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신공항 백지화 촉구 천막농성 어느덧 4년…“생명과 사랑, 저항과 분노 포기하지 않겠다”

입춘이 지났지만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북지방환경청 앞마당의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지난 6일 오후, 파란 천막 옆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은 스피커에서 반복 재생되는 소리는 이 자리가 단순한 농성장이 아니라 법원의 제동에도 다시 속도를 내는 행정에 맞서 사라져가는 생명이 자신을 증언하는 ‘증언대’임을 알리고 있었다.
이날은 새만금신공항 백지화를 요구하며 이곳을 지킨 지 햇수로 4년, 1462일째 되는 날이었다.
파란 천막의 시작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항공청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접수하자 활동가들은 세종시 국토부·환경부 청사 앞 농성장을 전북지방환경청 앞으로 옮겼다. 행정 절차의 최종 관문 앞에서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판단이었다. 2022년 2월 6일부터 지금까지 수백명의 시민이 교대로 자리를 지키며 네 번의 사계를 통과했다. 바닥 매트는 해어졌고 추위를 막으려 겹겹이 둘러친 천막 안에는 생활의 흔적과 결의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2016년 제5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반영된 뒤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에 포함되며 급물살을 탔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경제성 논란은 제도적으로 비켜갔고, 사업은 속도를 앞세운 채 본격화했다.
국토부 계획을 보면 수라갯벌 위에는 폭 45m, 길이 2,500m의 활주로 1개와 주기장 5개를 갖춘 공항이 들어선다. 면적은 3만4596㎡로 축구장 약 5개 규모다. 계획이 현실화하면 만경수역의 마지막 갯벌은 철새가 내려앉을 수 없는 공간으로 바뀌고 그 자리를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덮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은 이 질주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철새 이동 경로와 조류충돌 위험, 생태계 훼손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와 법조계에서는 대규모 조류 서식지에 공항 건설을 강행했다가 참사로 이어진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의 경고를 사법부가 공식 수용한 첫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국토부와 전북도는 판결 직후 “기술적 보완이 가능하다”며 즉각 항소했다. 법원이 찍은 멈춤의 ‘쉼표’ 위에 행정은 다시 ‘속도’를 이어 썼다. 농성장의 시간은 그렇게 멈추지 못한 채 다시 현재형으로 돌아왔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공동단장은 “판결이 나왔을 때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고 느꼈지만 항소 소식을 듣는 순간 이 천막이 아직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문화제에 앞서 풍물패가 길을 열자 농성장은 잠시 마당굿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유기만 수라갯벌 풍물패 ‘팽수’의 상쇠는 “문 여소, 문 여소 새만금 수문 여소. 신공항 백지화, 갯벌을 살리자”를 외치며 전북환경청 일대를 돌았다. 닫힌 수문과 행정을 열라는 주문처럼 꽹과리 소리는 겨울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천막 앞에는 따뜻한 차와 김밥, 떡, 부침개 등이 놓였다. 전북은 물론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반대해온 부산 활동가들과 대전·세종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 50여 명이 모여 음식을 나눴다.
김지은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이곳을 “시간이 쌓인 자리”라고 표현했다. 그는 뜨거운 여름 아스팔트 열기와 겨울 칼바람을 견디는 동안 현수막이 칼로 난도질당하거나 동료의 헌신이 ‘공무원 감금’으로 호도돼 고발당했던 참담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김 위원장은 이번 항소 결정에 대해 “정당화될 수 없는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새만금신공항의 조류충돌 위험도는 실제 참사가 발생했던 무안공항보다 650배나 높다”며 “이 수치를 알고도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매일 대형 사고의 가능성을 방치하는 도박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공항 예정지가 미군 기지와 공역이 90% 이상 중첩된다는 점을 짚으며 “전북 경제의 희망으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미군 군산공항의 제2활주로를 우리 혈세로 닦아주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순서는 ‘새소리 경연대회’였다. 참가자들은 부엉이와 병아리, 왜가리와 저어새의 울음소리를 번갈아 흉내 냈다. 서툰 소리에도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고 농성장은 잠시 생명의 합창으로 채워졌다.
현장을 지킨 시민들은 결의문을 통해 “우리는 생명과 사랑, 저항과 분노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파란 천막 옆에는 ‘공항 말고 갯벌, 전쟁 말고 평화, 자본 말고 생명’이라고 적힌 손팻말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자리를 지켰다. 전북지방환경청 앞에서는 그렇게 또 하루가 1462일째의 기록으로 쌓이고 있었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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