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은 속된 무속 행위 아니라 조상들 삶 자체였죠”

정대하 기자 2026. 2. 1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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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전남 무형유산 능주씻김굿 조웅석 보유자

지난 9일 광주 굿당 보성사에서 전남도 지정 무형유산 화순 능주 씻김굿 보유자 조웅석씨가 굿과 얽힌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정대하 기자

도시엔 여전히 굿판이 살아 있었다. 지난 9일 오후 1시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보성사 2호실을 찾아갔다. 전남도 무형유산 화순 능주씻김굿 보유자 조웅석(62)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3층 규모인 보성사는 8곳에서 굿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굿당’이다. 아파트에서 굿을 하기가 불편해지면서, 광주와 인근 담양·화순에 9개의 굿당이 생겼다. 방 전면 벽에 무신도가 붙어 있고, 제단 옆엔 성주신과 조왕신, 문전대감을 위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날 굿은 아파트로 이사한 30대 부부가 강신무 보살에게 의뢰한 것이다. 강신무 보살은 “아파트에서 굿을 하면 민원이 제기되니까 사람들이 굿당에서 굿을 한다”고 귀띔했다. 강신무 굿은 세습무가 하는 굿과는 진행 방식이 다르다. 이날 조씨는 법사로 참여해 산신을 축원하고 성조경과 조왕경 등 경문을 읽었고, 보살은 고를 풀고 액을 막는 의례를 이어갔다. 굿은 1시간40분 만에 끝났다.

지난 9일 광주시 동구 소태동 보성사 2호실에서 강신무 보살이 굿을 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해 7월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능주 씻김굿은 조씨 집안에서 7대째 잇고 있는 무형유산이다. 능주 삼현육각의 마지막 명인이었던 고 조계남 선생의 막내아들인 조씨는 무녀였던 어머니 고 박정녀 선생한테 굿을 배웠다. 조씨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굿 사설을 듣고 자랐다”고 회고했다. 굿판엔 여무가 서지만, 조씨는 남무로는 드물게 직접 굿 의례를 집전한다.

그의 아버지는 세습 무계 예인 집안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컸던 예인이었다. 조상 산소에 가 술을 올릴 때마다 “우리에게 좋은 (음악적인) 기술을 줘서 감사하다”고 했을 정도였다. “당골과 무당이라는 말만 나와도 기겁을 하며 집안 내력을 숨기던” 일부 세습무 출신 국악인들과 생각이 달랐다. 4남1녀는 모두 아버지한테 전통 음악을 배웠다. 4남1녀 중 막내였던 조씨 역시 10살 무렵까지 장단과 소리, 구음, 춤을 익혔다.

2015년 전남 진도 국립국악원에서 어머니 고 박정녀 선생과 조웅석씨가 능주굿을 하고 있다. 능주씻김굿보존회 제공

조씨는 피리·대금·아쟁·장구 등 악기를 잘 다루고 목청도 좋다. 그가 굿판에 처음 섰던 것은 17살 때였다. 화순 유천리 한 무녀가 어머니를 굿판에 초청하려고 했지만, 부재 중이었다. 조씨는 장난기가 발동해 “굿, 제가 할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니가?”하던 무녀가 급했는지 택시를 보냈다. 당산나무 아래 집에서 4∼5시간 굿을 했다. “굿을 보면서 자고, 자다가 굿을 봤던” 그는 처음 굿판에 서 행화(일당)로 38만원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지정…7대째 세습무계 10살 때부터 장단과 소리, 춤 익혀
미술 전공하고 대중음악 음반도 내
능주 씻김굿 주제로 석사 학위 받아

“능주 신청과 소리공부 터 복원해
민속음악 본산이란 점 알렸으면”

하지만 조씨도 굿을 밀쳐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당골네”라고 놀리던 친구를 두들겨 패 코피를 터뜨린 적도 있었다. “큰아버지들과 사촌 형들은 ‘양반질’을 하려고 고향을 떠났”고 제사 문제로 아버지와 갈등을 빚었다. 이후 아버지는 학자들이 찾아와도 “굿을 안 한다”고 감췄다. 조씨는 아버지가 국악과 진학을 권유했지만 마다하고 미대에 진학했다. 20대 땐 국악은 싫었지만, 대중가요 등 폭넓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같은 날’, ‘따오기’, ‘때늦은 후회’ 등의 음반도 냈다.

전남도 지정 무형유산 능주씻김굿 보유자 조웅석씨가 굿 의례를 주재하고 있다. 능주씻김굿보존회 제공

굿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은 1987년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생전 직접 젓대(대금)를 깎아 건네며 “적적할 때 불어라. 그 안에 신선의 세계가 있다”고 했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아렸다. 2001년 무렵부터 전업으로 굿을 했던 그는 2010년 추계예술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조씨는 “굿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능주굿을 잇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조씨는 능주 씻김굿을 주제로 논문을 써 석사학위도 받았다. 능주 씻김굿은 12거리로 본향거리와 혼맞이 거리가 따로 있는 게 진도·해남 등 다른 지역 굿과 다르다. 요즘은 굿 의뢰인들이 긴 굿을 선호하지 않는다. 조씨는 “요즘은 굿을 짤막하게 해달라고 하시는데, 끊어서 하면 구성이 안 맞는다”며 “그래서 전통 능주굿은 한 달에 서너번 정도 의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장구를 치고 있는 조웅석씨의 아버지 고 조계남 선생(오른쪽). 능주씻김굿보존회 제공

조씨의 꿈은 능주 신청(세습 무계 예인들 단체)의 복원이다. 조씨의 할아버지 조상엽 선생은 세습 무계 예인들의 예능교육을 담당했던 능주 신청(능주면 잠정리 228번지)의 ‘마지막 대방(최고 책임자)’이었다. 지금 능주 신청은 사라졌고, 건물이 들어서 있다. 조씨는 “능주 신청과 소리 공부하는 곳이 복원돼 능주가 우리나라 민속음악의 본산이라는 것이 알려지길 바란다”며 “굿의 대중화 활동을 통해 굿이 속된 무속 행위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 자체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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