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로 시간 벌려던 다주택자 “팔면 어떨까” 계산기 두드린다
조정대상지역 20억에 매도 단순 비교
양도세 3.3억 vs 증여세 6억 ‘2.7억차’
보유세 인상 가능성에 불확실성 여전
전문가 “증여·상속까지 종합 고려해야”

“조합설립 이전의 재건축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하고 있어요. 아들에게 증여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잠시 중단했어요. 증여세와 보유세, 그리고 상속세까지 다시 계산해보고 있어요.”(다주택자 A 씨)
증여로 시간을 벌어오던 다주택자들 사이에서 양도세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가운데 정부가 ‘세 낀 매물’을 무주택자에게 매도할 시 실거주 의무를 유예하는 등 퇴로를 열어준 데 따른 것이다.
다주택자들이 최근 증여보다 매도를 고민하는 데는 향후 보유세 역시 늘어날 거라는 전제에서다. 다만 정책적 불확실성이 여전해 실제 시장에 출회되는 매물이 급증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증여 말고 팔아라” 실거주 의무 2년 유예=12일 재정경제부와 관계부처는 이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및 보완 추진안’을 발표하고 다주택자가 임차인이 거주 중인 주택을 무주택자에게 매도할 시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상 실거주 의무를 최대 2년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추진안에 따르면 기존 조정대상지역이었던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및 용산구 소재 주택의 경우 오는 5월 9일 이전까지 매매계약을 완료하고 계약일로부터 4개월 내에 양도하면 양도소득세가 중과되지 않는다. 10월 16일부터 신규로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된 나머지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은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받았다.
다주택자의 적극적인 매도를 유도하기 위해 대출 규제도 일부 완화했다. 주택담보대출 실행 시 본래는 대출 실행일로부터 6개월 안에 전입신고를 해야했지만, 이 전입신고 의무도 ‘임대차계약 종료일로부터 1개월’까지 유예가 가능해졌다. 보다 확실한 퇴로를 마련해주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규제 완화에 앞서 이처럼 퇴로를 열어두자, 증여로 일관하던 다주택자들도 양도세를 따져보는 등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세
무법인과 은행에는 이날 양도소득세와 증여세를 문의하는 전화가 몰리기도 했다.
한 세무법인 대표 A씨는 “부모의 증여를 직계존속이 재검토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며 “실제 양도세와 증여를 묻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다주택자 ‘고민’…文때와 분위기 달라=다주택자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단순 세액만 봤을 때 증여보다 양도가 더 유리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병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이 진행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실제 2주택자인 A씨가 조정대상지역 주택을 10년 전 10억에 사서, 5월 9일 이전까지 20억원에 매도한다면 3억3000만원의 세액을 부담하게 된다.
반면 직계존속에게 증여를 하게 된다면 자녀가 내야 할 증여세가 약 6억원 수준이다. 중과가 유예된 양도세와 단순 증여세 차이만 2억7000만원에 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무사들은 양도와 증여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고령 다주택자의 경우 주택을 매도하고 그 양도차익으로 양도세를 납부한 뒤 자식에게 증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또 해당 현금에 대한 증여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우 위원은 “자산가의 경우 증여세는 어차피 ‘평생에 한 번은 내야할 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세액을 단순 비교하기 보다는 향후 이어지는 증여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보유세도 변수다. 이재명 대통령은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버티기가 이익이 되는 구조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보유세 인상 가능성까지 강하게 시사했다. 현재 시장에 나오는 다주택자의 매물은 이 같은 말을 듣고 향후 세 부담을 고려한 다주택자의 매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무작위로 인상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2017년 8·2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방침을 밝히고 2018년 이를 시행하기 시작하자 집합건물 증여는 2017년 28만5000건, 2018년 30만8000건을 기록하며 급증했다.
부동산 취득·보유·양도 전 단계의 세금을 대폭 강화한 최강 규제 패키지 7·10 대책이 시행되기 시작한 2021년에는 전국 집합건물 증여 신청 건수가 38만5000건을 기록해 40만 건에 육박하게 된다. 한편 이날 시장에선 양도를 하려던 다주택자가 매도를 포기하는 등 혼란도 감지되고 있다. 40대 직장인 A씨는 “다주택 매도인과 계약하고 계약금 9000만원까지 걸었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돌연 계약을 취소했다”며 “뒤늦게 정부가 세 낀 매도를 허락하자 다른 주택을 매도하겠다는 게 그 이유”라고 호소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이번 유예 방안으로 세 낀 매물까지 땡겨 나올 수 있게 된 상황”이라며 “매도 가능 물량의 저변이 넓어진 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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