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이후의 삶”을 국가 계획에 넣다…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 전면 해부
경도인지장애 심층관리·공적 신탁 도입
치매 공생과 권리의 글로벌 흐름 속 한국형 실행안 제시
정부가 2026~2030년을 적용 기간으로 하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이하 제5차 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제1~4차 계획과 치매국가책임제를 통해 구축해 온 국가 치매관리 체계를 전제로, 수요 기반 맞춤형 서비스 고도화와 '치매가 있어도 일상을 누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제5차 계획은 5대 추진전략, 10대 주요과제, 73개 세부과제로 구성됐다. 대표 지표로는 ▲지역사회 치매관리율(2025년 76.4% → 2030년 84.4%)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2026년 시범 → 2028년 본사업) ▲치매관리주치의(2027년까지 시범사업 → 2028년 본사업 전환 및 전국 확대)를 제시했다.
정부는 이번 계획의 방향을 "인프라 확충 및 경제적 부담 경감 중심에서 수요 기반 맞춤형 서비스 고도화와 치매안심 기본사회 구현으로 전환"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존의 인프라 중심 접근에서 서비스 질과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4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의 축적
먼저 그동안의 치매관리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제1차(2008~2012)는 국가 치매관리 체계를 형성하고 조기검진과 치료비 지원을 시작한 시기였다.
제2차(2013~2015)는 조기 발견과 돌봄 인프라 확충, 장기요양 5등급 신설 등 제도 기반을 확대했다.
제3차(2016~2020)는 지역사회 중심 관리와 가족 지원을 강화했다.
제4차(2021~2025)는 치매국가책임제를 고도화하고 전국 모든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했다.
제5차(2026~2030)는 수요자 맞춤형 고도화와 권리 보장을 전면에 둔다.
제1·2차: 국가 책임 체계의 출발과 초기 한계
초기 계획은 치매를 개인과 가족의 부담 문제에서 국가 정책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기검진 확대, 상담·등록관리 체계 구축, 보건소 중심 사업 확대가 핵심이었다. 치매는 공공보건 체계 안에서 관리해야 할 질환으로 정책 영역에 편입됐다.
다만 이 시기 사업은 보건소 중심의 선별검사와 등록 관리에 무게가 실리면서, 진단 이후의 지속적 관리와 돌봄 연계 체계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서비스의 질적 표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지역별 역량 차이도 존재했다. 정책의 출발점으로서 의미는 컸지만, 관리 체계의 연속성과 통합성은 과제로 남았다.
제3차: 지역사회 중심 전환과 연계의 과제
제3차 계획은 지역사회 기반 관리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의료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돌봄·복지 연계를 강화하고, 지역 거주 유지가 정책 목표로 구체화됐다.
그러나 실제 집행 과정에서는 의료·요양·복지 서비스 간 연계가 구조적으로 정교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역 단위 사업은 확대됐지만, 기관 간 정보 공유와 책임 조정 체계는 충분히 정착되지 못했다. 지역사회 중심이라는 방향은 제시됐으나, 통합 관리 모델은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제4차와 치매국가책임제: 전국 인프라 구축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 이후 제4차 계획은 전국 모든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했다. 장기요양등급 완화, 의료비 부담 경감, 공공후견제도 도입 등 경제적·제도적 장치가 확대됐다.
이 시기 전국 단위 인프라는 구축됐으나, 인력 부족, 센터 기능 편차, 지역 간 서비스 격차, 의료·요양·복지 간 연계 미흡 등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물리적 기반은 갖춰졌지만, 체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작동하는지는 또 다른 과제로 남았다.
제5차 계획의 핵심 변화
치매안심센터, '설치'에서 '기능 고도화'로
전국 설치를 마친 치매안심센터는 제5차 계획에서 기능 고도화 대상이 됐다. 지역 특성에 맞게 유형화하고 서비스 질을 개선한다. 특히 환자와 가족의 거주지가 서로 다른 경우 발생했던 이용 제약을 개선하기 위해 광역 연결망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행정구역 단위 운영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조치다.
'치매안심마을' 사업도 단순 지정 단계를 넘어 '우수안심마을 인증' 체계로 고도화하고, 치매안심센터의 서비스 질 관리와 성과 평가 체계도 함께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도시형·농촌형 등 지역 특성에 맞게 유형화해 확산한다는 방향을 담았다.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에서 본사업으로
치매관리주치의 제도는 2027년까지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2028년 본사업으로 전환하며 전국으로 확대한다. 제5차 계획은 지역사회 치매관리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치매관리주치의 제도를 제시했다. 치매안심센터와 지역 의료기관 간 연계를 강화하고, 진단 이후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범사업 단계에서는 표준화된 관리 프로토콜을 마련하고 운영 모델을 점검한 뒤, 본사업 단계에서 전국 단위로 적용한다는 일정이다. 이는 일회성 진단이나 단기 개입이 아니라, 의료 영역에서 장기적 관리 체계를 제도화하는 단계로 정리된다.
경도인지장애(MCI) 심층 관리
기존 치매안심센터는 의료기관용 검사도구(CERAD-K, SNSB 등)를 활용하면서 검사 시간이 길고 대기 및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한계가 있었다. 계획은 이러한 구조가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의 변별력 확보와 조기 개입에 제약이 있었다고 적시했다.
이에 따라 치매안심센터 기능 고도화의 하나로 '치매안심센터용 자체 심층 진단도구'인 CIST-In Depth(CIST-ID)를 2026~2027년 개발하고, 2028년부터 적용한다.
기존 CIST가 선별에 초점을 둔 도구였다면, CIST-ID는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더 정밀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심층 도구다. 의료기관 의뢰 전 단계에서 위험군을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조기 개입 대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명시됐다.
경도인지장애 관리 강화는 진단 도구 개발에 그치지 않는다. 인지강화교실을 기존 주 1회에서 주 3회로 확대하고, 자가관리 매뉴얼을 개발·보급한다. 이는 조기발견 이후 지속적인 개입과 관리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향이다.
장기요양 서비스 유연성 확대
제5차 계획은 재가 돌봄 체계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포함했다.
우선 2026년부터 주야간보호기관과 치매안심센터 쉼터의 중복 이용을 허용한다. 그동안은 장기요양보험 서비스와 치매안심센터 쉼터를 동시에 이용하는 데 제약이 있어, 가족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조였다. 계획은 이러한 제한이 돌봄 연속성에 불편을 초래한다고 보고, 중복 이용을 허용해 서비스 선택 폭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또한 주야간보호기관 내 단기보호(숙박) 기능을 제도화해 장기요양가족휴가제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는 가족이 일시적으로 돌봄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보완하는 조치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재가 서비스 간 경계를 완화해 돌봄 공백을 줄이려는 방향에 가깝다. 가족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단기적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장치가 보완되는 셈이다.
다만 주야간보호기관이 숙박 기능을 수행하려면 인력 배치와 시설 기준, 수가 체계 등 운영 여건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제도적 문이 열리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기관이 참여할지는 향후 세부 지침과 재정 구조에 달려 있다.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 공적 신탁 모델 도입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치매 환자 또는 후견인의 의사에 따라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재산을 관리하는 공적 신탁 모델이다. 의료비와 일상생활비 지출을 공공 체계 안에서 관리하도록 설계된 제도다. 민간 금융기관이 아닌 공공기관이 관리 주체가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업은 2026년 시범 실시 후 2027년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2028년 본사업으로 전환한다. 시범 단계에서는 현금·지명채권·주택연금 등으로 대상 자산 범위를 한정해 운영한다. 동시에 민간 신탁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계획은 의사능력 저하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예방하고, 재산 관리의 공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을 도입 취지로 명시했다.

운전 능력 판정 체계 보완
75세 이상 적성검사에서 실질 운전능력 판단 도구가 부족하다는 점을 전제로, 실차·VR 기반 운전능력진단시스템을 2026년 시범 적용한다.
이는 조건부 면허제 활용을 위한 실질적 판정체계 구축의 일환이다. 동시에 단순 규제 강화가 아니라, 고령 운전자의 안전한 이동권을 보장하면서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균형 지점을 찾는 정책적 시도로 설명된다.
'치매' 용어의 단계적 정비
제5차 계획은 치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거부감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 과제도 포함했다. 문서는 '치매'라는 용어 자체가 당사자와 가족에게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기관·사업 명칭의 단계적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치매안심센터', '치매환자쉼터' 등 공공기관 및 사업 명칭을 대상으로, 사회적 인식 개선 흐름에 맞춰 용어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치매를 질환 중심의 낙인 언어에서 벗어나, 중립적이고 존중의 의미를 담는 표현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정책 문서에 반영한 것이다.
다만 계획은 즉각적인 일괄 변경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제도 정비를 전제로 한 '단계적 검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법령, 예산, 행정 체계 전반과 연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치매(痴呆)'라는 용어를 '인지증(認知症)'으로 변경한 이후 정책 전반에서 인식 개선을 병행해 온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용어 문제를 공론화 단계에서 정책 검토 과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 변화는 의료·복지 서비스의 내용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치매를 바라보는 사회적 언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공식 계획에 담았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디지털 기술 도입: 연구에서 현장 적용 단계로
제5차 계획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치매 예방과 관리 영역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방향을 담았다. 이는 단순 연구 지원을 넘어, 실제 서비스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도입까지 포함하는 구조다.
우선 치매 예방·관리 앱(App)을 보급해 인지 기능 점검, 생활습관 관리, 자가 모니터링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해,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자가관리와 연계한다. 또한 AI 기반 돌봄 로봇 활용을 확대해 재가 돌봄 환경에서의 안전 확인, 정서 지원, 일상 관리 보조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포함했다. 이는 인력 중심 돌봄 체계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제시된다.
디지털 치료기기(DTx)의 임상 적용 지원도 계획에 담았다. 근거 기반 디지털 치료 기술이 의료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임상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계획은 AI·디지털 기술을 예방, 조기 발견, 재가 관리 단계에서 활용 가능한 수단으로 제시하며, 연구 개발과 현장 적용을 연계하겠다는 방향을 명시했다.
[비교 분석] 실행 기반을 축적한 한국 vs. 법률로 구조화한 일본
제5차 계획은 '권리 보장'을 전략 축으로 명문화하며 일본의 최근 정책 흐름과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한다. 일본은 2024년 시행된 「공생사회의 실현을 추진하기 위한 인지증기본법」에 근거해 인지증 정책 추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양국의 계획을 대조해 구조적 차이를 살펴보면, 우선 일본은 법률에 근거한 기본계획을 통해 치매 정책을 국가적 과제로 명확히 위치시켰다. '새로운 인지증관'을 중점목표로 제시해 사회적 공존의 관점을 정책 목표로 구조화했고, 인지증인의 의사 존중과 사회 참여를 정책 틀 안에 포함했다. 또한 성과 지표를 과정(Process), 산출(Output), 결과(Outcome)로 구분해 관리하겠다는 체계를 명시했다.
반면 한국은 실행 단위 설계의 구체성에서 특징을 보인다. 전국 시군구에 표준화된 치매안심센터 전달체계를 구축했고, 이번 5차 계획에서는 공적 신탁 모델을 활용한 재산관리지원서비스, 운전능력 판정체계 보완, 주야간보호·쉼터 중복 이용 허용 등 제도별 시행 일정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을 활용한 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치매 환자의 경제적 권리 보호를 공공 체계 안에서 다루겠다는 점에서 제도 설계가 구체적이다.
정책 접근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일본은 정책 철학과 평가 체계를 먼저 구조화한 뒤 이를 법적 틀 안에 담았고, 한국은 인프라와 실행 모델을 축적해 왔다. 제5차 계획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권리와 인식 영역까지 정책 범위를 확장한 단계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차이는 당사자 참여와 생활 환경 정책의 범위다. 일본 기본계획은 인지증인의 의사 존중을 법률 차원에서 명시하고, 정책 수립·평가 과정에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를 포함했다. 또한 교통·주거·금융 등 생활 전반을 인지증 친화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을 국가 계획에 담았다.
한국 제5차 계획은 사회 참여 사업과 치매안심마을 고도화를 제시했지만, 정책 결정 단계에서의 당사자 참여 구조나 타 부처 정책과의 통합적 배리어프리 설계는 상대적으로 구체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
향후 과제로는 성과 관리 방식의 고도화가 제기된다. 현재 한국의 대표 지표는 관리율과 사업 확산 수준 등 산출 중심 지표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일본처럼 과정·산출·결과를 구분한 평가 체계를 참고해, 환자와 가족의 삶이 실제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측정하는 결과 지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정책 평가의 다음 단계가 된다.
양국은 지역사회 공존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지만, 접근의 출발점에는 차이가 있다. 일본은 인지증기본법을 통해 정책 철학과 당사자 권리를 법률로 명문화하고, 평가 체계까지 구조화했다. 한국은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 인프라를 먼저 구축한 뒤, 이번 제5차 계획에서 권리 보장과 인식 개선 과제를 추가했다.
남은 과제
제5차 계획은 권리·재산·이동·조기관리까지 정책 범위를 확장했다. 그러나 정책 수립과 평가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계는 이번 계획에서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현장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치매 당사자가 지원과 관리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논의와 평가 과정에 당사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남은 과제다.
경도인지장애 관리가 강화된 만큼 중등도 이후 단계에서 의료·요양·재가 돌봄을 통합 조정하는 체계의 실효성도 함께 점검 대상이다. 지역 현장에서는 서비스 연계 책임이 기관 간 협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관리 단계가 세분화된 만큼 진행 단계 이후의 연속 관리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공적 신탁 기반 재산관리와 운전능력 판정체계는 제도 도입 자체보다 운영 기준과 접근성에서 완성도가 갈린다. 성과 관리 역시 관리율과 보급률 중심 지표에 머물면 한계가 분명하다. 일부 현장 인력은 "환자를 얼마나 많이 발굴했는지가 아니라,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묻는 지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과 중심 지표는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다.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은 정책 범위를 넓힌 계획이다. 이제 관건은 그 설계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환자와 가족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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