어민들이 직접 채취한 바지락을 이용해 국물 요리를 만들어 먹던 전통이 자연스럽게 바지락 칼국수 명소로 이어졌다. 2000년대 이후 관광객 증가와 함께 해안도로 주변으로 식당 밀집 현상이 두드러졌고, 지금은 지역 대표 요리로 자리 잡았다.

바지락칼국수의 매력은 국물의 깊이에서 드러난다. 바지락에서 우러나온 시원한 감칠맛이 국물 전체를 채우고, 칼국수 면은 쫄깃하면서도 담백해 바지락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다. 여기에 해물파전이나 조개탕을 곁들이면 서해 갯벌의 맛을 한 상 가득 즐길 수 있다.
▲ 경부고속도로 안성(부산방향)휴게소.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서울경기본부

▲장터 문화가 빚은 생활의 맛, 안성국밥

안성국밥은 오랜 장터 문화와 함께 성장한 대표 향토 음식이다. 안성장은 예로부터 상권이 활발해 조선시대에는 3대 장터 중 하나로 꼽혔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과 농민들이 빠르고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했던 음식이 바로 안성국밥이다.

소고기와 배추, 우거지, 곤드레나물 등을 넣고 푹 끓여낸 국밥이 장터 중심으로 퍼졌고, 값이 합리적이면서도 속을 편안하게 채워줘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다른 지역 국밥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며, 선지나 내장 대신 국물 맛에 집중한 것이 특징이다.

안성국밥은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장터의 시간과 사람들의 손맛이 어우러져서 만든 생활의 맛이다.
▲ 지난해 열린 쌀문화축제 대표 프로그램 '2000명 2000원 가마솥밥'. /사진제공=이천시

▲임금님 밥상으로 이어진 맛의 전통, 여주·이천 쌀밥

여주시와 이천시의 쌀은 예로부터 맛이 좋기로 유명했고, 조선시대에는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는 쌀로 명성을 알렸다. 두 지역은 남한강 수계가 만든 비옥한 토양과 충분한 일조량, 넉넉한 수자원 등 벼농사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췄다.

두 지역의 쌀밥은 단순히 '밥맛이 좋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갓 지은 쌀밥은 윤기가 흐르고, 한 숟가락 뜨면 고슬고슬하면서도 찰기가 흐른다. 또 쌀을 씹으면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두 지역에서 생산한 고품질 쌀로 만든 밥에 다양한 사찰식 반찬, 제철 나물 반찬, 집에서 직접 담근 장으로 만든 된장찌개와 청국장, 생선구이로 구성된 식단은 화려하지 않지만, 건강한 맛을 느끼게 한다.

최근에는 농가와 식당이 직거래로 쌀 품질을 관리하며 '밥맛 좋은 여행지'라는 인식이 확고해지고 있다.

/김종화·최준희 기자 jhkim@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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