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든 네 아이의 엄마, 봄날은 다시 왔다

윤양수 기자 2026. 2. 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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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졸업식장 안은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학사모를 고쳐 쓰는 박선영(청양군청 기획감사실 정책홍보팀) 주무관의 표정에는 안도와 벅참, 그리고 묵직한 회한이 동시에 스쳤다.

네 아이의 엄마가 됐다.

2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학사모를 쓴 네 아이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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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청 박선영 주무관 도전하는 엄마로
네 아이 키우며 학업의 꿈 이어가기로 결심
2020년 충남도립대 입학하며 대학생활 시작
수석졸업 이후 자치행정 심화과정으로 이어가
육아로 쪼갠 시간 수석 졸업 결실로 이어져

[충청투데이 윤양수 기자] 2월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졸업식장 안은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학사모를 고쳐 쓰는 박선영(청양군청 기획감사실 정책홍보팀) 주무관의 표정에는 안도와 벅참, 그리고 묵직한 회한이 동시에 스쳤다. 단상 위 '수석 졸업'이라는 호명이 울려 퍼지자 객석 한편에서 네 아이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최고야!"

짧은 외침이었지만 그 안에는 20년 세월이 담겨 있었다.

박 주무관의 대학 생활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해 미래를 설계하던 스무 살의 청춘. 그러나 삶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2004년 지역 신문사 편집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 안성민 씨와 가정을 꾸렸다.

이내 딸 둘, 아들 둘. 네 아이의 엄마가 됐다.

육아와 생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가슴 한켠에는 늘 배움이라는 이름의 갈증이 남아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그 언젠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2016년, 그는 한 번 용기를 냈다. 아이들에게 '도전하는 엄마'를 보여주고 싶어 모교 조교 복귀를 시도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계에 가까웠다.

잠시 멈췄던 시간.

전환점은 2018년이었다. 출퇴근이 비교적 안정적인 청양군청에 들어가면서 삶의 리듬이 바뀌었다. 현재는 기획감사실 정책홍보팀에서 군정을 알리는 업무를 맡고 있다. 정책을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은 그에게 또 다른 배움의 자극이 됐다.

그리고 2020년, 그는 다시 학생이 됐다. 충남도립대학교 사회적경제IT학과에 입학했다. 낮에는 공직자, 밤에는 엄마, 새벽에는 학생. 하루를 세 조각으로 나눠 쓰는 생활이 시작됐다.

결과는 '수석 졸업'.

멈췄던 꿈은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학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4년, 그는 자치행정심화 과정(3학년)에 편입했다. 지방행정과 정책 구조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퇴근 후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팀 프로젝트, 발표, 과제, 시험. 네 아이의 일정까지 더하면 일정표는 빈칸이 없었다.

"아이들 숙제 봐주다가 제 레포트를 마무리한 날도 많았어요. 다 같이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그게 또 힘이 되더라고요"

그는 틈을 모았다. 점심시간, 이동 시간, 아이들 학원 대기 시간. 쪼갠 시간들이 쌓여 다시 한 번 '수석 졸업'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학위증을 받는 순간, 그는 단지 학생이 아니라 시간과 싸워 이긴 생활인이었다.

만학의 길은 비용과 체력, 심리적 부담을 동반한다. 그러나 충남도립대학교의 학비 지원 정책은 그에게 숨통을 틔워줬다.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캐나다 어학연수 기회까지 얻어 시야를 넓혔다.

무엇보다 큰 힘은 가족이었다.

"엄마 멋지다."

"엄마는 뭐든 해낼 수 있어."

아이들의 한마디는 피로를 지웠다. 늘 아이들의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박수를 보내던 엄마가, 이날만큼은 축하의 중심에 섰다. 조연이던 엄마가 주인공이 된 날이었다.

졸업은 끝이 아니다. 그는 새 학기, 공주대학교 대학원 정책융합학과 편입을 앞두고 있다. 행정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을 학문적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배움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습니다"

꽃다발을 안은 그의 얼굴에는 피로 대신 단단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2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학사모를 쓴 네 아이의 엄마. 두 번의 수석 졸업은 성적표의 숫자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삶의 태도에 대한 증명이다.

박선영의 늦깎이 봄날은 이제 막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피어나고 있다.
박선영 주무관과 가족들
박선영 주무관
청양군청 기획감사실 정책홍보팀과 박선영 주무관

윤양수 기자 root5858@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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