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TK·서울 PK’, 지역발전 망치는 ‘첩경’

본래 이 표현은 서울이나 타지에서 학업과 직업, 공직과 전문 영역의 경험을 쌓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선택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 속에서 지역을 떠났던 이들이 다시 지역의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일은 결코 가벼운 결심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안정보다 공동체를 택한 선택에 가깝다.
그러나 선거 국면에 들어서면 이 말은 즉각 낙인이 된다. '서울 TK', '서울 PK'는 곧 '외부인', '낙하산', '선거철 귀향인사'라는 공격용 딱지로 바뀐다. 정책과 비전, 능력은 검증 대상에서 밀려나고 대신 '얼마나 오래 지역을 떠나 있었느냐'가 정치적 유죄 판결의 기준이 된다. 이는 검증이 아니라 배제이고 경쟁이 아니라 퇴행이다.
현실의 사례는 더욱 노골적이다. 중앙부처에서 수십년간 예산과 제도를 다뤄온 인물이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현안을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그의 전문성은 토론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대신 '서울에서 살다 내려온 사람'이라는 말 한마디로 정치적 생명이 규정된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산업과 일자리 전략을 제시한 후보에게 '서울 PK가 지역을 아느냐'는 질문이 정책토론을 대신한다. 이는 질문이 아니라 판결에 가깝다.
이런 정치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서울 TK·서울 PK'라는 말은 정책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쉬운 공격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길 필요도 없다. 배제하면 그만이다. 지역정치가 스스로 사고를 멈추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결국 지역 전체를 가둔다는 점이다. 지방소멸이 국가적 위기로 떠오른 지금 지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험과 더 넓은 시야다. 중앙과 지역을 모두 경험한 인물은 행정의 작동 방식과 제도의 한계를 동시에 아는 존재다. 중앙정부와의 협상 구조, 예산 배분의 현실, 정책 결정의 메커니즘을 아는 사람은 지역에 분명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서울 TK·서울 PK'라는 낙인이 반복될수록 지역정치는 스스로 인재의 귀환을 차단한다. 지역을 떠난 경험은 배신으로 해석되고 돌아온 선택은 기회주의로 매도된다. 이 구조 속에서 남는 것은 익숙함만을 무기로 한 폐쇄적 경쟁이고 변화는 철저히 배제된다.
결국 피해자는 지역 주민이다. 정치는 낙인을 찍는 기술이 아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던지고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 TK·서울 PK'라는 언어가 지배하는 순간 질문은 사라지고 침묵만 남는다. 지방선거가 '누가 지역에 더 오래 있었는가'를 가리는 경쟁으로 전락하는 한 지역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는 없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서울 TK'와 '서울 PK'를 공격하는 정치가 지역을 지키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을 가장 빠르게 늙게 만드는 길이라는 사실을. 지방선거는 낙인을 찍는 시간이 아니라 지역의 내일을 선택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출신을 묻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고 편가르기에 박수치기보다 정책으로 경쟁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다만 이것이 모든 '서울 TK·서울 PK'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뜻은 아니다. 중앙 경력을 포장지 삼아 지역을 출세의 발판으로만 삼으려는 준비되지 않은 후보라면 그 역시 단호하게 걸러져야 한다. 문제는 출신이 아니라 태도이고 체류기간이 아니라 책임의 깊이다. 지역을 이해할 준비도, 지역에 머물 각오도 없는 인물까지 옹호할 이유는 없다.
유권자의 질문이 바로 서야 한다.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준비했는지, 얼마나 오래 책임질 것인지를 묻는 정치로 전환될 때 지역정치도 비로소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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