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달리 춥고 눈도 많이 내리고 있다. 새벽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가는 것은 약간의 두려움이 있지만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데 대한 흥분이 적지 않은 것이다. 최근의 노동 관련 입법이나 행정을 보면서 이와 같은 가벼운 설렘이나 흥분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전혀 녹녹하지 않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난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용자 범위를 넓히기만 하면 좋을까? 노조만 우후죽순처럼 많아지면 세상은 저절로 꽃길로 바뀔까? 사실 법원이 인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청 사용자과 하청 노조 사이에 교섭의제는 산업안전, 성과급, 학자금 정도다. 그 외 임금이나 근로시간은 하청 노사간 결정될 문제여서 교섭의제가 되지 않는다.
먼저 산업안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이를 위해 방대한 규모의 산안규칙이 제정되어 있다. 못 지켜서 문제이지 이보다 더한 안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체교섭의 결과로 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체교섭으로 당사자들만 아는 지식과 경험으로 뭔가 정한다 한들 그게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결국은 전문가들이 산업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와 수단을 만들어내야 한다.
성과급은 어떤가? 최근 대법원에서 성과급 중 근로제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임금이라고 했다. 그와 같은 성격의 성과급은 당연히 교섭의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성과 배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성과급을 원청에게 교섭으로 요구할 수는 있을까? 원청 근로자들이 받는 성과급의 일부를 달라고 해야 할 텐데 원청 노조가 용인하지 않는 액수를 하청 노조가 요구할 수 있을까? 그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하청 노조가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파업에 들어가면 다음해 원청 근로자들의 성과급을 깎아먹게 될 것이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두렵지 않을 수 없다.
학자금은 한국의 복지 혜택 중 매우 독특한 것이다. 이른바 캥거루 키즈 현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외국계 기업의 본사 HR 담당자들은 한국 기업이 학자금을 지급하는 로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근로자 개인의 발전을 위한 것도 아닌데 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지 갸우뚱한다. 결국은 임금으로 지급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하청 근로자들에게 학자금을 지급해 온 기업들만 울며 겨자 먹기로 교섭에 응해야 할 것이고 나머지는 아니다. 하청노조가 학자금을 이유로 파업을 한다면 원청 근로자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을까? 앞으로 하청 근로자들에게도 학자금을 어느 정도 보조해 볼까 생각한 기업들도 이제는 그 생각을 접게 될 것이다. 법이나 교섭으로 강제할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교섭을 하더라도 하청 노조는 원청 기업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것 외에는 현실적 만족을 얻기 어렵다. 그와 같은 허무한 결론을 위해서 원청 기업과 하청 노조 나아가 하청 기업이 치러야 할 비용은 상상하기 어렵다. 교섭을 위한 시간에 대한 보상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청 노조는 교섭을 위해서는 시간이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간 난무한 정치적 구호를 떠올리면 참으로 허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나마 교섭이 시작된 후 일이다. 교섭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업들이나 노조들이 투입해야 할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암울하기만 하다. 현재 노조법은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근로기준법상 근로관계를 전제로 한 법이다. 물론 근로관계와 같은 사용종속관계는 아니더라도 직접적으로 경제적 종속관계에 있을 경우에는 그 예외를 인정하더라도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딱 거기까지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이제는 과부하로 인하여 노조법 체계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개정 노조법의 시행을 앞두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법에 근거도 없는 시행령을 만들어 입법예고를 하고 이를 일부 수정하여 재차 입법예고를 한다. 주된 내용은 교섭단위의 분리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 중 제일 큰 문제는 노조에 따라 교섭단위를 달리 둘 수 있다고 한 부분이다. 애초 노조법 개정 전에는 설령 한 사업장에 민노총 계열의 노조와 한노총 계열의 노조가 있더라도 그 중 조합원이 다수(정확하게는 과반수)인 노조가 교섭대표가 되었다. 소수 노조에 대한 배려는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였다.
근로관계를 전제로 하는 직원들은 하는 일이 다르더라도 교섭단위 분리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단지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과 위임 내지 도급계약을 맺은 노동조합상 근로자(엄밀하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택배기사, 학습지 기사, 캐디 등) 사이에는 업무 수행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교섭단위 분리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이 둘 사이에는 서로 섞일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6년 3월 10일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고용노동부 시행령에 따르면 당일 이후 원청 노조든 하청 노조든 원청 사용자에 대하여 교섭요구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원청기업은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하든지 아니면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하든지 할 것이다. 원청 기업에 노조가 하나, 수많은 하청 기업에 노조가 하나 이렇게 있다면 비교적 순조롭게 교섭단위가 분리되고 교섭창구 단일화절차가 별도로 진행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개정 시행령의 내용이 필요하지도 않다.
문제는 원청 기업에도 복수 노조가 있고, 각 하청 기업에도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다. 시행령에 따를 때 먼저 원청 기업과 각 하청기업으로 교섭단위는 노동위원회 결정을 거쳐 분리될 것이다. 어쨌든 원청 기업에 있는 복수노조는 이 단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므로 별 문제가 없고 현재와 같이 절차를 진행하면 될 것이다. 하청과 달리 진행해야 할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이는 여기서는 일단 넘어가자.
각 하청기업은 느닷없이 소수노조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에 의해서 노조별로 교섭단위가 분리되고 노조가 여러 개 있는 하청 기업은 교섭단위도 여러 개로 나뉘게 된다. 하청 기업 3개에 노조가 각각 두 개 있다고만 해도 교섭단위는 6개가 된다. 그러면 원청 기업은 하청 노조와 사실상 같은 의제로 6번 교섭을 해야 한다. 자세히 보면 결국 하청 단위에서는 개별 교섭이 강제되는 셈이다. 서로 합쳐도 효용가치가 있을지 말지인데 이를 6개로 쪼개자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노조법의 시행으로 흔들리고 있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공정거래법이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카르텔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몇몇 개인사업자들은 담합은 물론 거래상대방에게 불공정한 거래 조건을 강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로써 몇몇 개인사업자들은 단체를 이루어 계약조건의 상향을 주장하고(교섭의제가 될 수 있는지는 따로 따져 봐야겠지만, 우리 나라 교섭관행을 고려하면 교섭의제가 될 수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를 관철하게 된다면 전체 소비자들의 편익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 우리 앞에 있다. 전 세계 노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1년 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머리 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모쪼록 많은 것을 쟁취한 노조가 조금 양보해서 경제 전체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를 빌 뿐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