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극한 환경을 헤쳐 나가는 ‘로봇’의 가치

박설민 기자 2026. 2. 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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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회 한국로봇종합학술대회(KRoC 2026)’ 현장 취재
지난 5일 기자가 방문한 '제21회 한국로봇종합학술대회(KRoC 2026)'에서는 '로봇경주대회(Robot Competition)'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됐다. 이번 학회는 약 2,000여명의 국내외 주요 로봇전문가와 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 국내 로봇산업의 미래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진=박설민 기자

시사위크|평창=박설민 기자  햇빛이 비쳐 새하얗게 빛나는 눈밭, 4개의 발이 달린 로봇 하나가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질척하게 녹은 눈은 사람이 걷기도 미끄러웠다. 하지만 푹푹 빠지는 진창같은 눈밭을 로봇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헤쳐 나갔다. 이따금 미끄러지며 넘어질 뻔했지만 그때마다 벌떡 일어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지난 5일 기자가 방문한 '제21회 한국로봇종합학술대회(KRoC 2026)' 현장이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번 학회는 약 2,000여명의 국내외 주요 로봇전문가와 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때문에 단순한 과학자들의 학회가 아닌 국내 로봇산업의 미래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로봇경주대회(Robot Competition)' 현장./ 사진=박설민 기자

◇ 거친 눈밭과 빙판을 가로지르는 '네발로봇'들

4족보행로봇이 눈밭을 달려가고 있던 현장은 '로봇경주대회(Robot Competition)'가 한창인 장소였다. 알펜시아 스키장 바로 옆에 마련된 대회장에서는 다음날 진행될 로봇경주예선이 진행 중이었다. 대기 천막 안은 각종 로봇이 놓여 있었다. 연구원들은 대회 참가 전 로봇 점검으로 분주한 상태였다.

이번 대회는 △로보틱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제어공학의 4가지 분야를 평가하기 위해 진행됐다. 기술적 우수성을 기반으로 후원 기관과 연계한 기술 교류 프로그램 추진과 완전 자율 제어 로봇을 통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가 대회의 핵심 목표다.
이인호 부산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연구실(CAMEL) 소속 'CamelStride' 연구원들의 모습./ 사진=박설민 기자

대회 참가 로봇은 '4족보행로봇'으로 제한됐다. 로봇의 크기는 100cm×100cm×100cm, 무게는 20kg 이하로 정해졌다. 허용 가능한 센서는 GPS, IMU, LiDAR(32ch 이하 1개), FHD 카메라(2개 이하)다. 경기는 눈길 주행과 장애물 회피, 경로 추종 미션으로 구성됐다. 총 150m의 트랙을 10바퀴 도는 것으로, 제한시간은 30분이었다.

예선 경기 시작을 알리자 검은색 몸통의 로봇 한 대가 눈밭을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 로봇의 이름은 '캐나인(canine)'. 이인호 부산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연구실(CAMEL) 소속 'CamelStride'이 개발한 로봇이다. 캐나인은 하드웨어 설계부터 동역학 제어, AI학습까지 모슨 시스템 전반을 이 연구실에서 연구·개발했다.
이인호 부산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연구실(CAMEL) 소속 'CamelStride' 연구원들이 개발한 로봇 '캐나인(canine)'의 모습./ 사진=박설민 기자
이번 대회 우승을 차지한 홍익대학교 'ROMODOG(김동건, 백승태, 이상희, 정규태, 최영민)팀'과 로봇 '로모도그'./ 사진=박설민 기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강화학습' 기반의 보행 능력이었다. '강화학습'이란 AI가 변화하는 환경에서 반복적 시행착오·상호작용을 거치며 작업 수행 방법을 학습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AI가 여러 실수를 반복하며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박가성 부산대 컴퓨터및기계활용연구실 연구원은 "캐나인은 강화학습 기반 보행과 PPO 알고리즘을 적용, 다양한 지형에 적응 가능한 보행 패턴을 학습시켰다"며 "미끄러운 지형을 대비해 마찰계수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로봇의 신경망에 학습시켜 실제 얼음과 눈밭과 같은 지형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대회 결과, 우승은 홍익대학교 'ROMODOG(김동건, 백승태, 이상희, 정규태, 최영민)팀'이 차지했다. 일명 '로모도그'라고 불리는 이 로봇은 GPS, Depth Camera, LiDAR를 탑재, 대회에서 눈밭과 빙판, 언덕 등 장애물을 가장 우수한 안정성으로 통과해 1등을 수상했다. 
 이족보행로봇 '루비(RUBI)'에 대해 설명하는 조백규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의 모습./ 사진=박설민 기자

◇ 수중로봇 '루비' 등 첨단기술도 눈길… 중국로봇이 대회 장악한 건 아쉬워

로봇경주대회가 한창이던 학회장 한쪽에서는 각종 로봇 관련 전시도 진행 중이었다.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담긴 포스터, 전시부터 기업들의 로봇 신제품까지 산·학·연 전체를 최신 로봇 기술 동향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두 발이 달린 이족보행로봇 '루비(RUBI)'였다. 조백규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팀 연구실(RcLab)이 지난해 8월 자체 개발한 로봇이다. 높이 약 75cm, 무게 28kg 크기로 6자유도(DOF)를 가지고 있어 어느 지형에서나 안정적인 보행이 가능하다. 자유도는 로봇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거나 회전할 수 있는 관절 혹은 축의 갯수다. 쉽게 말해 6자유도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관절이 6개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조백규 교수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다리./ 사진=박설민 기자

이때 루비의 가장 큰 특징은 '수중보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방수 능력은 'IP68' 수준이다. 이는 보통 1.5m~3m 깊이의 맑은 물속에서 30분간 침수돼도 견디는 최고 수준의 방수·방진 등급이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25'의 등급과 동일하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보행로봇은 루비가 세계 최초다.

뿐만 아니라 이족보행로봇인 루비는 2~3대를 연결해 사용 가능한 '모듈형' 타입이다. 만약 4족보행, 혹은 6족보행로봇이 필요하다면 루비를 여러 대 연결하면 된다. 하수도나 대형 배관 파이드 등에서 작업할 시,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로봇을 조립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산업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백규 교수는 "루비는 상수도 등 사람이 들어가서 작업하거나 점검할 때 위험한 곳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으로 개발되고 있다"며 "그중 원자력발전소에 루비가 투입되기 위해선 일반적인 리튬 배터리 대신 인산철(LFP) 등이 사용돼야 해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회 내부에 마련된 기업들의 로봇 전시회. 사진은 '에이로봇'에서 개발한 휴머노이드로봇./ 사진=박설민 기자
'라이온로보틱스'에서 개발한 4족보행로봇. 약 30~40kg의 짐도 거뜬히 운반 가능하다고 한다./ 사진=박설민 기자

이번 로봇학회와 대회, 전시는 국내 로봇 기술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국내 순수 기술 로봇이 적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소개한 조백규 교수팀의 루비나 부산대의 캐나인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해외 국적' 로봇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로봇 대회의 경우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중국 '유니트리(Unitree)' 제품을 사용했다. 유니트리의 로봇에 자체 개발한 GPS나 센서를 탑재해 대회를 치른 것이다. 다만 기업 전시장의 경우 '라이온로보틱스', '에이로봇' 등 기업들이 기술을 선보이며 한국 로봇 산업 경쟁력을 드러냈다.

조백규 교수는 "피지컬 AI시대가 시작되면서 이 시장의 승패를 가를 핵심 기술은 이제 로봇 하드웨어로 옮겨가고 있다"며 "특히 4족보행부터 휴머노이드로봇 등 다관절의 복잡한 로봇을 AI가 학습시킬 수 있게 되면서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한국 과학계에서 로봇 연구의 경우 논문 등 가시적 성과를 빠르게 드러내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보니 연구실 학생들도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보단 취업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안정적으로 학생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한국 로봇 연구와 산업 발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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