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죽음을!” “하메네이에 죽음을!” 두 동강 난 이란 혁명 기념일

이란 이슬람혁명 47주년 기념일 전야인 지난 10일(현지시간) 저녁 9시, 테헤란의 밤하늘에선 이를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화려한 불꽃의 향연을 보며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고 외쳤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에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불협화음처럼 추가됐다. 어둠 속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외쳐졌다.
AP통신 등은 11일 테헤란에서 열린 1979년 이슬람혁명 47주년 기념식 모습을 보도했다.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대적 유혈 진압을 벌인 지 한 달 만에 열린 기념식은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미국의 공격 위협과 반정부 시위 유혈 진압으로 인한 민심 이반 속에서 치러진 이번 기념식에서 이란 정권은 국가의 힘과 정당성을 과시하려 했지만, 이란 사회의 분열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정권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며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외친 한편, 테헤란 등 여러 도시의 주민들은 옥상과 발코니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외쳤던 구호인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을 외쳤다. 소셜미디어에 공유된 영상에는 캄캄한 하늘을 배경으로 이 구호가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모습이 담겼다.
이란 시스탄-발루치스탄주 지역 방송인 하문 네트워크의 진행자가 생방송 도중 실수로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고 발언해 방송이 중단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방송 책임자가 해임되고, 채널 운영자는 정직 처분 등을 받았다.

이슬람혁명 기념식에 참여한 정권 지지자들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테헤란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고 BBC는 전했다. 32세 라하는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62세 아크타르는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식용유 가격이 네 배로 올랐다. 실업률은 너무 높다”고 탄식했다. 19세 아미르는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유를 원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란 정권의 유혈 진압에 대한 반발을 의식한 듯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시위 진압이 “깊은 슬픔을 초래했다”며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감을 처음으로 표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이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의 핵 협상에 대해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며 “어떤 형태의 검증에도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 당국이 최근 개혁파 야당 인사들을 대거 체포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란 개혁파 정당 연합인 개혁전선의 아자르 만수리 대표 등 야당 인사 다수가 이란 정권에 체포되면서 야권 인사들은 페제시키안 대통령에게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한편 이란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르게스 모하마디가 이란 당국에 의해 체포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구타와 학대를 당했다고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밝혔다.
요르겐 와트네 프리드네스 노벨위원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모하마디가 체포 당하면서 나무 막대와 곤봉으로 구타당했고, 골반과 생식기 주변을 발로 차여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등 정상적 생활이 어려운 상태라는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프리드네스 위원장은 “이러한 행위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대우, 노골적인 국제 인권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우리는 모하마디가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모하마디는 오랫동안 투옥과 석방을 반복해온 이란의 대표적인 여성 인권운동가로, 지난해 12월 12일 한 인권변호사 추모식에서 연설했다가 다른 운동가들과 함께 다시 체포됐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121542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10172401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081725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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