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엿 가치 끈끈하게 지키고 지역과 현대 달콤하게 녹이고

이원재 기자 2026. 2.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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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과 톡톡] 이수경 대감엿코리아 대표
복과 장수를 상징해온 우리 민족의 단맛
식혜부터 갱엿까지 24시간 정성으로 완성
현대적 재해석으로 엿의 선입견 허물어
“수익보다 나눔으로 가치 이어가고파”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인스턴트 식품이 넘쳐나고 자극적인 디저트가 유행하는 요즘, 여전히 시간과 정성을 요구하는 제품이 있다. 24시간 꼬박 푹 고아내야 완성되는 전통 음식 바로 '엿'이다. 이수경(58) 대감엿코리아 대표는 빠름이 당연해진 시대에 '복'과 '장수'를 담은 전통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이수경 대감엿코리아 대표와 조희원 강사가 엿을 늘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복과 장수를 담은 한 입

이 대표의 삶이 처음부터 엿을 향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 창원시 진해구 용원에서 10년 넘게 학원을 운영했고, 이후 차와 커피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전환점은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맛본 '생강엿'이었다.

"차 공부를 하던 중 한 카페에서 생강엿을 맛보게 됐어요. 쌉싸름한 차 한 잔에 곁들인 생강엿 한 조각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풍미가 정말 경이로웠죠. 단순히 달기만 한 간식이 아니라, 차의 맛을 돋우는 지혜가 담긴 음식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후 1년 동안 창원과 부산을 오가며 엿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창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차 공부의 연장선에서 '차와 어울리는 디저트'를 탐구하는 수준이었다.

쌓아온 내공이 빛을 본 계기는 2019년 진해 충무지구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 선정이었다. 이 대표는 '진해콩엿' 만들기 수업을 열어 어르신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전통의 즐거움을 전했다. "함께 엿을 만들며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큰 힘이 됐다"는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사회적기업 대감엿코리아 설립을 결심했다.

엿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정성의 연속이다. 쌀로 고두밥을 지은 뒤 엿기름을 물에 불려 얻은 맑은 물을 밥에 넣어 삭히면 식혜가 된다. 이 식혜에서 밥알을 걸러낸 뒤 맑은 물을 끓이면 조청이 되고, 다시 수분을 완전히 날려야 비로소 단단한 '갱엿'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에만 24시간이 훌쩍 넘는다.

"요즘 세상은 패스트푸드 때문에 너무나 빨라졌잖아요. 속도가 빨라진 만큼 우리 건강은 오히려 위협받고 있죠. 하지만 엿은 달라요. 식혜를 만들고 긴 시간 정성을 들여 천천히 고아내는 것이 우리네 전통입니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손맛과 정성이야말로 전통의 가치이자 맛의 핵심이죠."

전통적으로 엿은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주전부리가 아니었다. 긴 시간 공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기에 혼례상에 올라 '부부의 인연이 엿처럼 끈끈하게 이어지길' 기원했고, 제사상에도 올려져 조상에 대한 정성을 표했다. 엿이 '복과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진 이유다. 서로의 복을 빌어주는 설날에 엿의 의미가 더욱 특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는 엿이 오늘날 비속어처럼 쓰이거나 수험생용 간식으로만 치부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에 그는 제품마다 '복 드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스티커를 부착한다. "엿을 건네는 것은 곧 복을 빌어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전통의 가치를 다시 알리고 싶어서다.
대감엿코리아가 만든 진해콩엿. /김구연 기자

세대를 잇는 우리 맛의 진화

대감엿코리아의 엿은 전통과 현대적 재해석의 만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들깨를 활용한 제조법이다. 기존 엿은 치아에 달라붙어 먹기 불편하다는 선입견이 강했다. 이 대표는 연구 끝에 들깨를 배합해 고소함은 더하고, 치아에 붙지 않는 깔끔한 식감을 구현해냈다.

지역 특산물과의 결합도 눈길을 끈다. 진해의 상징인 벚꽃 가루를 넣어 분홍빛을 낸 '벚꽃엿'은 군항제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밖에도 창원 단감을 활용한 '단감엿', 진해의 명물 콩 과자를 모티프로 한 '진해콩엿' 등 지역의 이야기를 엿 속에 녹여냈다.

"지역을 살리는 길은 그 지역만이 가진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벚꽃 모양으로 엿을 빚고 지역의 맛을 담으니 외국인 관광객들도 한국의 전통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어요."

젊은 층과 아이들을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망고·블루베리·감말랭이 등을 활용한 과일엿은 물론, 어린이날을 겨냥한 '초코엿'까지 개발하며 엿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23년 지역문화진흥원이 선정한 '생활문화장인 20인' 선정으로 이어졌다.
이수경 대감엿코리아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나누는 삶이 진짜 수익

대감엿코리아는 2021년 사회적기업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일반 기업이 아닌 사회적기업을 택한 배경에는 이 대표의 성장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평생 지역사회 봉사에 헌신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그는 '나눔'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삼았다.

2021년부터 진해종합사회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에 엿을 기부하고 체험 행사를 이어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지역에서 받은 도움을 다시 지역에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가치는 여성 일자리 창출이다. 특히 4050 경력단절 여성들이 자신처럼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통엿 강사' 과정을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약 20명의 강사를 양성했으며, 이들이 지역 곳곳에서 하루 3~5시간이라도 일하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수익보다 전통 계승의 가치를 우선한다고 강한다. 설·추석 명절 엿 판매 매출이 총 4000만 원을 웃돌 만큼 호응을 얻었지만, 현재는 잠시 판매를 중단했다. 수익을 내는 엿 판매 확대보다는 문화 전수자로서의 책임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밀양 고택 체험과 결합한 엿 만들기 교육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전통의 가치를 경험하고, 사라져가는 우리 먹거리를 후세대가 계속 접할 수 있도록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돈을 벌려고만 생각하면 금방 지치겠지만, 가치를 가져가면 길게 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기업을 무리하게 키우기보다 제가 가진 것을 이 자리에서 더 많이 나누며 이웃들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지역의 전통문화를 찾는 분들에게 변치 않는 정성을 보여드리는 것이 대감엿코리아가 이 자리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원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